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6년 가을 한양 창덕궁. 평생 섬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제주 출신의 한 상인이 국왕(정조)을 배알하기 위해 궁궐에 들어섰다. 제주 여성은 육지로 나갈 수 없다는 국법인 이른바 ‘출륙금지령’이 깨진 순간이었다. 1795년 대기근에 빠진 제주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곡식을 나눠준 공로로 한양 방문의 특전을 얻은 김만덕(1739~1812년)의 이야기다. 엄격한 신분제와 남성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한 여성이 경제적 성취와 빈민 구휼을 통해 국가 시스템의 예외를 만들어낸 역사적 장면이다.
이달 8일은 유엔이 1975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한국 역사에는 시대의 금기를 깨고 사회 구조의 흐름을 바꾼 여성들이 존재한다. △독립 △의료 △경제 △문화 △정치 각 분야에서 한국 사회 변화의 이정표를 세운 대표적 여성 5명의 궤적을 짚어봤다.
독립 분야 3·1 만세운동의 상징 유관순
1919년 3월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1902~1920년)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화학당 학생 신분으로 3·1 운동에 참여해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1920년 18세 나이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2019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유관순 열사의 옥중 투쟁은 수감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1920년 3월 1일, 3·1 운동 1주년을 맞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서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대규모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순국은 당시 침체되었던 독립운동 정신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와 독립 정신의 영원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의료 분야 근대 의료 문 연 최초 여성 의사 박에스더
조선 말기 여성 교육과 근대 서양 의학의 문을 연 인물은 박에스더(1877~1910년·본명 김점동)다. 서울 정동 이화학당에서 수학한 그는 도미해 볼티모어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900년 한국인 최초로 여성 의사 자격을 취득한 뒤 귀국했다. 이후 여성 환자 진료와 근대적 의료 교육에 매진하며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 사실상 전무했던 시대에 의료 영역의 개척자적 선례를 남겼다.
귀국 후 박에스더는 연간 3000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당시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기 꺼려하던 조선 여성들에게 그는 유일한 구원자와 다름없었다. 가마 대신 나귀를 타고 전국 팔도의 험지를 누비며 위생 교육과 전염병 예방에 힘썼으나, 과도한 업무로 인한 과로와 폐결핵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헌신은 이후 한국 여성 의학 교육의 기틀이 되었으며, 후대 여성들이 의료 전문가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문을 열어주었다.
경제 분야 전 재산 내놓은 빈민 구휼가 김만덕
김만덕은 경제 활동과 사회적 책임(노블레스 오블리주)을 결합한 대표적 사례다. 객주를 운영하며 유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그는 제주 역사상 최악의 기근 앞에서는 주저 없이 전 재산을 내놓았다. 조선 조정이 그의 공을 인정해 벼슬(내의원 의녀반수)을 내리고 소원을 들어준 일화는 상업을 천시하던 조선 시대 민간 구휼 활동의 기념비적 기록이자 여성의 사회적 영향력을 입증한 사례로 남아 있다.
김만덕의 구휼 활동은 단순한 자선을 넘어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던 재난 상황에서의 민간 주도 복지 모델을 제시했다. 당시 정조는 제주 목사가 올린 장계를 보고 "기특한 일이로다"라며 감탄했고, 영의정 채제공은 직접 ‘만덕전’을 지어 그의 의로운 행적을 기록했다. 제주도민들은 그를 '할망(할머니)'이라 부르며 칭송했으며, 그의 정신은 현대에 이르러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매년 만덕제를 봉행하며 그의 경영 철학과 나눔 정신을 기리고 있다.
문화 분야 조선 대표하는 예술가 신사임당
문화 영역에서는 신사임당(1504~1551년)이 독보적인 족적을 남겼다. 조선 중기의 화가·시인·서예가로 활동하며 특히 풀과 곤충을 세밀하게 묘사한 <초충도(草蟲圖)> 등 걸출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그의 예술 활동은 철저한 유교 사회 속에서도 여성의 독자적인 학문 및 예술적 성취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지표다. 현재 한국 5만원권 지폐의 초상 인물로 쓰이고 있다. 초충도(草蟲圖)>
신사임당의 예술 세계는 당대 남성 사대부들로부터도 "안견에 버금가는 실력"이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숙종은 그의 초충도를 보고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이 넘친다"며 시를 지어 찬탄하기도 했다. 흔히 '현모양처'의 대명사로만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본가인 강릉 북평촌에서 상당 기간 거주하며 독자적인 예술 활동을 영위한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그의 필법과 화풍은 아들 율곡 이이에게 학문적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화단의 미학적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 분야 헌정사 최초와 파면 기록 박근혜
현대 정치사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굵직한 기록을 남겼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2013년 취임하며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며 정치권의 견고한 유리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고 2017년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하며 헌정사 첫 ‘대통령 파면’이라는 불명예 기록도 동시에 남겼다.
박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한국 정치사에서 극명한 명암을 남긴 시기였다. 기초연금 도입과 공무원 연금 개혁 등 복지 및 공공 부문 체질 개선을 시도했으나, 소통 부재와 인사 편중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2016년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정황이 드러나며 전국적인 촛불 집회를 불러왔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그는 구속 수감되었으며, 2021년 12월 특별사면을 통해 석방되었다. 그의 정치 여정은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권력의 정당성과 책임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적 사례로 기록되었다.
☞출륙금지령= 조선 시대 제주도민이 허가 없이 육지로 나가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법령이다. 인구 유출을 막고 국역을 유지하기 위해 시행됐으나, 제주도민의 삶을 척박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여성경제신문 기자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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