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많은 이들이 한 영화를 찾았다는 것은 작품이 전하는 진심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깊은 울림을 남겼다는 뜻일 것입니다. 창작자들의 열정과 도전, '관객'의 사랑이 한국 영화를 성장시켜왔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의 1000만 돌파 역시 그런 힘이 만든 값진 결실입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6시 30분,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31일 만에 1000만 고지를 점령했다.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2024년 '파묘'와 '범죄도시4' 이후 2년 만이다.
이와 함께 의미 있는 기록을 더했다. 장항준 감독은 2005년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올랐다. 유해진은 '왕의 남자' '베테랑' '택시운전사' '파묘'에 이어 다섯 번째 '천만 영화'를 필모그래피에 추가했다. 박지훈은 첫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천만 배우'에 이름을 올렸고, 유지태 또한 1998년 배우로 데뷔한 이후 첫 '천만 영화'를 남기게 됐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다. 2월 4일 개봉, 애초부터 '휴민트' '넘버원' 등과 설 연휴 경쟁을 벌일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지난 1월 21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왕과 사는 남자'를 처음 관람했을 때만해도 1000만 관객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등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와 장항준 감독의 스토리텔링은 좋았다. 하지만 기자들 사이에서 연출력에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이 여럿 있었다. 특히 최근 극장 상황을 고려 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볼까 걱정이 앞섰다. 다만 설 명절이라는 특수성을 감안 했을 때,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역사물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기대작 '휴민트'를 제치고 승기를 잡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더욱 뚜렷해진 것은 '입소문'이 흥행의 열쇠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멜로영화 '만약에 우리'가 관객들의 '공감'을 사고 폭발적인 입소문을 탄 끝에 260만 관객을 돌파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영화는 동시기 1000만까지 예상했던 '아바타: 불과 재'를 짓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전 예매율이 '휴민트' 보다 낮았다. 그러나 설 연휴 동안 유해진의 '원맨쇼'급 연기와 '박지훈'이라는 놀라운 발견에 힙입어 입소문을 타기 시작, 5일 동안 무려 267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개봉 14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고, 연휴 마지막 날에는 누적 관객 수 420만 명에 육박했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설 연휴가 지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20일 만에 600만, 24일 만에 700만, 26일 만에 800만명을 동원, 주말마다 압도적인 관객수를 이어간 끝에 31일 만에 '꿈'의 1000만 관객 돌파 신화를 이뤘다.
펜데믹 이후 OTT, 유튜브 등 콘텐츠 소비 방식이 급변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영화산업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물론 배우들도 극장 영화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예고편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영화를 본 관객 반응을 보고 '재미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철저하게 외면하는 현실이었다. 관객들은 더욱 냉정해졌고, 극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투자와 제작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시기 창고에 쌓아뒀던 영화도 거의 다 소진 된 상황, 이른바 5대 대형 배급사(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는 올해 리스크를 최소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필자는 올해 초, 이들 대형 배급사를 통해 관객이 만날 한국영화가 20편 남짓이라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제작 편수도 10편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올해가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측면에서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의미가 남다르다. 극장 영화의 현주소를 뒤짚었고, 한국영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어떤 작품이든 호불호가 존재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관객들이 원하는 지점을 간파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맛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다. '입소문'이 터지면서 말 많고 탈 많던 문제의 호랑이CG까지 하나의 에피소드로 넘기는 모양새가 됐다. 작품이 잘 되지 않았다면 '욕'으로 댓글창이 도배 됐을 '옥의 티'인데 '여론'의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걸 보여줬다.
이처럼 극장 영화를 향한 긍정적인 반응이 형성됐고, 이는 올해 개봉할 작품들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위축됐던 투자와 제작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피어 올랐다.
뿐만아니라 '왕과 사는 남자'가 1000만 고지를 향하는 동안 '단종'의 유배지이자 영화 촬영지인 영월의 청령포·장릉도 함께 인기를 누렸다. 올해 1월 1일부터 3월 8일까지 청령포·장릉의 누적 관광객 수는 약 11만 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의 경우 연간 관광객이 6월 들어서야 10만 명을 넘어섰는데, 올해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과 맞물려 두 달여 만에 이 기록을 달성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그야말로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장항준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고 방송, 유튜브, SNS 등에서 명장면 패러디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누가 극장에 사람이 없대?"라며 '왕과 사는 남자' 이후 북적이는 극장 풍경을 담은 영상도 눈길을 끌었다.
결국 한국 극장 영화의 생존 여부는 '관객'에게 달렸다. 그리고 창작자들을 비롯해 업계 관계자들이 그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더욱 애써야 하는 시점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1100만을 넘어 파죽지세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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