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대변해야 할 농협중앙회가 회장 선거 과정에서의 비리와 수뇌부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농민 지원에 쓰여야 할 재단 사업비가 회장의 ‘보은용’ 선물비로 둔갑하고, 임직원들이 공금을 개인 사치품 구매에 사용하는 등 조직 전반의 내부 통제가 완전히 마비된 실태가 정부 합동 감사에 적발됐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조정실, 농림축산식품부, 금융위·금감원 등이 참여한 ‘농협중앙회·자회사·회원조합 합동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공금 유용과 특혜성 대출 등 위법 소지가 큰 14건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총 96건의 제도 개선 및 시정 조치를 처분하기로 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농협재단의 예산이 강호동 회장의 사적 목적을 위해 조직적으로 동원됐다는 점이다. 강 회장은 2024년부터 올해까지 농협재단 핵심 간부 A씨를 통해 재단 사업비를 유용했다. 농협 홍보용 쌀국수 구매 대금과 농업인 자녀 모종 세트 지원비 등 약 4억 9,000만 원이 강 회장의 선거를 도운 조합장과 임직원들을 위한 선물 및 골프대회 협찬비로 지출됐다.
간부 A씨는 ‘쌀 소비 촉진 캠페인’ 사업비 등 1억 3,000만원을 빼돌려 자신의 사택 안마기와 가구를 사고 자녀 결혼식 비용으로 썼다. 이 과정에서 지시를 받은 재단 직원 2명은 자금을 추가로 유용해 350만 원 상당의 명품 커플링을 구매하는 등 기강 해이가 극에 달한 모습을 보였다.
강 회장 개인의 특혜 향유와 독단적 경영 실태도 낱낱이 공개됐다. 강 회장은 지난해 2월 취임 1주년 기념 명목으로 한 지역조합운영위원회로부터 580만원 상당의 황금열쇠(10돈)를 받아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거주 환경 역시 규정을 무시한 ‘황제급’이었다. 강 회장은 전용면적 기준(60㎡)을 초과한 84.98㎡ 사택을 전세 계약하며, 보증금 상한선인 5억원을 두 배 이상 넘긴 12억원을 사용했다. 또한, 성과 평가 없이 지급되는 ‘직상금’ 75억원 중 39억 8,000만원이 강 회장 본인에게 집중 지급된 사실도 확인됐다.
특히 농협 수뇌부의 퇴직금은 신협(회장 퇴직금 없음)이나 수협·산림조합(일반 직원과 동일) 등 타 협동조합에 비해 3배 이상(전임 회장 기준 3.2억원) 높은 것으로 나타나 ‘나눠먹기식’ 예산 집행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중앙회뿐만 아니라 자회사와 지역 조합의 구조적 비리도 심각한 수준이다. 중앙회는 농협경제지주의 요청으로 신설 법인에 145억원의 부적절한 대출을 실행해 부실을 초래했다.
또한, 퇴직 임원이 고문 등으로 재취업한 업체에 거액을 대출해주거나, 수의계약 금지 규정을 피하기 위해 사내전용 온라인몰(MRO샵)을 이용해 특정 신생 업체에 수십억 원대 계약을 몰아준 정황도 포착됐다.
일부 지역 조합은 적자를 가리기 위해 연체 금리를 임의로 조정하거나 대손충당금을 과소 설정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조작했다. 이렇게 조성된 ‘가짜 이익’으로 4.4억 원의 배당을 실시하며 조합의 재정 건전성을 갉아먹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농협 퇴직자 단체가 출자한 영리법인이 15년간 농협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방치해 약 37억원의 손해를 끼친 사례도 적발돼 공정위 조사가 예고됐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짬짜미식' 내부 통제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준법감시인과 감사위원이 전·현직 조합장 등 내부 인사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회장과 핵심 간부의 전횡을 견제할 장치가 사실상 전무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특별감사를 통해 농협의 위법과 전횡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최근 출범한 ‘농협개혁추진단’을 통해 선거 제도 개선과 내부 통제 강화 등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마련해 조속히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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