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한민국의 마약청정국 지위를 되찾겠다던 윤석열정부 검찰의 플랜은 실패했다. 해외 감옥에서 지속적으로 마약을 유통하는 이들에 대한 인도·송환 요청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마약왕 박왕열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필리핀을 찾아 박왕열에 대한 임시 인도를 요청했다.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윤석열정부 검찰은 이전 정권과는 다르게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갔다. 반대로 마약사범은 오히려 늘었다. 매년 동남아시아로부터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이 들어왔다.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린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 박왕열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수년간 수십억 상당의 필로폰을 국내에 유통해 왔다.
대통령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필리핀 마닐라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하고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 중이면서도 계속 텔레그램을 이용해 한국으로 마약을 수출하는 ‘박왕열’이라는 사람이 있다“며 ”교도소로 애인을 불러 논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인물의 범죄자 임시 인도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에서 이 사람을 수사해 처벌하겠다는 것”이라며 “마르코스 대통령도 이른 시일 안에 적극적으로 검토해 시행하겠다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2022년 10월 필리핀 당국에 검거돼 현지에서 징역 6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과거 두 차례 탈옥해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20년 10월 다시 붙잡혔다.
<일요시사>는 지난 2022년 8월 필리핀 현지 취재를 통해 박왕열이 메트로 마닐라 문틴루파에 있는 뉴빌리비드 교도소(NBP)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NBP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에 위치한다. 수감자의 43%가 살인 및 신체적 상해 관련 범죄로 수감돼있으며, 특히 연쇄살인범과 마약계 거물 등도 포함돼있다. 이들 대부분이 20년형 이상을 선고받은 재범 범죄자들이다. 이 외에도 20년 미만의 복역자를 수용하는 중간 보안시설, 형기를 마치기 직전이나 70세 이상 고령자 및 아보 교도소를 수용하는 최소 보안시설 등 3개 구역으로 구성돼있다.
윤정부 ‘마약 전쟁’ 실패…해외 도피자 봐주기
과거 법무부, 송환신청서 안 보내고 소극 행정
2021년 11월 기준 수용된 인원은 3만여명이다. 이상적 수용 인원이 65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과밀화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명도 되지 않는 필리핀 법무부 산하 수정국 간수들이 낮 동안 출입문을 통제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수감자 약 10000명(PDL)이 올해 안에 국내 다른 교도소 시설로 이송될 예정이다. NBP 외에도, 메트로 마닐라 외곽에 위치한 교도소 시설로는 팔라완의 이와히그 교도소 및 교도소장(IPPF), 오시덴탈 민도로의 사블라얀 교도소 및 교도소장(SPPF), 잠보앙가시의 산 라몬 교도소 및 교도소장(SRPPF), 다바오 교도소 교도소장(DPPF), 레이테 지역 교도소(LRP)가 있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NBP가 2028년 이전에 폐쇄될 전망이다. 정부기관, 주택 등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라고 전했다.
필리핀 교정당국은 지난해 12월 말까지 약 28000여명의 수감자 중 1만8222명이 형기 만료로 석방됐고 나머지는 가석방, 무죄 및 기타 법적 구제책을 통해 풀려났다고 발표했다. 혼잡 체증률은 2022년의 356%에서 69% 감소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NBP 내 마약 밀수 행위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11월 말 NBP 측은 최고 보안 구역으로 알려진 섹터 1 게이트 검사 중 여성 교도관의 바지 주머니 안에서 필로폰과 플라스틱 막대기를 발견했다. 이 교도관은 NBP 내부 병원에서 수감자들과 자주 접촉했다고 한다.
같은 달 초에도 NBP 내에서 1급 교도관이 13만페소(한화 약 325만원), 19.4g(동시 투약량 600여명) 상당의 필로폰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 교도관은 필리핀 문틴루파시 경찰과 마약단속국(SPD-DEU)의 공조로 잡을 수 있었다.
박, 최근까지 마약 유통 호화생활도 유지
마닐라 외곽 서부 섬 수감 자유롭게 활보
NBP는 일반적인 감옥과는 다르게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고립된 범죄자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2014년 NBP를 급습한 필리핀 수사기관은 마약은 물론 140만페소(3354만4000원) 상당의 현금과 스트립바, 최고급 욕조, 에어컨 시설 등을 발견했다.
박왕열 측이 유통한 마약의 규모는 경남지방경찰청 수사로 확인된 것만 50억원 정도다. 하지만 적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NBP 내부에서 박왕열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NBP 직원 대부분이 그를 알았고 마약·살인 전과가 있는 거물급 재소자들과 인맥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닐라의 모처에서 만난 NBP 관계자는 “필리핀에서도 유명한 마약 거물급 인사들이 박왕열을 알고 있다. 그가 탈옥에 두 번 성공했어도 여기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세 번째 탈옥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걱정되는 게 있다면 돈의 유혹에 넘어가는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재소자들이 NBP 직원들에게 로비와 스폰 등을 통해 탈옥을 시도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필리핀은 사법 관리와 체계가 선진국에 비해 허술한 편에 속한다. NBP와 같은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정당국 관계자들은 한 달에 2만~3만페소(한국 돈으로 50만~60만원) 밖에 벌지 못한다.
지금도 유통
그러나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재소자 중 마약 조직 보스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NBP 직원들이 버는 돈의 10배가 넘는 금액으로 로비를 일삼는다. 이 같은 로비 행위가 수년간 이뤄지다 보니 매년 NBP에서 비위행위로 직위가 해제되는 직원들도 있다.
박왕열은 현재 마닐라 서부에 위치한 한 섬에 수감돼있다. NBP에서 지냈던 것처럼 섬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최근까지 마약 유통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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