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IT 기업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박모(38·여) 씨는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밥상을 차린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설거지, 청소, 빨래도 거의 박씨의 몫이다. 반면 남편은 출근길에 쓰레기 박스를 들고 나가 처리하고 퇴근하면 쉰다.
제118회 국제 여성의 날을 맞은 2026년 3월 8일, 한국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기술의 풍요 속 빈곤'으로 요약된다. 가전 혁명이 노동의 강도는 낮췄을지언정, 가계 운영의 주도권과 책임이라는 굴레는 여전히 성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1908년 3월 미국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와 "빵과 장미"를 외쳤다. 빵은 생존을, 장미는 인간다운 삶을 뜻했다.
가사노동은 집안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생활시간조사를 기준으로 산출한 가사노동의 가치는 490.9조원으로 이는 2019년 국내총생산의 25.5%에 달하는 규모다.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의 경제 활동이 매일 거실과 주방에서 소리 없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여성이 생산한 가사노동 서비스의 가치는 356조원으로 남성이 생산한 134.9조원보다 2.6배 많게 나타났다. 전업주부 1인이 창출하는 연간 노동 가치는 약 2800만~2837만원으로 산출된다.
'112분의 벽' 잔존한 여성의 노동
가사노동의 구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기형적으로 변했다. 과거 남성들이 전담하던 연탄·장작 준비, 집 수리, 자동차 정비, 장거리 운전 같은 '실외 가사'는 기술 발전과 서비스업의 외주화로 가계 노동의 범주에서 사실상 소멸했다. 2026년 현재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보험사 출동 서비스가 남성의 전통적 역할을 대체했다.
반면 요리·세탁·청소 같은 '실내 가사'는 여전히 매일 반복되는 노동 집약적 영역으로 남았다. 가정에서 사라진 노동은 대부분 남성의 영역이었고, 남아 있는 노동은 여성의 영역인 경우가 많다. 한국 특유의 가부장적 유교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사노동 구조 자체가 성별 불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재편된 측면이 있다.
그 결과 국가데이터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에서도 아내는 남편보다 하루 평균 112분을 더 가사노동에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근 이후에도 '제2의 근무시간'이 이어지는 것이다. 기술의 혜택이 남성에게는 '노동의 해방'을 선사했지만, 여성에게는 '강도 낮은 반복 노동'의 지속을 의미하게 된 셈이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풍토는 여성의 사회적 기여도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결국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최근 사회학계가 주목하는 개념은 '기획 노동'이다. 한 번에 끝나는 육체적 수행을 넘어, 가계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신적 관리 영역을 뜻한다.
AI 가전이 보급될수록 이 기획 노동의 중요성은 역설적으로 커지고 있다. 로봇청소기가 바닥을 쓸어도, 내일 아침 식단을 정하고 설거지와 빨래 시기를 놓치지 않으며 가족의 영양·청결 상태를 총괄하는 매니징은 여전히 여성의 뇌를 점유하고 있다. 가사노동은 기획→수행→마무리로 이어지는 관리 작업에 가깝다.
성평등가족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가사노동의 부담은 '항상 기억하고 계획해야 하는 관리 역할'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남편이 가사를 '자신의 일'이 아닌 '도와줘야 할 타인의 업무'로 규정하는 순간, 모든 기획과 책임의 부하는 아내에게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84세까지 이어지는 생애 생산 곡선
가사노동은 특정 시기에 끝나지 않는다. 노동시장에서는 은퇴가 존재하지만 가정에서는 은퇴 개념이 희미하다. 생활시간조사 분석 결과를 보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고령 이후에도 크게 줄지 않는다.
20~40대에는 출산·육아로 노동량이 급증하고, 50~60대에는 부모 돌봄과 가족 관리가 이어지며, 70대 이후에도 본인 가정 관리가 지속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평균 80대 중반까지 가사노동 생산자로 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학술지에 수록된 '맞벌이 기혼여성의 출산 의사 예측요인 탐색'(저자 안리라 고려대 박사) 논문에 따르면 맞벌이 기혼여성의 출산 의사엔 '성평등' 요인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남편의 가사노동 분담률이 증가할수록 여성 출산 의사가 증가해 약 47% 지점, 즉 남녀의 분담률이 반반 수준일 때 출산 의사가 가장 높았다.
저출산의 늪에 빠진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112분의 격차를 메울 실질적인 행동이다. 국가 경제의 4분의 1을 지탱하면서도 통계에 드러나지 않고, 임금도 직함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이 노동을 어떻게 나누고 평가할 것인지 중요해졌다.
가사를 '함께 운영하는 공동 경영자'의 일로 인식하는 전환이 이뤄질 때 거실의 경제학은 비로소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 팁] 당신은 가정의 '조력자'입니까, '동반자'입니까?
진정한 성평등 가사는 '책임의 지분'을 나누는 데서 시작한다. 저녁 시간, 메뉴를 묻는 대신 냉장고를 먼저 확인해보는 것. "요리는 당신이 했으니 내가 설거지하겠다"처럼, "뭐 도와줄까?"가 아닌 "내가 맡을게"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가사노동=가정 내에서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되는 노동을 뜻한다. 청소·세탁·요리·육아·가계관리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에서 임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정의 재생산과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경제적 가치가 있는 노동으로 평가된다.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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