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RAN LANTINK
겁내지 않고 자른다. 옷은 그 과정에서 입체가 된다. ‘오류는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새롭고 예기치 못한 가능성을 연다. 몇 달 전, 장 폴 고티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첫 컬렉션 공개를 앞둔 듀란 랜팅크를 만났다. 메종 창립자와 닮은 에너지, 대담함, 패션을 놀이처럼 다루는 그의 욕망・・・.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더욱 가치 있는 그의 이야기를 지금 꺼내본다.
장 폴 고티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듀란 랜팅크.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듀란 랜팅크가 장 폴 고티에에서 첫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을 선보였다. 한 시대를 이끈 디자이너의 자리를 새로운 세대가 잇는 순간. 데뷔를 앞두고 패션계 기대가 컸던 이유다. 1987년생 랜팅크는 2016년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1년부터 정식 시즌 컬렉션을 발표하며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이미 존재하는 옷을 자르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으로 주목 받았다. 이는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다. 과잉 생산과 폐기를 반복하는 패션 산업에 대한 질문이자, 옷을 만드는 방식을 새롭게 생각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옆 페이지 사진 속 랜팅크는 자신의 스튜디오 창가에 앉아 있다.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태연하게 담배를 태우는 모습은 꾸밈이 없다. 끈이 풀린 운동화부터 그의 2025년 F/W 컬렉션을 대표하는, 드래그 퀸이 착용할 법한 가슴 모양 실리콘 장식 티셔츠까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를 끝까지 함께 놓아두는 태도. 사람들이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해된다’고 느낄 때까지 그는 이 실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런웨이에는 기존 성별 구분을 흐트러뜨리는 옷이 등장했다. 가슴이 달린 수트를 입은 남성 모델과 남성 상반신을 닮은 수트를 입은 여성 모델이 나란히 걸었던 것. 고무처럼 보이는 소재의 패딩 점퍼, 몸에서 떨어져 앞으로 튀어나온 허리선의 청바지까지. 옷은 조각처럼 보였고, 실루엣은 의도적으로 낯설게 설계됐다. 때로 그의 옷은 몸에 밀착돼 또 다른 피부처럼 작동한다. 얼룩말 무늬 보디페인팅 위에 니하이 부츠를 매치해 수영복 팬티를 강조하고, 뱀피 무늬 캣수트는 볼록한 엉덩이 라인과 공기주머니처럼 튀어나온 턱(Tuck) 구조, 턱까지 올라오는 깔때기형 네크라인으로 모델의 몸을 보호막처럼 감쌌다.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 초반 장 폴 고티에가 탐구했던 아이디어들을 잇지만, 단순한 연장선이 아니다. 활동 시대 때문에 발생한 차이는 아니다. 고티에는 스승 곁에서 배우는 전통적 파리 패션 하우스 시스템 안에서 성장했다. 반면 랜팅크는 암스테르담 패션 기관(AMFI, Amsterdam Fashion Institute), 샌드버그 인스티튜트(Sandberg Institute), 게릿 리트벨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 둥 네덜란드 디자인 교육 환경에서 자랐다. 특히 샌드버그 인스티튜트 재학 시절에 수강한 ‘패션 매터스(Fashion Matters)’ 과정은 패션이 놓인 지속 불가능한 구조를 분석하고, 물질성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민하도록 설계된 수업이었다. 당시 학교를 이끌던 디자이너 유르겐 베이(Jurgen Bey)는 랜팅크를 이렇게 기억한다.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매우 섬세한 사람이었어요. 반항적이고 모험적인 태도를 지녔지만, 옷을 통해 생각과 문화적 태도를 분명히 드러낼 줄 알았어요.”
랜팅크가 처음으로 크게 주목받은 계기는 2018년 가수 저넬 모네이(Janelle Monáe)의 뮤직비디오였다. 여성 성기를 형상화한 핑크 팬츠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는 자신의 이름을 패션 바깥의 대중문화로 확장시켰다. 이듬해에는 런던 패션위크 기간 중 열리는 국제 신진 디자이너 전시에 네덜란드 대표로 선정됐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사라 마워(Sarah Mower)는 “판매되지 않은 옷만으로 구성한 컬렉션이었고, 업사이클링을 기발하면서도 도발적 방식으로 풀어냈죠.”라며 회고했다. 이후 2023년 안담(Andam) 특별상, LVMH 칼 라거펠트 상, 2025년 인터내셔널 울마크 프라이즈를 잇따라 수상했다. 그는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세상이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일이에요. 늘 조용하지 않았고, 지금도 여러 요소를 섞어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죠. 더 과감해지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죠.”
그렇다면 프랑스 패션계의 전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특정 분야에서 경이로운 수준의 두각을 보이는 신인을 일컫는다), 장 폴 고티에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79년부터 1985년까지 〈더 가디언(The Guardian)〉 패션 에디터로 활동한 브렌다 폴란(Brenda Polan)은 고티에의 재능이 드러나던 순간을 지켜본 인물이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파리에는 칼 라거펠트와 생 로랑이 있었어요.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움직임은 다른 곳에서 나왔죠. 티에리 뮈글러, 클로드 몬타나, 그리고 젊은 고티에가 같은 창의적 공간에서 활동하며 일종의 향수를 공유했어요. 1970년대와 달리, 이들의 작업에는 더 많은 구조와 힘이 있었고, 양성애적 감수성에도 훨씬 적극적이었어요.”
고티에는 1940년대 흑백 영화를 특히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자크 베커(Jacques Becker) 감독의 영화 〈파리의 장식(Falbalas)〉(1945)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의 삶을 다룬 드라마로, 그의 커리어에 중요한 영감을 줬다. 폴란은 고티에가 패션쇼에서 반복적으로 오마주한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디트리히가 등장하면 성적 양가성도 함께 등장했어요. 담배를 피우며 누아르 영화 같은 조명을 받는 모습 말이죠.” 고티에의 원동력을 묻자 답은 분명했다. “그는 옷을 통해 개인을 명확히 규정한다든가, 부르주아적 가치나 성별 개념에 묶어두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자신의 성격이 문화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탐구해야 했죠.” 당시 기성세대에게 고티에의 다양성과 퀴어를 옹호하는 태도는 큰 충격이었지만, 이는 이후 도래할 사회적 변화를 예견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1986년, 마워는 폴란의 뒤를 이어 〈더 가디언〉의 패션 에디터가 됐다. “고티에를 인터뷰하던 날, 갑자기 그가 제 팔을 잡으며 말했어요. ‘이제 그만하자. 조수가 첫 쇼를 한다. 같이 가자.’ 그렇게 마틴 마르지엘라 데뷔를 보게 됐죠. 젊은 누군가가 즐겁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고티에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느껴졌어요.” 마워는 이 장면이 최근 랜팅크의 합류와 깊게 연결돼 있다고 확신한다. 고티에 자리를 잇는 일은 단순한 계승이 아니라, 세대 간의 대화이자 협력이다. 고티에처럼 랜팅크 역시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다. 그의 성공은 숙련된 업계 인물들과 상호 작용하며 공동 창작을 통해 배운 경험에서 비롯됐다.
〈판타스틱 맨(Fantastic Man)〉 발행인이자 디자이너인 욥 판 베네콤(Jop Van Bennekom)은 2021년 출간한 책에서 처음 랜팅크를 소개했고, 이후 캠페인을 함께했다. “로고가 형편없다”는 말에 랜팅크는 “알고 있다”고 답했고, 베네콤은 :새로 그려주겠다”고 말했다. 이 짧은 대화만 봐도 랜팅크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임을 알 수 있다. 베네콤은 기존 옷을 재활용하거나 처음부터 3D 형태로 제작하는 등 랜팅크 작업이 지닌 포토제닉한 특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인물이다. 이후 그는 패션 에디터 조디 반스(Jodie Barnes)에게 랜팅크를 소개했고, 반스는 그의 런웨이 스타일링을 맡았다. “모든 일이 아주 빠르게 진행됐어요. 디자인과 진화, 창작, 다양한 영감을 통해 계속 놀라움을 일으켰죠. 정말 재능의 결정체라 할 수 있어요.” 프랑스 패션 홍보계 거물 루시앙 파제스(Lucien Pagès) 역시 랜팅크의 지지자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디자이너만 선택해요. 독창적 방식은 아니지만 기준은 확고합니다.”
랜팅크에게 2026년 S/S 프레타포르테 첫 컬렉션을 맡으며 고티에 커리어와 아카이브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모두가 고티에를 안다고 자신해요. ‘이건 고티에답다’고도 하죠. 하지만 브랜드 규모와 문화적 중요성을 생각하면, 고티에 자신조차 완전히 알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솔직히 아직 아카이브는 열어보지 않았어요. 열기 전, 그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상상하고 싶어요. 이 상황은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죠. 아주 어릴 때부터 주변에는 이미 고티에가 있었어요. 어머니 친구들 모두 그의 옷을 입고 있었죠. 그때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정서적 유대도 생겼어요.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죠. 그의 정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겠지만, 결국 내 방식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유르겐 베이와 랜팅크가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하던 사진을 보면 두 세계 접점이 드러난다. 고티에가 1994년 S/S 컬렉션에서 사용한 튤 소재와 랜팅크의 애니멀 프린트, 부족적 패턴이 몸과 결합해 정확한 위치에 고정된 방식이 그 예다. 랜팅크 미학은 물리적 재료를 직접 다루는 데서 출발한다. 스케치나 복사본을 거치지 않고 바로 3D 접근하는 본능을 따른다. “실수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두려움 없이 손을 쓰죠. 실수하는 과정이 좋아요. 그림으로 작업하면 선택지가 제한돼 오히려 어렵죠. 옷을 자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안감이 드러나거나 숨겨진 솔기가 나타나는데 그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요.”
랜팅크는 업사이클링과 리엔지니어링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티셔츠나 청바지 같은 일상 아이템에 집중한다. 평범하지만 잠재력이 있는 옷을 작은 조작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방식이다. “암스테르담 스튜디오에서는 ‘상업성’을 자주 이야기해요. 흰 티셔츠, 청바지 같은 아주 평범한 옷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변형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뻔한 것들을 골탕 먹이는 게 좋아요. 틀을 깨고, 장난치듯 놀죠. 누군가 이상하다고 하면, 그냥 ‘뭐라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말아요.” 여기서 말하는 ‘이상함’은 랜팅크의 옷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시각적 왜곡과 불편함에서 비롯된다.
〈더 컷(The Cut)〉 기자이자 패션 평론가인 캐시 호린(Cathy Horyn)은 랜팅크 작업에 대해 양가적 평가를 내놓았다. 〈시스템 컬렉션(System Collections)〉 매거진 2025년 F/W호 인터뷰에서 호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옷에는 삶의 기쁨, 교활함, 기하학, 형태를 다루는 감각이 뛰어나요. 모두 긍정적 요소죠.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에요. 뎀나 바잘리아가 이미 15년 전 마르지엘라에서 비슷한 허리선을 선보였죠. 이러한 관형 실루엣은 레이 가와쿠보로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만 랜팅크는 이를 훨씬 생기 있고 재미있게 구현하죠. 아직 그의 기여도를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현대 패션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던 요소를 되살렸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베네콤에게 물었다. 듀란 랜팅크에게 유머란 무엇일까. “유머는 독립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패션 산업의 규칙과 관행, 그 시스템 바깥에 있는 사람만이 무심한 태도를 취할 수 있죠. 듀란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만 안 쓴 것처럼 보이죠. 그 안에는 배려와 엄격함, 놀이 같은 가벼움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바로 그 균형이 그의 패션을 특별하게 만들어요. 이런 스타일은 정말 오랜만이죠.”
랜팅크와의 대화는 디자인을 둘러싼 열린 토론이자 패션을 더 넓은 체계 안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그의 이야기는 건방지면서도 공감 가능하게 흐르고, 바로 그 점이 많은 크리에이터를 끌어들인다. LVMH 시상식 심사위원이었던 마크 제이콥스는 “랜팅크 작업을 볼 때마다 미소가 번져요”라고 말했다. 유르겐 텔러 역시 덧붙였다. “그의 미소와 웃음, 지성이 좋아요. 용기와 모험심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작업도… 정말 많이 좋아해요.”
그렇다면 왜 랜팅크는 고티에 유산을 잇기에 적합할까. 다시 유르겐 베이를 찾았다.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 마킹크 앤 베이(Makkink & Bey)는 고티에 메종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2004년 S/S 쇼 연출부터 파리 오트 쿠튀르 살롱 인테리어, 그랑 팔레(2015)・퀸스트할레 뮌헨(2016)・몬트리올 미술관(2017) 전시 공간 디자인까지 함께했다. 샌드버그 인스티튜트에서 듀란을 만난 뒤 다양한 협업을 거치며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메종의 멋진 점은 이미 갖춰진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죠. 이를 기반으로 바로 작업에 돌입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만든다면 수년이 걸릴 일이에요. 그래서 엄청난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죠. 쉽진 않겠지만, 그의 목소리가 이 브랜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워요.” 이어 베네콤은 랜팅크가 고티에와 닮은 점이 디자인 역량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환상적인 기회에요. 아이러니, 틀을 깨는 태도, 섹스어필. 이렇게 퀴어하고 젠더 플루이드한 감각이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죠. 고티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듀란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티에 역시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서 제가 처음 가졌던 에너지와 대담함, 패션을 가지고 놀고 싶어 했던 마음을 느껴요.”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사진 속 랜팅크는 코르셋을 착용했다. 고티에의 뮤즈였던 마를렌 디트리히를 향한 오마주다. 마치 세대 간 바통 터치처럼 보인다. 새로운 앙팡 테리블, 그 이미지가 여기 있다.
장 폴 고티에 2026 S/S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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