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이지영 기자 | 서울 시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ℓ당 2000원에 근접하자 정부가 석유 판매가격 상한을 직접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소비자 부담이 빠르게 커지면서 가격 통제라는 강도 높은 정책 카드까지 논의 테이블에 오른 상황이다.
다만 석유 가격 통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사실상 사용되지 않았던 비상조치다. 시장 왜곡과 재정 부담 등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아 실제 도입 여부를 두고 정부 내부에서도 신중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8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 검토에 나선 배경에는 최근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기름값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 있다. 과거에는 국제유가 변동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주가량 시차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상승분이 즉각 반영되며 가격이 급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유류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한 상황도 아닌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갑자기 크게 올랐다"며 석유류 제품에 대한 최고가격 지정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6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기름값 바가지처럼 공동체의 어려움을 이용해 부당 폭리를 취하려는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지시 이후 정부는 곧바로 범정부 차원의 대응에 착수했다. 범부처 합동점검단이 6일부터 불법 석유 유통과 매점매석, 가짜석유·혼합판매 등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집중 단속에 들어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유소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법무부 역시 유가 담합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검찰에 강력 대응을 주문했다. 재정경제부는 유류세 인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에너지 수급 안정 차원의 대응도 병행된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6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의 압박 속에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유통협회, 한국주유소협회 등 석유 관련 3개 단체는 6일 공동 입장을 내고 “국제유가 상승분이 주유소 가격에 급격히 반영되지 않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국내 기름값 상승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7일 밤 11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90.87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경우 평균 가격이 1942.08원으로 이미 1900원을 넘어섰다.
전날보다 상승 폭은 다소 둔화했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기름값의 추가 상승 압박은 여전히 큰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기름값 2000원 시대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를 근거로 석유 최고가격 지정 고시 발동 가능성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석유 가격이 급등락해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판매 가격의 최고액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며 초과 수익은 환수 대상이 된다.
다만 실제 제도 발동 여부를 두고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정부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할 경우 정유사와 주유소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공급 물량을 줄이거나 판매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 구매 대란 등 또 다른 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 석유사업법에는 가격 통제로 발생한 사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할 수 있다는 규정도 포함돼 있다.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민간의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해야 해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와 비축유 방출 등 다른 대응 수단도 함께 검토하면서 국내 유가 흐름을 지켜본 뒤 최고가격제 발동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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