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한국 경제에 ‘경기 침체(Recession)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를 담당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이 국내 금융·실물 시장을 강타하며 환율과 물가, 금리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반도체를 필두로 간신히 회복세에 올라탄 한국 경제 성장 엔진이 ‘에너지 변수’라는 암초를 만났다.
◇‘세계의 혈류’ 호르무즈 마비…국제유가 84달러 돌파
중동의 화약고가 터지자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며 해협 봉쇄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의 ‘생명선’과 같다. 한국무역협회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원유의 약 70%, 천연가스(LNG)의 약 20%를 이 좁은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대체 노선을 찾기 어려운 구조적 특성 탓에 이곳의 긴장은 곧 국내 에너지 수급 위기로 직결된다.
시장 불안은 수치로 증명된다. 지난달 27일 배럴당 72.87달러였던 브렌트유 가격은 6일 오후 1시 30분 기준 84.52달러까지 폭등했다. 미국 정부의 수급 안정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공급 절벽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휘발유 1900원대 진입…환율 1470원 ‘털썩’
에너지발 충격은 국내 실물 경제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서울 지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27원 오른 리터당 1916.15원을 기록했다.
외환시장 역시 요동치고 있다. 에너지 수입 비용 증가는 달러 수요 급증으로 이어져 원화 가치를 떨어뜨린다. 지난달 26일 1432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후 1시 기준 1470원까지 치솟으며 외환 당국의 긴장감을 높였다.
물가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유가 상승은 제조원가와 물류비용을 높여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을 압박한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3월에는 중동 정세의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며 물가 상방 압력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금리 인하 기대감 ‘실종’…성장률 잠식 우려
유가발 물가 불안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궤도까지 수정하게 만들고 있다. 당초 기대했던 금리 인하 시점은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고물가와 고환율이 고착화하면 한은은 금리 동결 기조를 길게 가져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기업의 조달 비용 상승과 가계 소비 위축이라는 악순환을 부른다.
박준우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물가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환율과 에너지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며 “한은의 민감한 대응이 예상됨에 따라 연내 11월 금리 인하 전망을 동결로 수정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는 거시 경제 성장률 하락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브렌트유가 82달러 선을 지속 상회할 경우 올해와 내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0.45%포인트, 0.24%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수출 효자인 반도체 호조세만으로는 고유가라는 파고를 넘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상향 조정한 올해 2.0% 성장률 달성 여부도 중동사태의 장기화 여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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