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이지영 기자 | 중동 정세 불안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국내 정유업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인 만큼 공급 차질이 이어질 경우 정유사 설비 가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국제 원유시장 동향과 수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브라질·서아프리카 등 중동 외 지역에서 대체 원유 확보에 나서는 등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내 원유 수입의 71%가 중동산으로 집계됐다. 아메리카 지역 비중은 23%, 아시아 4%, 아프리카 2% 수준에 그친다.
다만 단기간 내 중동 물량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원유 종류에 따라 정유 설비의 운용 효율과 제품 수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존 공정에 최적화되지 않은 원유를 대량으로 들여올 경우 생산 효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원유 운송에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국내 정유사에 원유를 공급할 예정이던 원유 운반선 7척이 해협 인근에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대형 유조선 한 척당 최대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약 일주일치에 가까운 국내 석유 소비량이 해협 주변에 묶여 있는 셈이다.
원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달 비용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브라질산 경질 원유의 중국 인도 가격 프리미엄은 브렌트유 대비 배럴당 2~3달러 수준에서 최근 13~14달러까지 급등했다.
여기에 원유 운임 지표인 발틱원유유조선지수(BDTI)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란 공습 직전인 지난달 27일 1991포인트였던 지수는 이달 5일 3083포인트로 약 55% 상승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정유사 설비 가동률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정유사는 중동산 원유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서 4월 도착분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가동률 하향 조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 공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유 추가 구매에 나서고 있다"며 "원유와 선박 확보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는 등 국내 공급 안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원유 수급 안정 확보를 위한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지난 6일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약 6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 역시 같은 날 쿠웨이트산 원유 200만 배럴을 추가 확보해 입고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재 국내 원유·석유제품 비축량은 정부 비축 7648만 배럴과 민간 재고 7383만 배럴을 합쳐 약 1억5700만 배럴 수준이다. 여기에 3개월 내 추가 확보 가능한 물량까지 포함하면 약 208일분의 대응 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부 비축유는 국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전략 물량이기 때문에 정유사들이 상업적으로 즉시 활용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개별 정유사의 재고 상황에 따라 정부가 비축유를 방출하는 방식의 수급 안정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국석유공사는 그동안 1991년 걸프전, 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2011년 리비아 사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총 다섯 차례에 걸쳐 국제에너지기구(IEA) 등과 공조해 정부 비축유를 방출한 바 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에는 약 2주 만에 비축유 방출을 결정하며 시장 안정에 나선 사례가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비축유 방출 여부를 신속히 결정할 경우 재고 부족에 대한 불안 심리로 발생하는 가수요를 완화하고 유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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