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한 정부의 약가 인하 행보가 가시화되면서 제약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인하가 결국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의지를 꺾고, 중소 제약사들은 생존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가격 인하 폭을 두고도 정부와 업계의 입장 차가 큰 상황에서 다가오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논의에 이목이 집중된다.
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11일 건정심 소위원회에 약가 제도 개선 방안을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소위에서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 등 개선안의 기본 뼈대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앞서 제네릭 가격 산정 기준을 현행 오리지널 약가의 53.55%에서 40%대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히고 제도 시행을 올해 7월로 계획했으나, 업계 반발이 거세 2월 건정심에서는 안건 상정이 보류된 바 있다. 약가 산정률 '40%대 수준'을 놓고 정부와 업계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소위 논의 이후 이달 건정심 본회의에서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인하율이 정부안대로 40%초반 대에 결정되면 국내 제약사의 수익구조와 신약개발 투자 판도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약가개편안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같은 인하율을 지난해 국산 전문의약품 전체에 적용하면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에 이르는 산업계 피해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 제약사 임원은 "정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약값 인하 밀어붙이기'에 나서면 중소·중견 제약사는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 이외의 선택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글로벌 빅파마와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10대 글로벌 빅파마들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금액은 2023년 기준 총 1270억 달러(약 189조2600억원)에 달했다. 특히 미국 머크의 연간 R&D 투자 규모는 310억 달러(약 46조1900억원)로, 연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국내에서 매출 상위 제약사로 꼽히는 유한양행과 GC녹십자의 경우 2023년 매출의 10%가량인 1900억원대를 각각 R&D에 투자한 바 있다. 머크의 투자 금액만 놓고 비교하면 무려 230배 차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약가를 더 내리면 사실상 신약개발 시장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약가 인하 폭이 최대 변수라고 본다. 정부는 '40% 초반대'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제약사들 사이에선 '40% 후반대'로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경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단 몇 % 차이로 국내 제약사의 수익구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정부가 약가를 일방적으로 낮추면 R&D 투자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10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업계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과 권기범 이사장(동국제약 회장)이 나서 직접 브리핑 한다.
일각에선 약가 인하 기조 자체보다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현재는 중동전쟁 파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전쟁 이슈로 인해 의약품 공급 중단 등 불안한 상황에서 1년 유예 등 속도 조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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