사빈 마르셀리스의 작업과 이번 호 주제인 ‘The Factories’가 명확하게 만나는 순간. 사빈이 직접 큐레이션한 포토그래피 작업이다. 사포질을 마치고 출고를 기다리는 리미티드 에디션 ‘Candy Cube’가 사빈 마르셀리스의 팩토리 내 수레 위에 놓여 있다.
네덜란드 알크마르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자란 사빈 마르셀리스는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Design Academy Eindhoven)를 졸업한 뒤, 곧바로 로테르담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꾸렸다. 사빈 마르셀리스를 상징하는 작업은 젤리처럼 투명하고 생생한 컬러의 레진과 유리, 스톤 오브제. 재료 내부에서 빛이 굴절되고 반사되는 찰나를 포착해 내는 사빈의 작업은 기능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 오히려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경험 자체를 기능으로 치환하는 예술에 가깝다. 단순한 형태에 담긴 색과 투명함의 상호작용은 관람자와 공간 사이에 낯설고 아름다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바버숍 사인을 유독 좋아하는 사빈 마르셀리스.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아 작업실에서 연 파티에 온 친구들이 선물한 사인으로, 지금도 그녀가 아끼는 오브제다.
사빈의 레진 오브제가 제작되는 공장은 스튜디오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한 지붕 아래 디자인과 제작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 이상적인 작업 환경.
그녀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2014년 발표한 ‘캔디 큐브(Candy Cube)’는 사빈 마르셀리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프로젝트다. 초기작은 패션 브랜드의 디스플레이를 위해 제작한 레진 큐브였으나, 이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될 만큼 독보적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사빈은 ‘캔디 큐브’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컬러 러시! Colour Rush!〉 전시에서 수백 점의 컬렉션을 색채별로 재배열해 형태와 색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고,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High Museum of Art)에 설치된 거대한 유리 기둥 파노라마는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공간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마법을 부렸다. 최근에는 애플 본사 ‘애플 파크’에 영구 조형물을 설치해 공공예술로 영역을 확장했다. 하이엔드 예술뿐 아니라, 이케아(Ikea)와의 협업으로 누구나 일상에서 그녀의 빛을 소유할 수 있게 한 것도 흥미로운 행보다.
공장 옆의 웨어하우스에 지금까지 해온 작업물과 수많은 테스트 피스가 시간의 레이어처럼 보관돼 있다.
뉴욕 모마(MoMA)에서 판매될 사빈 마르셀리스의 리미티드 에디션 ‘Candy Cube’.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주말의 로테르담 산업지구. 지독한 감기 기운도 잊은 채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은 사빈의 모습에서 작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 사빈 마르셀리스의 스튜디오는 제작 공장과 같은 공간을 사용한다. 이곳에선 팀원 모두가 수평적으로 앉아 월요일 아침마다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고 한 주의 방향을 설계한다. 스튜디오는 단순히 사무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디자인이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다. 초기 오브제 중심이었던 그녀의 작업은 이제 조명 설치미술 작업을 넘어 대형 공간 프로젝트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적 건축 거장과의 협업은 그녀의 작업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구조와 공간 설계의 핵심 파트너’로 기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유리와 레진으로 시작한 소재 탐구는 알루미늄과 천연석, 플라스틱으로 뻗어나간다.
스튜디오에서 공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웨어하우스 한편은 넓은 공간과 흰 벽을 그대로 살려 제품 촬영을 위한 공간이 된다. 향후 전용 포토 스튜디오로 확장할 계획이다.
사빈 마르셀리스의 디자인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온몸의 감각을 일깨워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드는 빛의 초대장이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세계는 더욱 단단해졌고, 그 반경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로테르담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나눈 사빈 마르셀리스의 일과 삶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
10년 전 방문했던 스튜디오와 비교하면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 같습니다. 제작 공장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에요
맞아요. 디자인 스튜디오 바로 옆에 제 작업물을 실제로 구현하는 공장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죠. 비즈니스 파트너인 친구와 함께 이 건물을 발견하고 레너베이션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어요. 워낙 제멋대로 지어진 건물이라 손볼 곳이 많았거든요. 특히 제 작업물은 레진이나 유리처럼 무게가 상당한 재료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기초 기반을 다지는 작업부터 거의 새로 짓다시피 공을 들였습니다.
스튜디오 전체가 탁 트인 오픈 스페이스군요. 금요일은 ‘반일 근무’만 한다는 소문도 있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보스인 것 같아요(웃음). 대신 저희는 재택 근무를 하지 않아요. 모든 팀원이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그 보상으로 금요일 오후를 자유 시간으로 선물했죠. 정작 저는 금요일 저녁까지 스튜디오에 남아 혼자 조용히 일하는 시간을 즐기지만요. 월요일 아침이면 전 직원이 모여 각자의 작업을 공유하고, 한 주의 타임라인을 설계합니다. 팀과 나를 분리하지 않고, 우리 모두 하나의 유기적인 팀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우리 스튜디오를 지탱하는 에너지입니다.
과거엔 산업 디자인이나 제품 디자인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건축과 대형 설치미술 작업까지 영역이 거침없어 보입니다. 이런 변화의 기점은 언제부터였나요
저는 이를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불러요. 늘 경계를 탐색하고 허무는 일을 즐기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오브제에서 거대한 공간으로 스케일이 확장된 거죠. 사실 2016년 무렵부터 이미 건축가들과 긴밀히 협업해 왔어요. 지금도 헤르초크 & 드 뫼롱과 OMA, MVRDV 같은 팀들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죠. 저는 프로젝트 기획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는 걸 선호합니다. 제 작업이 건물이 다 지어진 뒤에 얹어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구조적 존재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에요.
도쿄 모리 타워 프로젝트도 그런 기획 단계부터 협업이 빛을 발한 경우일까요
정확해요. 모리 타워 프로젝트에서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의 동선 설계를 맡았는데, 초반 기획 단계부터 깊숙이 참여했어요. 이런 방식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기획 초기부터 함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편입니다. 물론 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지향하는 작업의 태도는 분명합니다.
무거운 작품을 이동시키는 수레 역시 사빈 마르셀리스 작업의 일부.
건축부터 공공예술까지 활동 범위가 넓습니다. 스스로 ‘디자인의 경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을 과장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스스로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건축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건축 프로젝트를 할 때는 반드시 해당 분야 전문가인 건축가, 엔지니어들과 긴밀하게 협력합니다.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그들 사이를 유연하게 연결하고, 디자인적 영감으로 빈틈을 보완하는 ‘연결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조명은 당신의 작업에서 꾸준히 중심이 돼왔어요. 매우 기술적인 영역이라 업데이트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이케아와 협업한 ‘디밍(Dimming) 시스템’ 조명처럼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나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저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기거든요. 모두가 “이건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순간이 저에게는 가장 짜릿한 출발점이에요. 팀원이나 엔지니어들과 머리를 맞대고 워크숍을 하며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가장 큰 즐거움이죠.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거쳐 마침내 물건이 의도대로 작동하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쾌감을 느낍니다.
다양한 컬러와 형태로 전개되는 ‘Candy Cube’ 시리즈. 우윳빛 파스텔 톤은 사빈 마르셀리스를 상징하는 컬러.
높낮이가 다른 여러 형태의 ‘Candy Cube’가 공간에 리듬을 만든다.
제작 현장에서 “이건 안 된다”는 말을 들어도 굴하지 않는 편인가요
맞아요. 저는 ‘안 되는 건 없다. 방법은 항상 있다’고 믿어요. 현장에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와도 “아니, 우리가 같이 방법을 찾으면 돼”라고 해요. 그렇게 끈기 있는 과정을 거쳐 제품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 비로소 프로젝트의 성공을 실감하게 되죠.
사빈 마르셀리스만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저는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해 오브제나 설치미술 작품으로 박제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 영감은 대자연에서 문득 마주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발생하는 ‘아름다운 실수’에서 나오기도 하죠. 워크숍이나 프로토타이핑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효과가 새로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는 식이에요. 기존 작업을 더 큰 스케일로 확장하는 시도도 즐기는데, 지금 작업 중인 분수 프로젝트가 좋은 예시죠.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소재를 다루는 스펙트럼이 드라마틱하게 넓어졌어요.
애플 신제품 발표를 위해 협업한 ‘Liquid Glass’. 유기적 형태와 매끈한 마감의 아크릴로 유리 같은 효과를 구현했다.
레진과 유리에서 시작해 알루미늄, 천연석, 최근엔 바람을 불어넣는 ‘인플레이터블(Inflatable)’ 플라스틱까지 등장했어요
소재 확장은 의도적 선택이라기보다 프로젝트가 요구하는 합리적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스펙트럼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코첼라(Coachella)’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프로젝트에 인플레이터블 형식을 도입한 건 지속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공기 구조가 가장 명쾌한 대안이었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천연석에 푹 빠져 있어요. 수백만 년의 세월을 견디며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천연석의 물성이 투명한 유리나 매끄러운 레진과 만났을 때 뿜어내는 극명한 대비가 정말 아름답거든요.
스케델릭(Stedelijk) 뮤지엄을 위해 디자인한 알루미늄 체어. BD 바르셀로나 에디션으로 제작됐다.
이케아와의 협업은 당신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었나요? 하이엔드 오브제를 만들던 당신이 ‘대중 디자인’ 영역으로 들어간 프로젝트였죠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기존 작업의 맥락과 결이 어긋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거든요. 하지만 결국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어요. 제 디자인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상 풍경이 될 수 있다는 건 정말 짜릿한 경험이에요. 최근에 겪은 귀여운 에피소드를 알려줄게요. 아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갔는데, 그 집 거실에 제가 디자인한 이케아 조명이 켜져 있더라고요! 제가 디자이너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아들 친구 부모님 곁에서 제 작품이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비추고 있는 걸 직접 목격한 기분이란! 디자이너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기쁨 중 하나였어요.
대중 브랜드와의 협업은 ‘가격 접근성’이라는 다른 차원의 숙제를 줬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챌린지’였죠. 협업 과정에서 이케아 측이 “20유로(약 3만 원)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비싼 가격”이라고 했을 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 조언 덕분에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1유로짜리 병따개’예요. 극히 제한된 예산 안에서 재료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과정은 주로 하이엔드 작업을 하던 제게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설치미술 작품의 규모가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풍경을 기대하면 될까요
이번 밀란 가구박람회 직전에 공개될 예정이라 저도 기대가 커요.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질,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거대한 ‘인플레이터블 미로’예요. 단순히 멀리서 감상하는 조형물이 아니라, 관람자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탐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뜨거운 사막의 볕을 피할 그늘과 잠시 쉬어 갈 좌석도 곳곳에 마련했습니다. 스튜디오 크기의 네 배 정도로 생각하면 돼요. 높이와 면적 모두 압도적 규모죠.
그런 거대한 작업에 ‘공기(Inflatable)’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런 규모의 작업을 유리나 캐스트 레진으로 진행하기엔 무게와 안전상의 제약이 컸어요. 그래서 얇은 플라스틱에 공기를 불어넣어 부피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재료 사용은 최소화하면서 시각적 존재감은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합리적인 해법이었습니다. 사실 지난해 이탈리아 코모 호수에서 선보인 ‘젤리 플로트(Jelly Float)’ 프로젝트에도 인플레이션 기법을 사용했어요. 그때의 경험이 이번에 더 큰 스케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됐습니다.
그러데이션된 컬러 레진은 캔버스, 그 위의 네온은 붓질을 연상시키는 조명 오브제 ‘Down Lights’.
코첼라 밸리의 낮과 밤, 사막의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이 작품은 어떻게 변할까요
낮에는 사막 풍경과 어우러지는 기하학적 미로라면, 밤에는 통합 조명 시스템을 통해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유기적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조명값을 자유롭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서, 시간에 따라 사막의 공기를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물들일 수 있어요. 낮의 정적과 밤의 화려함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빛의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관람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보다 재료와 규모, 빛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몰입형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요. 낮과 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낯선 사막 한복판에서 관람자들이 각자의 시각적 서사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상황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선택해 공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제 작업의 핵심이니까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5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아요. 많은 제안 중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택 기준은
제 선택은 놀랄 정도로 직관적이에요. 프로젝트의 규모나 예산은 부차적인 문제죠. 설령 예산이 거의 없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창의적으로 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주저 없이 선택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거절해요. 제 직감을 믿고 밀고 나가는 방식이 지금까지 저와 팀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자신의 감각을 신뢰하는 스타일이군요. 스튜디오 규모를 키워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가요
전혀요. 저는 모든 프로젝트에 직접, 깊숙이, 관여하고 싶어요. 단순히 팀을 유지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구조는 원하지 않습니다. 사빈 마르셀리스라는 이름이 붙는 작업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길과 시선이 닿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브랜드가 돼버리니까요. 그건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에요.
연초에는 누구나 거창한 미래를 상상하곤 하죠. 당신은 어떤 목표를 세우는 편인가요
미래를 위해 5년 후, 10년 후의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제 방식이 아니에요. 그저 오늘 내 앞에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갈 뿐이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에너지가 모여 결국 다음 단계로 저를 이끌어준다고 믿어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요
엄마가 된 후 제 업무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선순위를 정하는 눈이 훨씬 날카로워졌고, 무엇보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내려놓았죠. 팀원들을 깊이 신뢰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모든 걸 쥐고 있을 때보다 그들이 더 많은 일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저만의 철칙이 생겼어요.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는 오롯이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 둡니다. 이 시간만큼은 회의도, 화상통화도 하지 않아요. 이후에 다시 업무를 시작하더라도, 그 3시간만큼은 가족에게 몰입하는 거죠.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올해, 가장 기대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취리히 디자인 뮤지엄에서 제 첫 뮤지엄 개인전을 열게 됐어요. 이를 포함해 총 세 개의 솔로 전시가 예정돼 있죠. 디자이너로서 제 이름으로 된 전시를 한다는 건 정말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 작업을 되돌아보며 제대로 아카이빙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전시는 여전히 ‘빛’이 중심이 될 겁니다. 새로운 소재와 기술을 통해, 빛이 공간과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계속 탐구해 보고 싶어요.
‘누르 리야드 페스티벌(Noor Riyadh Festival)’에서 설치한 ‘라이트 호라이즌(Light Horizon)’의 전경. 거울과 LED를 활용해 빛이 반사되고 확장하는 효과를 극대화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 수많은 도시 중 로테르담에 둥지를 튼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로테르담은 투박하고 거친 면이 있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넘치는 도시예요. 산업 도시 특유의 완벽한 제작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항구와 가까워 물류 측면에서도 최적의 장소죠. 무엇보다 이 도시의 분위기가 과하지 않아 좋아요. 해외 출장이 잦은 제가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평온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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