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이라는 대형 지정학적 악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면서 시중 자금의 흐름이 급격히 ‘안전자산’으로 회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위협하는 초강세 국면에 진입하자, 한동안 주춤했던 달러예금과 금 등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는 ‘U턴 현상’이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2월 말 반등 성공한 달러예금…3월 초 ‘강달러’에 관망세 전환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2월 말 기준 달러예금 잔액은 658억4142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대비 1억6702만달러 증가한 수치로, 지난 1월 감소세(-718만 달러)를 보였던 흐름이 한 달 만에 반전된 셈이다.
하지만 지난 4일 기준 잔액은 641억5659만달러로 집계되며 일시적인 소강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를 ‘수요 감소’가 아닌 ‘환율 급등에 따른 일시적 관망’으로 해석한다.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환율이 불과 일주일 사이 70원 이상 폭등하며 1500원에 육박하자, 신규 진입 시점을 저울질하는 대기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9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98.60원을 기록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시중은행 외환 담당 관계자는 “2월 말부터 지정학적 리스크를 예견한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며 “현재는 환율이 너무 가파르게 오른 탓에 추격 매수보다는 향후 추이를 지켜보려는 ‘대기 모드’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은 ‘결제대금 확보’, 개인은 ‘환차익 기대’…투심 자극
환율 변동성 확대는 기업과 개인 모두를 달러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전체 외화예금의 약 80%를 차지하는 기업 자금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수입 결제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선 환율이 더 오르기 전 선제적 달러 확보가 비용 절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 전쟁의 향방을 가늠하기 쉽지 않아 환율 전망 역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일부 기업들이 향후 지급·결제에 대비해 달러 자금을 미리 확보해 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과거 환율 상승기마다 학습된 ‘달러 불패’ 신뢰가 다시 작동하고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관세 논란 등으로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였을 때 개인 달러예금이 급증했던 학습 효과가 있다”며 “최근 변동성이 커지면서 환차익을 노린 스마트 머니가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수익보다 생존” 금·은 등 실물 안전자산도 ‘풍선효과’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은 비단 달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면서 금과 은 등 실물 자산으로의 자금 이동도 가속화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의 골드뱅킹 잔액은 최근 2조4000억원을 돌파했으며, 은에 투자하는 실버뱅킹 계좌 역시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당분간 ‘리스크 관리’가 자산 운용의 최우선 순위가 될 전망이다.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서며 지난 2월 말 환율을 1430원대까지 끌어내리기도 했으나, 중동발 전쟁 공포라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등장하며 시장의 자정 작용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리스크 관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수익 확대보다는 자산 가치 변동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직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