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가 객성을 세계 최초로 관측(경기일보 2025년12월29일자 10면)한 공간이 파주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후속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9일 파주문화원 부설 파주학연구소에 따르면 율곡은 세계 최초의 객성 관측 당시인 1572년 여름부터 1573년 여름까지 파주에 머물렀던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이 율곡 연보 및 실록 등을 통해 확인됐다.
기록을 보면 율곡은 선조 5년(1572년) 3월 서울에서 여름 부응교에 제수됐지만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파주 율곡리로 돌아왔다. 이 시기 율곡은 선조로부터 수차례 관직 제수를 받았으나 사양한 것으로 기록됐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6일 객성 관측 기록이 석담일기에 수록됐다. ‘객성이 책성 옆에서 발견됐는데 밝기가 금성과 같다(客星見於策星之側, 大如金星)’는 기록이다. 이듬해 선조 6년(1573년) 여름 실록에 “이이를 직제학으로 삼았으나 물러나 시골(파주)에 있으면서 출사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파주학연구소는 당시의 기록인 석담일기도 조명했다. 석담일기에 수록된 객성 관측 기록은 조정 재직 중의 공식 경연 기록이 아닌 율곡의 사찬 기록이지만 율곡의 객성 관측을 기록한 석담일기는 이후 국가기록으로 ‘선조수정실록’(1657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증보문헌비고’(1907년) 등에 잇따라 인용됐다.
율곡의 천문지식도 분석됐다.
파주학연구소 측은 “율곡이 파주목사였던 변협과의 강명(講明) 과정에서 천문과 지리 문제를 논했다. 그의 관심이 단지 천인감응론에 입각한 이론적 차원의 ‘천도책(天道策)’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며 “석담일기에 보이는 객성 관측기록도 이 같은 인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문성 파주학연구소장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천문 등 관련 국가 문서 대부분이 소실됐다”며 “그래서 율곡의 파주 낙향 시기 천문 인식과 기억 등을 석담일기에 정리해 남겼다는 점에서 사료사적으로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세계적 관측천문학자인 연세대 나일성 명예교수는 “율곡이 1572년 관측한 객성은 당시 중국과 유럽보다 2~5일 앞서고 위치, 밝기 표현도 더 정확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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