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2층에 위치한 구제상가가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 1층 먹자골목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반면 상층부 구제상가는 빈 점포가 늘어나며 상권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청년 상인들이 떠난 자리는 외국인 관광객과 일부 단골 고객 매출로 겨우 메우고 있지만 남은 상인들은 치솟는 유지비 부담에 냉난방마저 중단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다.
9일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광장시장 1층 먹자골목은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반면 '수입구제' 간판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문을 닫은 상점들이 늘어선 한산한 복도가 나타나 아래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
'K-문화' 확산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1층 먹자골목은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상층부 구제상가는 코로나19 이전의 활기를 회복하지 못한 채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 약 150개에 달하던 광장시장 구제상가 점포 수는 현재 30개 안팎으로 크게 줄었다. 코로나19가 상권 쇠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팬데믹 장기화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이후 기존 주요 고객층이던 일반 소비자와 도소매 상인 상당수가 동대문 신평화시장 등 다른 상권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가를 지키고 있는 점포들은 대부분 최소 10년에서 30년 이상 영업해 온 장기 상인들이다.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상인들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한때 청년 상인들이 대거 유입되며 활기를 띠던 시장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다. 청년 상인들은 상가를 떠나 외부에 독립 매장을 개설하거나 오프라인 점포를 정리하고 라이브커머스 등 온라인 판매로 영업 기반을 옮겼다.
20년째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매장을 유지할 실익이 없다 보니 상인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는 분위기다"며 "과거에는 젊은 상인들과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과 단골손님이 주요 고객층이 됐다"고 말했다.
청년 상인들의 전통시장 이탈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통시장 청년몰에 최초 입점했던 점포 741개 가운데 401개가 문을 닫아 폐업률이 54.1%에 달했다. 이에 따라 전통시장 전체 상인 가운데 39세 이하 청년층 비중 역시 6.9%에서 4.2%로 감소했다.
상가를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점포들은 비용 절감을 통해 버티는 상황이다. 공실이 장기화되자 건물주는 점포 방치를 막기 위해 임대료를 사실상 면제하고 관리비만 받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정 비용 부담이 커지자 상인들은 기본적인 영업 환경 유지마저 포기하고 있다. 냉난방 장치 가동을 중단하고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는 등 유지비 절감에 나선 것이다. 신규 창업자의 유입이 끊기면서 상권의 자생력도 크게 약화됐다. 기존 상인들이 떠난 빈 점포를 채울 새로운 임차 수요가 거의 없어 상권 내부 활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30년 넘게 영업해 온 한 상인은 "가게를 정리하는 사람만 보일 뿐 새로 장사를 해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며 "하루 종일 손님 한 명도 못 보는 날이 많아 남은 상인들도 그저 버티기 위해 문을 열어두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생존을 위해 외국인 관광객과 해외 바이어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먹자골목을 통해 유입되는 외국인 관광객이 상가 매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일부 점포는 상설 영업 대신 특정 요일에만 매장을 열어 도매 거래를 중심으로 영업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상인회 관계자는 "일부 매장은 금요일 하루만 문을 열어 일본인 바이어 등에게 구제 의류를 대량 납품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광장시장 구제상가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묘시장이나 동대문 신평화시장과 비교했을 때 광장시장만의 고유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상권의 특색이 약하면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이 다시 찾도록 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도 돋보일 수 있는 구제상가만의 뚜렷한 콘셉트와 차별화된 매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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