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한민하 기자] 개인 간 거래에 머물던 중고 패션이 브랜드와 플랫폼이 직접 뛰는 ‘순환 유통’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신상품 판매 이후 재판매가 이어지는 ‘리커머스’ 시장이 패션 유통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그간 리셀 플랫폼 등 개인 간 거래(C2C)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중고 패션 시장에 최근 대형 브랜드와 유통사가 잇따라 참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고 거래가 더 이상 비공식적인 보조 시장이 아니라 기업이 직접 관리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유통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현장의 움직임은 거세다. LF가 지난해 9월 론칭한 프리미엄 리세일 마켓 ‘엘리마켓’이 출시 6개월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안착했으며, 코오롱FnC의 리세일 플랫폼 ‘오엘오 릴레이 마켓’도 리세일 매입 대상을 타사 브랜드로 확대했다. 여기에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또한 자체 중고 거래 플랫폼 ‘디스커버리 리마켓’을 공식 오픈하며 브랜드가 직접 중고 가치를 관리하는 흐름에 가세했다. 무신사 역시 패션 중고거래 서비스 ‘무신사 유즈드’가 지난 10월 거래액(GMV)이 전월 대비 234% 급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바 있다.
이 같은 변화의 핵심은 패션 상품의 유통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으로 꼽힌다. 기존 패션 산업은 브랜드가 상품을 기획·생산해 판매하면 거래가 사실상 종료되는 구조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고 시장이 커지면서 한 번 판매된 상품이 다시 거래되고, 재판매를 거쳐 또 다른 소비자에게 넘어가는 ‘2차 유통’이 새로운 시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품의 생애주기가 매장 판매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중고 거래 시장에서 다시 평가받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곧 패션 산업의 성과 지표 자체를 바꾸는 흐름으로도 읽힌다. 그동안 브랜드 경쟁력은 신상품 판매량이나 할인율, 시즌 소진율 등으로 가늠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중고 거래가 커질수록 시장에서는 “이 제품이 중고로 얼마에 거래되느냐”가 또 다른 경쟁력 지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중고 가격이 높게 유지되는 브랜드일수록 품질과 희소성, 선호도가 높다는 신호를 주는 반면 중고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는 브랜드는 정가 체계와 브랜드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중고 거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점이 가장 주목할 만 하다”며 “고객 데이터 확보, 가품 차단을 위해서 브랜드 직접 개입은 생존 전략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브랜드가 중고 시장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나온다. 과거에는 중고 거래가 브랜드 가치 훼손이나 정가 질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중고 시장을 관리해야 브랜드 가치를 방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자사 제품의 중고 거래 가격과 회전율을 살피면 실제 소비 수요와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고, 정품 인증 체계를 통해 브랜드 신뢰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 된다는 이유에서다. 중고 시장이 ‘브랜드 밖 거래’가 아니라 ‘브랜드 가치가 다시 평가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플랫폼 입장에서도 중고 패션은 단순한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읽힌다. 신상품 판매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중고 거래는 이용자 체류시간을 늘리고 거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특히 검수와 인증, 안전결제 체계를 갖춘 플랫폼은 거래 신뢰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중고 거래 서비스가 이용자를 플랫폼 안에 오래 머물게 하는 일종의 ‘락인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상품을 구매한 뒤 중고로 되팔고 다시 다른 상품을 구매하는 순환 소비 구조를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완성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시장 확대에 따른 그림자도 적지 않다. 중고 패션 시장이 커질수록 위조 상품 유통과 거래 분쟁, 소비자 보호 문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검수와 정품 인증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플랫폼들은 인증 체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실제 인증 과정이 까다롭거나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불만도 나온다. 상품 상태 판단이나 환불 기준,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 역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다. 중고 거래가 제도권 유통 채널로 확장될수록 거래 활성화보다 신뢰 체계 구축이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업계 안팎에서는 중고 거래 시장 확대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부담을 낮추면서도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 기업 역시 이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여기에 ESG 경영 흐름 속에서 제품 활용 기간을 늘리고 자원 순환을 강조하려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패션협회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환경 문제와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고 의류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며 “상태가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중고 거래 시장이 자연스럽게 확대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도 이러한 소비 흐름을 고려해 중고 거래 서비스를 또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자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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