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해? 꼬끼오!" 저항·연대 담은 여자들의 코미디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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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해? 꼬끼오!" 저항·연대 담은 여자들의 코미디 쇼

프레시안 2026-03-09 19:28: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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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보셨죠? 임산부석 위에 적힌 '미래의 주인공을 위한 핑크 카펫'. 그걸 보고 눈물이 났어요. '아 나는 주인공이 아니구나.' 아마 여러분 대부분도 아닐걸요?"(강안리)

"여자는 미쳐도 무해하게 미쳐줘야 돼. 조커처럼 계단에서 춤추고 그러면 안 돼요. 방긋방긋 웃으면서 아이로 퇴행한 느낌으로 미쳐줘야 됩니다. 그리고 또 여자가 미치면 머리에 꽃을 꽂잖아요. '너네가 미쳤다고 해서 꾸밈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는 메시지가 담긴 게 아닌가."(김보은)

세계 여성의날을 맞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소공연장 '채널1969'가 여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전국에서 모인 여성 코미디언들의 매운 입담과 이들을 보러 온 여성 관객들의 열띤 호응이 오후 내내 이어졌다. 공연명은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차별과 편견에 시달려 온 여성들만의 공감대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는 단순히 웃고 즐기려는 목적을 넘어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세계 여성의날을 맞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소공연장 '채널1969'가 여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전국에서 모인 여성 코미디언들의 매운 입담과 이들을 보러 온 여성 관객들의 열띤 호응이 오후 내내 이어졌다. 사진은 정성은 서촌코미디클럽 대표. ⓒ유승연

이날 무대에 선 15명의 코미디언들이 사용한 소품은 오직 마이크 하나다. 오직 말재간으로 승부 보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즉석에서 관객과 대화하며 웃음을 만드는 '크라우드 워크'를 선보였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최근 한국에서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가진 의미는 더욱 빛을 발했다.

남성 중심 사회부터 성생활, 퀴어, 페미니즘, 채식까지. 금기란 금기는 전부 깼다. 공연장에서는 코미디언도 관객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조롱하는 데 거리낌 없었다. 정치인을 조롱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야 구분 없이 누구나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제 여성 인권 신경 쓰는 남자 정치인 아무도 없잖아요. '남성역차별부' 같은 거나 만들고. 저는 카카오톡 업데이트보다 구린 업데이트가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몰랐거든요. 그리고 윤석열 최고 아웃풋은 살림남이었으면 모두가 행복했을 거예요. 아내 앞에서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성대모사나 하고요."(고은별)

성범죄 가해자들도 주된 조롱의 대상이 됐다. 코미디언들은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된 성범죄자 명단에 남자들만 가득하다거나, 가해자들이 쉽게 억울해하고 무책임하게 죽음을 택한다는 지적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아직도 여성 상위 시대, 역차별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제가 몇 가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제발 성폭력하지 마세요. 이미 성폭력 했어요? 괜찮습니다. 두 번째,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 범죄자라는 낙인, 사회적 책임, 매장, 이런 걸 좀 지세요. 가해자 지목당한 걸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운전을 엉망으로 하면 언젠가 사고가 나듯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어요."(전인)

▲정인 부미디클럽 소속 스탠드업 코미디언. ⓒ유승연

여성 코미디언들의 비판 섞인 유머는 그들의 삶에서 자연스레 나왔다. 부산코미디클럽에서 활동하는 전인 씨는 과거 성폭력지원단체에서 활동하며 성범죄 가해자들의 책임 회피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떠올리며 이번 개그를 준비했다. 제주코미디클럽에서 활동하는 서서희 씨는 성추행 피해를 입은 경험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이는 여성 관객들이 열렬히 호응하는 까닭과 맞닿아 있다. 전인 씨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웃음의 중요한 요소는 공감대다. 코미디는 그 집단에서 공감대를 높여 웃음을 유발하는 작업"이라며 "연애, 결혼, 출산을 비롯해 여자라면 경험해 봤을 일들,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더더욱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연을 관람한 이가현(33) 씨도 <프레시안>에 "다들 생각만 하고 얘기하지 못하는 날 것의 말들을 사람들 앞에서 공유하고, 남성 사회 질서를 조롱하는 모습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라며 "여전히 유튜브를 비롯해 비슷한 유형의 코미디 쇼에서는 여성의 수가 적고 이런 공연을 보기 어렵다. 여성과 소수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무대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태 코미디언 겸 목사ⓒ유승연

여성들의 공연이었지만, 오직 여성들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목사와 성교육 강사, 코미디언을 겸하는 준태 씨는 이날 15명의 코미디언 중 유일한 남성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올랐다. "내 키가 20센티미터 부족하면 페미니즘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남성 페미니스트 연애 일대기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밖에도 공연장 곳곳에 여성의날을 축하하고 색다른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남성들도 있었다. 공연을 관람한 김재섭(34) 씨는 <프레시안>에 "몇몇 코미디언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밌는 공연이었다. 여성의날 특집 코미디임에도 불편함은 없었고 오히려 관대하게 대해줬다고 느껴졌다"며 "여성들의 농담에 같이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한 남성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 여성 중심 코미디의 수요는 숫자로도 증명됐다. 티켓은 오픈 1분 만에 매진됐고 급하게 추가한 2회차 공연도 순식간에 모든 티켓이 팔렸다. 정성은 서촌코미디클럽 대표는 인스타그램에 매진 소식을 알리며 "남성의 날(다른 날들)에 만나자"는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여성들의 코미디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날 모인 코미디언들은 블러디퍼니, 서촌코미디클럽, 부산코미디클럽, 제주코미디클럽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공연 일정은 인스타그램 등 각 단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볼 수 있다.

▲8일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코미디 쇼 출연진ⓒ유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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