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서울 토포하우스는 1980년대 실험미술 그룹 ‘난지도’를 이끌며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기를 열었던 중견 화가 김홍년 초대전 ‘화접(花蝶), 감정의 구조화... 행복 날다’를 오는 11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한다.
봄의 길목에서 ‘나비’를 매개로 한 장엄한 사유의 장을 펼치는 이번 초대전은 30여 년간 이어온 작가의 ‘화접(花蝶)’ 연작이 도달한 예술적 정점을 보여주는 자리다.
김홍년의 화면에서 나비는 단순히 자연을 모사한 소재가 아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수천 송이의 꽃들은 인간이 느끼는 기쁨, 희망, 사랑과 같은 ‘감정의 최소 단위’로 기능한다. 이 파편화된 감정들이 층층이 쌓이고 구조화되어 마침내 거대한 나비의 형상으로 비상하는 과정은, 인간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조형적 응답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층고 4.6미터의 자연채광이 어우러지는 토포하우스 제2, 3전시실의 특성을 살려, 240×400cm, 220×420cm에 달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대형 연작을 포함해 총 16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가의 화접 연작에서 주목할 지점은 나비 날개의 ‘불일치한 대칭’이다. 좌우 날개는 닮아 보이지만 색의 농도와 꽃의 배열이 미묘하게 다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완전한 대칭을 허락하지 않는 인간 감정의 본질”을 표현한다.
동시에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다”는 명제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적 관계를 시각화한다. 개별적인 꽃(개인)들이 모여 날개라는 구조(사회)를 이룰 때 비로소 비행이 가능하다는 윤리적 선언인 셈이다.
전통 회화에서 나비와 꽃이 번영과 장수를 상징하는 길상의 의미였다면, 김홍년은 이를 현대적 심리로 확장한다. 그의 나비는 관람객에게 ‘당신의 감정은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외적인 행운보다는 내면의 감정이 메마르지 않고 피어 있는 상태, 즉 ‘안쪽의 복’을 환기한다.
작가는 “하늘을 나는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처럼 관람객들이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희망을 품은 채 환상의 세계로 날아오르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홍년 작가는 1980년대 초 실험미술 그룹 ‘난지도’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 탐구를 이끌었다. 이후 1996년부터 나비를 상징 언어로 삼아 회화뿐만 아니라 세빛섬의 대형 설치미술, 뉴욕 타임스퀘어 미디어아트 전시 등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삼성 갤럭시 Z 플립, 주얼리 브랜드 티르리르와의 협업 등을 통해 순수 회화의 대중적 확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새봄의 생동감과 함께 찾아온 이번 전시는 ‘감정은 어떻게 존재가 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거장의 묵직한 조형적 해답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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