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장인 손에서 피어난 ‘백제의 수도’…충남 부여 '123사비레지던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청년 장인 손에서 피어난 ‘백제의 수도’…충남 부여 '123사비레지던스'

더리더 2026-03-06 09:34:01 신고

3줄요약

[청년, 지역을 택하다]공예 기반한 창작·체험·유통 연결, ‘전통 예술촌’으로 자리매김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청년 공예가들이 모이고 있다. 면 단위 지역의 한계 속에서 군은 대규모 산업 유치 대신, 지역의 강점을 살린 ‘공예’로 생활인구와 정주인구를 늘리는 실험에 들어갔다. 지난 2월 9일 규암면 123사비공예마을에서 만난 군 관계자는 “규암면은 산업 인프라로 승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침체된 마을에 공예 기반의 창작·체험·유통을 연결해 지역 경제를 다시 돌리겠다는 구상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 거점이 ‘123사비공예마을’이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다. 국보 금동대향로 등으로 상징되는 백제 공예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지역 곳곳에서 발굴·조사가 이어지며 도시의 정체성 자체가 하나의 큰 역사·문화자산이다. 군에 위치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미술공예 전공 청년들이 꾸준히 배출되는 점도, ‘공예’를 정책 키워드로 삼는 배경이 됐다.

123사비공예마을은 일반적인 예술인 레지던스와 결이 다르다. 작업실 제공에 그치지 않고 △지역주민 교육 △마을 공방·청년 공예가와의 상품·체험 콘텐츠 개발 △공예트렌드페어·팝업스토어 등 외부 유통 연계까지 한 묶음으로 구성했다. 레지던스와 창작센터를 ‘잠깐 머무는 창작 공간’이 아니라 ‘지역에 남을 조건’으로 기획했다.
사업은 2017년 충남 제3기 균형발전사업 선정 이후 본격화됐다. 민간에서 책방·공예품 숍 등이 먼저 들어섰다. 이어 군이 사업비를 확보해 2019년 12월부터 기반 시설 구축과 공방 창업 지원, 시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지금은 마을 곳곳에 10여 개 공방이 자리 잡았다. 

창작센터·레지던스에는 11명의 청년 공예가가 활동 중이다. 공방은 ‘메인 거리 한 줄’에 늘어서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이 거주하는 골목 곳곳에 분산돼 있어 방문객이 지도를 들고 공방을 찾아 걷는 동선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123사비공예마을 조성부터 창작센터·레지던스 운영까지 총괄하는 고우리 123사비공예사업단장은 레지던스의 목표를 ‘모집’보다 ‘정착’에 뒀다고 강조했다. 고 단장은 “청년들을 새롭게 모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온 청년들이 머무르게 하는 것에 집중했다”며 “대학을 통해 부여에 들어온 청년 창작자들이 레지던스를 계기로 지역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레지던스 입주 기간을 최장 3년으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다른 지자체 레지던스는 주로 2년이다”라며 “단기간 성과보다, 지역에서 생활하며 작업과 생업을 함께 설계할 시간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판로 문턱 낮춘 123사비레지던스
양지인 작가(27)는 서울에서 태어나 수도권에서만 지내다 레지던스 입주를 계기로 부여로 내려왔다. 그는 “서울에서 도예로 석사를 마치고 도자기를 더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며 “마침 부여에 새로 레지던스가 생겼는데 지원도 잘해주고 시설이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는 어디든지 나를 작가로 받아주기만 하면 간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막상 입주해보니 지원이 기대 이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양 작가가 가장 크게 꼽은 건 ‘판로 경험’이다. 그는 “공예트렌드페어가 공예인들에게 가장 큰 행사인데, 개인이 지원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할 것도 많다”며 “창작센터에서 지원해줘 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포장이나 기타 문서 작업과 같은 행정 업무도 센터에서 도와줬다”며 “작가들이 작품만 열심히 만들 수 있도로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밖 생활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양 작가는 “처음 부여에 왔을 때는 정말 ‘시골’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전국 팔도 어디든 날 작가로 받아주기만 한다면 가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외로움’은 큰 과제로 꼽았다. 지금은 부여 생활이 1년이 다 돼가면서 외로움을 스스로 통제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얻었다.

양 작가는 “서울은 인풋이 많아 열정을 얻기 쉽지만, 부여는 한적해 작업에 집중하기 좋다”며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거나 인풋이 필요할 때 의식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안 써본 재료를 사용해보는 등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 예술가들에게 지자체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를 권했다. 양 작가는 “학교를 벗어난 뒤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며 “지원 체계가 갖춰져 있어 작업에만 몰두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익숙한 지역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예술가에게 의미 있는 체험”이라고 덧붙였다.

◇전시회 참여·상품 개발 기회까지…초보 작가에게 큰 도움
전통 의복을 만드는 이소은 작가(25)는 123사비 레지던스가 ‘시작 비용’을 낮춰줬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123사비 창작센터에서 작업실과 숙소를 지원해준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경기도 남양주가 고향인 그는 부여에 위치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졸업 후 바로 창작센터로 입주해 이곳에서 지낸 시간만 벌써 7년째다.

레지던스 최대 기간인 3년을 모두 채워 독립을 앞둔 이 작가는 최근 부여 정착을 결정했다. 이유는 ‘안정감’과 ‘활용 가능성’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디에 정착해야지’라는 생각이 없었는데, 창작센터에 3년 정도 있게 되니 ‘내가 아는 동네’가 주는 안정감이 느껴졌다”며 “전통미술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부여는 유물이 유명해서 그 부분을 잘 활용할 수도 있고, 청년인구에 대한 지원도 많이 해주는 편이라 남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서는 “페어에 나가 작품을 선보이거나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홍보할 수 있다”며 “굳이 복잡한 서울에 올라가기보다는 조용한 부여에서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가 마지막까지 고민한 부분은 ‘접근성’이었다. 그는 “서울 광장시장에서 원단의 색상이나 조직을 보고 구매하는데,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비용과 시간이 커서 고민했다”면서도 “작업을 하다 보니 택배로 받을 수도 있고, 군에서 지원되는 걸 생각하면 정착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지던스의 장점으로는 “작업실과 숙소까지 지원되니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과 “레이저커팅기, 3D프린터처럼 개인이 쓰기 어려운 기계가 구비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 작가가 가장 크게 체감한 지원은 공예트렌드페어 같은 대형 전시 참여였다. 그는 “공예트렌드페어처럼 큰 전시에 단체 부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센터에서 기획부터 준비까지 전 과정을 맡아준다”며 “부스 경험이 없는 초기 창작자는 그 과정을 직접 겪으면서 노하우를 쌓고, 이후 개인 부스를 준비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상품 개발도 지원금을 받아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학교를 갓 졸업한 초기 공예가에게 도움이 되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고 덧붙였다.

◇공공성은 우선…영리성 없는 활성화는 지속될 수 없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성과도 구체화되고 있다. 고 단장은 “올해 입주 기간이 종료되는 5명의 작가 중 3명은 부여 정착을 결정해 공예마을 내 또는 인근에 공방을 창업할 예정”이라며 “입주 기간이 끝나 타 지역으로 간 작가들도 팝업스토어, 기획 전시 등을 통해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 단장은 레지던스와 공예마을 사업의 목표로 ‘청년 작가들이 지역에서 버틸 수 있는 구조’를 꼽았다. 그는 “지자체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라 공공성 확보가 우선이지만, 동시에 영리성이 없는 활성화는 계속되지 못한다”며 “청년 공예가가 지역에 남으려면 결국 작업이 시장과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건 ‘판로 경험’이다. 고 단장은 “공예트렌드페어, 팝업스토어 같은 외부 무대에 단체로 나가도록 연결하고, 행정·홍보·전시 준비를 센터가 함께 맡아 초기 창작자의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청년 공예가들은 작품 제작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처음 페어에 나갈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관람객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체득하는 과정이 정착의 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작품은 ‘판매가 가능한 현장’으로도 연결한다. 고 단장은 “5월 공예주간이나 10월 123사비공예페스타에서는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니라,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형 전시를 운영하고 있다”며 “방문객에게는 볼거리와 살거리가 되고, 참여 작가에게는 판매 수익과 홍보 효과가 동시에 생긴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 전환 노력도 생겨나고 있다. 고 단장은 “2021년 12월쯤 센터가 1년간 운영을 멈췄던 시기가 있었는데, 공방들이 협의회를 꾸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공예마을 규암장터’를 열며 마을을 지켰다”며 “지자체가 모든 걸 끌고 가는 구조가 아니라, 현장 주체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야 청년 작가도 성장한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더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