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세계가 경탄하는 ‘한강의 기적’만으로 한국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 문화 강국으로의 도약을 동시에 이뤄낸 ‘압축 성장’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눈부신 속도 뒤에는 수많은 역사적 굴곡과 복잡한 사회적 층위가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한국을 역사와 사회, 문화의 흐름 속에서 설명하려는 책 <한국, 한국인> 이 출간됐다. 한국,>
세 명의 공동 저자가 힘을 모아 출간한 <한국, 한국인> 은 원자력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공학 박사를 거쳐 서강대학교 총장에 이르기까지 학계와 현장을 두루 경험한 유기풍 전 총장을 중심으로, 정치 컨설턴트로서 소통 전략을 설계해 온 권형균 GGCS 대표와 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사람과 사회를 바라봐 온 김도영 한국영상대 교수가 함께해 한국 사회를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한국,>
투데이신문은 <한국, 한국인> 의 집필 배경과 더불어 세 저자가 바라본 ‘한국과 한국인’의 현재를 보다 구체적으로 듣기 위해 이들을 만났다. 한국,>
Q. <한국, 한국인> 은 한국의 역사, 음식, 한류, 교육 열풍 등 사회 전반을 폭넓게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출간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문제의식이 있었나. 한국,>
유기풍 특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외국인 학생과 방문단을 자주 만나면서 한국을 소개하는 특강을 할 기회가 많았다. 매 학기 신입생과 해외 손님들에게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했는데 그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콘텐츠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자랄 때의 가난했던 한국, 80년대 유학 시절 ‘보잘것없다’는 평가를 받던 한국이 어떻게 지금의 한국이 됐는지 그 동인이 궁금했다. 한국의 5000년 역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짚는 방대한 내용을 책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아 미뤄왔다. 이후 권 대표, 김 교수와 협업하면서 책 출간을 결심하게 됐다.
김도영 강단에 서면서 외국인 유학생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을 체감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한 명씩 목표를 물어보면 공통적으로 한류 문화와 관련 산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교환학생뿐 아니라 신입학 등 유학생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처음엔 한국어가 서툴던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며 언어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 빠르게 넓혀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 총장님이 가진 문제의식과 결이 맞닿았고 이 책이 단순히 유행처럼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설명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 집필에 참여하게 됐다.
권형균 영화 제작사 운영부터 영화제 기획 등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 해외를 자주 다니면서 2000년대 초, 2010년대, 2020년대로 넘어오는 동안 외국인이 한국을 바라보는 방식과 질문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이 어디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K-POP 그룹을 실제로 봤느냐”가 첫 질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한국 문화가 세계로 확장되고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흐름 속에서 외국인이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언어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 문제의식을 책으로 정리해보고 싶어 합류하게 됐다.
Q. 책에서 다루는 주제가 매우 넓은 만큼, 집필 과정에서도 각자 특히 신경 쓰거나 중점을 둔 부분이 다를 것 같다. 세 분이 각각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유기풍 전체적인 초고를 쓰며 책의 큰 틀을 마련했다. 한국의 역사와 사회, 문화 전반을 다루는 만큼 지나치게 깊게 들어가기보다 넓게 조망하되, 내용이 가볍게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 이후 권 대표와 김 교수가 각자의 분야에서 내용을 보완하고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다.
권형균 정치와 근현대사 부분에 집중했다. 한국 정치와 사회가 어떤 흐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사실 중심으로 정리하는 데 신경을 썼다. 정치 관련 활동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했으며 전체적으로 책이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읽히도록 서술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도영 문화와 예술, 콘텐츠 분야에 보다 집중해 집필했다. 한류와 문화산업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와 흐름을 통해 설명하려 했다. 자료를 찾고 실제 문화 현장의 사례를 반영하는 데 특히 노력했다.
Q. 세계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한국 사회와 한국인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 그 차별성이 이 책에서 어떤 맥락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도 듣고 싶다.
유기풍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 형성된 ‘추진력(드라이빙 포스)’과 ‘빨리빨리’ 문화가 핵심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발전 동력이 됐고 초고속 인터넷망과 행정·생활 인프라 같은 오늘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분초 단위의 버스 도착 안내나 병원 대기 알림, 행정 서류 발급 같은 시스템에 외국인들이 놀란다. 디지털 문명 전환기에 한국의 이런 특징은 분명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권형균 ‘열정’이다. 외국인들이 놀라는 점 중 하나는 열정적이면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유럽에서는 축구 경기가 끝나면 불이 나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큰 사고 없이 행사가 마무리된 점으로 세계적으로도 큰 인상을 남겼다. 열정을 질서로 묶어내는 힘이 한국 사회의 특징인 것 같다.
김도영 한국인들에게는 ‘민족 예술의 혼’이 있다고 느낀다. DNA처럼 내재된 민족 예술의 혼은 K-POP 등의 창작 영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쌓아 올릴 수 있는 근간이 됐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자산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민족적 예술성과 창조성이라고 생각한다.
Q. 과거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지옥과 같은 한국이라는 뜻)’이라는 냉소적 표현이 유행할 만큼 젊은 세대가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기성세대와 다소 다른 면이 있다. 동시에 이들은 K-콘텐츠 확산의 주역으로서 이전 세대와는 또 다른 자부심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오늘날 청년들이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다고 보나.
유기풍 ‘헬조선’이라는 표현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프레임에 젊은 세대가 휘말린 측면도 있다고 본다. 잘하는 사람은 출신 국가나 배경에 상관없이 결국 자신의 역량으로 길을 만든다. 한국이 특별히 ‘살 수 없는 나라’라기보다 경쟁과 교육 과정에서 잠깐 겪는 압박이 과장돼 표출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내가 자랄 때의 가난한 시절과 80년대 유학 시절 낮게 평가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이제는 청년 세대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기죽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외국 친구와 손님에게 우리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을 정도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권형균 ‘헬조선’이 과거 대한민국 사회 구조라는 벽에 부딪힌 청년들의 좌절감을 대변했다면, 지금의 청년 세대는 무조건적인 비관도 긍정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세계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에 선 K-컬처 등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동시에 치열한 생존 경쟁도 감내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을 비관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청년들은 어떠한 희생이 아닌 공정한 시스템 안에서 나를 지켜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김도영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배경에는 청년들의 취업난, 3포세대(사회적 이유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2030 세대를 뜻함) 같은 구조적 어려움이 반영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은 문화적 영향력과 사회적 인프라 측면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사회가 됐다.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제 그 기반 위에서 세계와 연결되는 경험을 갖는다는 의미로 커지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외국인 유학생과 우수 인재들이 한국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려는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 청년 세대가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국내에서 버티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가진 문화적 동력과 교류의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다음 단계의 한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Q. <한국, 한국인> 은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정리하는 데서 나아가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함)’이라는 표현을 통해 앞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바 있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가 회복하거나 지켜야 할 가치, 그리고 앞으로 가장 고민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
유기풍 한국은 지금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산업 기반, 문화적 영향력까지 여러 요소가 동시에 성장하면서 선진국 상위권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태민안’은 단순한 이상적 표현이 아니라 국가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국민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의미한다. 다만 그 전제는 결국 정치와 사회 시스템의 안정이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도 함께 겪어왔는데 이제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성숙하게 관리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인구 감소 문제와 남북 관계 같은 구조적 문제 역시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권형균 한국 사회가 가장 시급히 회복해야 할 가치는 서로를 향한 신뢰와 포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양극단으로 갈라진 국가다. 짧은 시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경쟁과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남겨졌다. ‘국태민안’은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하며 합의점을 찾아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국민은 평범한 일상을 지속하며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며 갈등을 줄이는 것이 현재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김도영 앞으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다. 한국이 점점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외부와의 교류 속에서도 우리가 가진 문화적 기반과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한국 사회는 문화와 교육, 콘텐츠 산업 등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문화적 동력을 더 확장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저자로서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유기풍 과거 한국이 가난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시절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직접 보며 자라온 세대로서,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 전반과 한류의 번성 과정을 함께 살펴보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외교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이 한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제대로 소개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권형균 한국인도 한국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는 한국을 더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외국인 독자에게는 언어뿐 아니라 문화를 이해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
김도영 책이 출간된 뒤 외국인 제자에게 선물했더니 ‘외국인이 한국을 알고 싶다면 꼭 봐야 할 책’이라고 SNS에 소개해줬다. 한국을 이해하고 그 뿌리를 알면 힘든 순간에도 스스로 버티고 성장할 수 있다. 이 책이 외국인 친구들에게 제2의 한국인이 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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