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 피란길…전쟁 일주일째 벼랑끝 몰린 테헤란 주민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잿더미 속 피란길…전쟁 일주일째 벼랑끝 몰린 테헤란 주민

연합뉴스 2026-03-06 11:46:42 신고

3줄요약

시민들 "이제 안전한 곳은 없다"…주거지 폭격에 민간인 희생 속출

전쟁 공포 속 이란 당국 '반정부 시위' 단속…식료품 가격 치솟고 인터넷도 차단

이란 테헤란의 석양 이란 테헤란의 석양

2026년 3월 3일,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피어오른 연기 기둥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AP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질까 봐 일부러 창문을 열어 둡니다. 공격 규모가 너무 커서 하루가 한 달처럼 느껴집니다."

가명 '살라르'로 소개된 이란 테헤란 시민은 5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최근 공습으로 집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집이 있는 테헤란 샤리아티 지역은 군사시설이 많은 곳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표적이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한 현장은 더욱 참혹하다.

최근 테헤란 남동부의 한 주거 단지에서는 공습으로 아파트 두 동이 완전히 무너지고 다섯 동이 심각하게 파손됐다.

잔해 사이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하얀 토끼 인형이 놓여 있었다. 깨진 유리와 책, 기도 묵주도 뒤섞여 있었다.

구조대는 잔해 속에서 시신을 꺼내 구급차로 옮겼다. 무너진 콘크리트 사이에서는 머리카락과 피, 신체 일부가 발견돼 비닐봉지에 담겼다.

현장을 취재한 이란 사진기자 모하마드 모흐세니파르는 "첫 폭발 뒤 구조대가 도착하면 몇 분 뒤 두 번째 폭발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이 때문에 구조대가 접근을 주저하게 되고 사상자가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지 엿새째인 5일 인구 천만 명의 도시 테헤란이 짙은 매연과 화약 냄새에 짓눌렸다.

한때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던 도심의 도로는 섬뜩할 정도로 적막하다. 이따금 고막을 찢는 폭발음이 울리면, 텅 빈 거리에 남은 소수의 시민조차 숨을 죽인다.

외신들은 이번 전쟁이 이란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테헤란 시민들의 일상을 처참하게 찢어놓았다고 보도했다.

테헤란 시민들은 "이제 도시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고 말한다. 대다수 주민은 길란의 산악지대나 카스피해 연안 등으로 대피하기 위해 가구에 담요만 덮어둔 채 서둘러 피란길에 올랐다.

파괴된 경찰서 옆에서 기도하는 이란인들 파괴된 경찰서 옆에서 기도하는 이란인들

2026년 3월 4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성직자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경찰서 옆에서 자원봉사자 무리와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외곽 지역의 피해는 더 참혹하다. 호르모즈간주(州) 미나브에선 여학교가 폭격당해 무려 168명의 어린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통신(HRANA)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달 28일 개전 이후 지금까지 1천2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유엔 집계에 따르면 개전 이후 테헤란을 떠난 이재민은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전쟁의 공포뿐만 아니라 이란 정권의 억압도 시민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도심 곳곳에는 보안군의 검문소가 세워졌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직후 거리로 나와 환호하던 일부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 움직임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살라르'는 "매일 같이 '거리에 나가 시위하면 이스라엘의 부역자로 간주해 가혹하게 처벌하겠다'는 협박성 문자메시지가 날아온다"고 토로했다.

'살라르'는 부모를 북부 지역으로 피신시켰지만 어디가 안전한지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너무 겁에 질렸다"며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보다 지금이 더 무섭다고 한다"고 말했다.

도시를 떠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몸이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꼼짝없이 테헤란에 갇혀 있다.

당국은 외부와의 소통도 철저히 틀어막았다.

전면적인 인터넷 차단으로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인터넷을 우회 접속할 수 있는 가상사설망(VPN)으로 간신히 접속한 이들은 해외에 있는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느라 분주하다.

대피하는 이란 시민들 대피하는 이란 시민들

2026년 3월 5일, 이란 테헤란에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자 시민들이 다급히 대피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경제 체제 역시 붕괴 직전이다. 슈퍼마켓과 빵집 일부만 문을 열었을 뿐 상점들은 셔터를 내렸고, 현금인출기는 먹통이 됐다.

달걀과 감자 같은 식료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주유소와 빵집 앞에는 대기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달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제3차 핵 협상을 한 뒤 "미국과 합의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이스라엘과 미국은 명확한 명분이나 의회의 동의도 없이 폭탄을 쏟아부으며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고 가디언은 꼬집었다.

국제 정세의 급변 속에서 이란 민중의 마음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북서부 잔잔에 거주하는 카베(가명)는 끊임없이 머리 위를 지나는 전투기와 검은 연기 기둥을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던 최고지도자가 외국의 공격으로 단숨에 제거된 것에 허탈함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앞날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폭격이 없었다면 분명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과 내일을 꿈꿀 작은 기회라도 생겼으니까요."

초등학교 잔해 수색하는 이란 구조대원들과 주민들 초등학교 잔해 수색하는 이란 구조대원들과 주민들

2026년 2월 28일, 이란 미나브에서 구조대원들과 주민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을 받은 초등학교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ksw08@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