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본격화되며 국제 에너지 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며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산업별 영향도 뚜렷하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정유업은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과 정제마진 확대 효과로 단기 수혜가 예상되는 반면 석유화학 업계는 원재료 가격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민자발전 사업은 전력가격 연동 구조 덕분에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 중동 에너지 공급망 핵심 균열…주요 산유국 인프라 위협
이번 충돌은 중동 에너지 공급망 핵심 축을 직접적으로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긴장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달 말 이스라엘 이란 타격과 이에 대한 이란 보복 대응으로 무력 충돌이 확대되면서 중동 주요 산유국 에너지 인프라가 위협받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330만배럴 수준으로 글로벌 공급의 약 4~4.5%를 차지하는 주요 공급원이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겹치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확실성도 크게 확대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약 30%, LNG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통로다. 운항 차질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 전반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병목 지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전쟁 발발 이후 유가와 가스 가격은 단기간 급등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2월 26일 배럴당 68달러에서 3월 2일 77달러로 빠르게 상승했다. 동북아 LNG 지표인 JKM과 유럽 가스 가격 지표인 TTF도 하루 사이 20% 이상 뛰는 등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 같은 흐름은 산업별로 상반된 영향을 낳고 있다. 우선 정유업계는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유가가 상승하면 보유 원유 재고 평가이익이 발생하고 석유제품 가격도 함께 상승하기 때문이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상승할 경우 국내 정유사들의 재고자산 가치는 약 14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합정제마진이 배럴당 1달러 상승하면 연간 영업이익이 약 4000억원가량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에 따른 석유제품 공급 우려가 커질 경우 정제마진 상승 가능성도 높아져 단기적으로는 정유사들의 수익성 개선 기대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던 2022년에도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동반 상승하면서 국내 정유 4사는 합산 영업이익 14조원을 기록하는 등 호황을 경험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 효과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원유 운송 비용과 보험료, 물류비 등이 상승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고 고유가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이어질 경우 석유제품 수요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석유화학 업계는 상황이 정반대다. 원유 가격 상승은 석유화학 제품의 주요 원재료인 납사 가격 상승으로 직결되는데 현재처럼 글로벌 공급 과잉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상승하면 납사 가격은 톤당 약 8~9달러가량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기초유분과 범용 폴리머 시장이 이미 공급 과잉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제품 가격이 원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스프레드가 축소되며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납사 가격 급등으로 국내 NCC 중심 석유화학 업체들 실적이 크게 악화된 사례가 있다.
▲ 정유·석화·민자발전업계, 셈법 복잡…“면밀한 시장 관찰 필요”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유가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지역 석유화학 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동산 원료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 업체들은 공급망 차질과 가격 상승 압박을 동시에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민자발전 업계는 상대적으로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LNG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전력도매가격(SMP)에 일정 부분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내 LNG 발전사업은 연료비와 전력가격 간 스프레드에 따라 수익성이 결정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LNG 가격이 상승하면 SMP 역시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있어 일정 수준 판가 전이가 가능하다. 특히 직도입 방식으로 LNG를 확보하는 일부 발전사들은 장기 계약 물량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높은 전력가격 환경에서 수익성을 개선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중동산 LNG 의존도가 높은 일부 사업자의 경우 단기적으로 조달 비용이 상승할 수 있어 사업자별 영향은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번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란 공통 요인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파급 효과는 업종 구조에 따라 크게 갈리는 양상이다. 정유업은 단기적으로 수익성 개선 기대가 커지는 반면 석유화학은 원가 부담 확대에 따른 실적 압박이 불가피하다. LNG 민자발전은 연료비 연동 구조 덕분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전쟁 장기화 여부와 호르무즈 해협 운항 상황, 글로벌 경기 흐름 등에 따라 이러한 산업별 명암도 언제든 재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시장 상황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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