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시장의 한파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스타트업의 ‘데스밸리(Death Valley)’ 탈출을 돕기 위해 1,1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자금 지원책을 꺼내 들었다. 단순한 융자를 넘어 기업의 지분 가치에 투자하는 ‘투융자’ 방식을 전면에 내세워, 민간 모험 자본이 미처 닿지 못하는 지방과 초기 창업팀의 숨통을 틔워준다는 전략이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한성숙)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사장 강석진, 이하 중진공)은 2026년 정책자금 융자 계획에 따라 3월 4일부터 ‘성장공유형 대출’을 포함한 투융자 방식의 자금 접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해 투입되는 예산은 성장공유형 대출 600억 원, 투자조건부 융자 500억 원 등 총 1,100억 원 규모다.
이번 지원책의 핵심 중 하나인 ‘성장공유형 대출’은 기업의 성장을 함께 책임지는 파트너십 형태의 대출이다. 중진공이 기업의 전환사채(CB),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을 직접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기업당 최대 20억 원까지 지원된다.
주목할 지점은 ‘타깃’의 명확성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민간 투자 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비수도권 소재 기업과 민간 시장에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창업 초년생들을 우선순위에 뒀다. 재무제표상의 숫자보다는 기술의 확장성과 기업공개(IPO) 가능성이라는 ‘미래 가치’에 무게를 뒀다는 점이 기존 담보 위주의 대출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스타트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구간은 1차 투자를 받은 후 다음 라운드를 넘어가기까지의 ‘자금 공백기’다. 중진공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500억 원 규모의 ‘투자조건부 융자’를 가동 중이다. 최근 24개월 이내에 1억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경험이 있는 기업이 대상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쓰이는 ‘벤처 뎁트’ 모델과 유사하다. 기술력은 충분하지만 아직 매출이 가시화되지 않아 일반 은행권 대출이 불가능한 기업들에 저리의 대규모 자금을 브릿지론 형태로 공급한다. 대신 중진공은 융자액의 5% 수준에 해당하는 신주인수권을 부여받고, 기업이 후속 투자를 유치하면 대출금의 일부를 상환하는 구조다. 창업자로서는 지분 희석을 최소화하면서 성장에 필요한 연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업계 현장에서는 이번 지원에 대해 “민간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투융자 방식은 결국 ‘빚’과 ‘지분’이 결합한 형태인 만큼, 성장이 정체될 경우 기업에는 일반 대출보다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신주인수권 부여가 향후 민간 후속 투자자들과의 밸류에이션 협상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강석진 중진공 이사장은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기업의 꿈에 함께 베팅하는 정책금융의 진수”라며 “유망 스타트업들이 데스밸리를 견뎌내고 민간 자본 시장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쏘아 올린 1,100억 원의 마중물이 고사 위기에 처한 지방 스타트업 생태계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지, 자본 시장 참여자들의 시선이 중진공의 누리집(www.kosmes.or.kr) 신청 창구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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