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비운의 쿠르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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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웃] 비운의 쿠르드족

연합뉴스 2026-03-06 06: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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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내 쿠르드족 전투원들 자료사진 이라크 내 쿠르드족 전투원들 자료사진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이 세상엔 나라 없이 유랑하는 민족들이 있다. 이 중에서 쿠르드족처럼 3천만∼4천만 명이나 되는 민족이 지도에서 통째로 지워진 채 살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튀르키예 동남부, 이라크 북부, 이란 서북부, 시리아 북동부에 흩어져 있다. 인도·유럽어족 이란어군의 쿠르드어를 쓰고, 대체로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다. 민족 규모로는 중동에서 아랍인·튀르키예인·페르시아인에 이어 네 번째다.

불행의 씨앗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뿌려졌다. 오스만 제국을 해체한 서방 연합국은 1920년 세브르 조약을 통해 쿠르드 독립국 구상을 담았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3년 뒤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 해당 조항은 삭제됐다. 쿠르드족 거주지는 튀르키예·이라크·이란·시리아 네 나라로 나뉘었다. 이후 독립을 요구할 때마다 반란으로 규정됐다. 언어와 문화는 법령으로, 때로는 총칼로 억눌렸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어 방송을 수십 년간 금지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88년 화학무기로 쿠르드 민간인 수천 명을 학살했다. 쿠르드 사람들이 "쿠르드인의 친구는 산뿐이다"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쿠르드족이 전장(戰場)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와중에 이란 국경지대에서 쿠르드 무장 세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 반(反)이란 쿠르드 무장 세력은 이란 서북부 산악 지대에 익숙하다. 지형을 꿰뚫는 게릴라전이 특기다. 이란 보안군을 국경으로 끌어내고, 그 틈에 내부 시위의 불씨를 살리자는 게 미국의 포석인 듯하다. 미국·이스라엘 입장에서 쿠르드족은 부담 없이 꺼내 쓸 수 있는 조커 카드에 가깝다.

미국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깊다. 이란과 싸우더라도 전면전을 감행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현지 세력을 활용하는 시나리오를 꺼내든 것으로 봐야 한다. 쿠르드 민병대는 과거 IS(이슬람국가) 격퇴전에서 서방의 최전선 파트너로 싸우며 수만 명이 희생됐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2019년 미국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군하자 쿠르드 지역은 튀르키예의 군사 압박에 그대로 노출됐다. 쿠르드족이 다시 총을 든 것은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독립국가라는 '백년몽(百年夢)'을 향한 또 한 번의 도박일지도 모른다.

전망은 밝지 않다. 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쿠르드 독립국의 탄생을 장담할 수 없다. 이란·튀르키예·이라크·시리아 중 그 어느 나라도 영토를 떼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에도 쿠르드족은 전쟁에서 총을 들고, 평화가 오면 잊히는 운명을 되풀이할 것인가. 그것이 나라 없는 민족이 한 세기 넘게 겪어온 숙명이다. 그런데도 쿠르드족의 염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 우리 땅에서, 우리 이름으로 살 수 있을까." 오직 알라만이 그 대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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