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먼저 스쳐 지나가십니까? 아직 치료가 시작되기도 전에 어깨가 굳어지는 느낌, 드릴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기억, 체어에 누워 눈부신 조명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던 순간.
많은 이들에게 치과는 ‘병원’이라기보다 ‘손을 꽉 쥐고 참아야 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긴장이 시작되는 곳, 들어가면서 마음속으로 ‘이번에 또 잘 견뎌보자’라고 결심하는 곳으로 말입니다.
치과를 연상할 때 떠오르는 단어를 묻는 조사에서조차 공포·통증·비용이 상위에 오른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결과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치과는 오랫동안 치료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긴장의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경직되는 장소, 치료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몸이 굳어져서 입안의 감각과 함께 마음에 두근거리는 여운이 남는 곳인가 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치과 기억은 더욱 그러하게 남아 있습니다. 낯선 소독약 냄새·밝은 조명·하얀 장갑·움직이지 말라는 말, 입을 다물지 말라고 해서 억지로 크게 버티면서 벌린 채 기다리던 시간···.
어린 우리에게 치과는 통증 자체보다 ‘내가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이 더 큰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과정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며, 입에 물이 가득해서 뱉고 싶은데 잠시 멈춰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런 경험이 답답했던 마음속의 감정과 함께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사건 자체보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더 오래 붙잡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치과에서 울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단순한 치료 경험이 아니라 기억속에 ‘공포의 시간’으로 재구성되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성인이 된 뒤의 치과 진료에도 영향을 줍니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일피일 방문을 미루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환자를 치료해 오면서 한 가지 숙제 같은 질문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치과의 기억이 꼭 공포나 두려움이어야만 할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치과 치료를 ‘치아를 고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료실 안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치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입니다.
특히 아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는 통증보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소아치과에서는 치료를 시작하기 전 시간을 조금 더 할애합니다. 도구를 먼저 보여 줍니다. 그리고 소리를 들려줍니다. 또 손에 쥐어 보게 합니다. “이건 입안을 환하게 비춰 주는 불빛이야”, “이건 바람 소리야” 하면서 말입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 과정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시작입니다. 설명이 통증을 완전히 없애 주지는 못하지만 두려움의 수위를 낮추는 데에는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에서 오는 공포는 미리 아는 순간 조금씩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한 마디씩 차근차근 건네는 설명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신뢰를 쌓는 시간입니다. “나는 너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뢰가 형성되면 아이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풀리고, 경직된 상태에서 힘이 빠져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작은 변화지만 그 변화는 치료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꿉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흔들던 아이가 신뢰의 과정을 거친 후에 잠시 망설이다가 아주 천천히, 스스로 입을 벌리는 ‘기적 같은’ 순간입니다. 그 짧은 찰나, 아이는 단지 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고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스스로의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작아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분명한 ‘성공의 기억’이 됩니다. “나는 해냈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 기억 하나가 마음 어딘가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선택에서 시작점이 됩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치과 방문을 미루지 않는 이유, 치료를 회피하지 않는 태도, 의료를 신뢰하는 마음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치과에는 아이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들어오는 보호자가 계십니다. 부모는 아이의 울음을 보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합니다. ‘괜히 데려왔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료실 안에는 아이의 두려움뿐 아니라 보호자의 긴장된 마음도 함께 존재합니다.
소아치과에서는 그 긴장까지도 함께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합니다. 아이가 울음을 멈추는 순간 긴장했던 보호자의 어깨도 함께 풀립니다. 그때에는 진료실의 공기가 조금 더 환하고 부드러워지며 웃음이 피어납니다. 소통의 노력은 그렇게 한 사람만이 아니라 한 가족의 긍정적인 기억을 함께 만듭니다.
그래서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치과에서는 진료실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작은 시도들을 이어 갑니다. 치료가 끝난 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건네는 작은 선물 하나,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외치며 마주치는 손바닥, 가끔은 팝콘 같은 간식도 나누며 치과를 병원이 아닌 일상의 공간처럼 느끼게 하려는 시간, 치과를 주제로 한 그림그리기 대회로 친밀감 형성.
크리스마스가 되면 직원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아이들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노력만으로 두려움과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의 결을 바꿀 수는 있다고 믿습니다.
치료의 기억 위에 따뜻한 장면 하나가 더해지면 그 공간은 전혀 다른 색으로 남습니다. 두려움만으로 채워졌던 기억이 아니라 웃음이 함께 떠오르는 장면으로 저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의료진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공간을 추억의 장소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험,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부드러운 상호 교감입니다. 치과라고 해서 이것이 적용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큰 공간일수록 그 세 가지 요소는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 치과가 단지 ‘아팠던 곳’으로만 기억된다면, 치아는 성공적으로 치료되었을지 몰라도 그 치아를 가진 환자의 마음은 돌보지 못한 셈입니다. 반대로 치과가 “내가 조금 자랐던 곳”으로 기억된다면 그 순간 의료는 기술을 넘어 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는 오래 남습니다.
얼마 전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청년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치과 의자에 앉아 많이 울던 아이였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그 아이가 훌쩍 자라 저보다 키가 커진 채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는 치과가 별로 무섭지 않아요. 친구들은 다 무섭다고 하는데 저는 괜찮아요. 어릴 때 여기 다녔잖아요. 선생님이 기다려 주셨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나온 시간들이 한 번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진료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버틴 시간’이 아니라 ‘존중받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치과는 오늘의 병만을 치료하는 곳이 아닙니다. 어쩌면 10년 뒤, 20년 뒤의 마음을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한 사람의 평생 구강 건강의 출발점이자 의료에 대한 태도가 형성되는 첫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치과가 추억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거창한 의미가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 속에서 조용히 배경으로 남는 일입니다. 두려움 대신 작은 용기의 기억 하나가 저장되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이 삶의 어느 순간에 조용히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훗날 저희 치과를 거쳐 간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치과는 무섭기만 한 곳은 아니었어요. 거기서 저는 조금 자랐습니다.” 그 한 문장이라면 ‘치과도 충분히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증명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여성경제신문 전승준 (소아치과)치과의사
pedojune@hanmail.net
전승준 소아치과 전문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0년째 소아청소년 진료에 매진하고 있는 드림분당예치과병원 원장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봉사 진료와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삶을 지향하며, 100세 이상까지 현역으로 진료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치과 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글쓰기를 통해 환자 및 보호자와의 따뜻한 소통을 이어가는 중이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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