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내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역사는 길다. 최소한 사회초년생이던 청년이 과거의 소년미를 간직한 중년이 될 때까지의 시간만큼은. 긴 시간 동안 시리즈는 공포에서 액션으로, 다시 액션에서 공포로 방향을 바꿔 왔고 팬덤 역시 그에 따라 분화했다. 자연히 팬덤 모두를 만족시키는 타이틀을 내놓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었다.
▲ ‘바이오하자드 레퀴엠’
이 시점에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레퀴엠’,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게임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말을 부정하듯, 시리즈 전체 팬덤을 겨냥한 기획으로 성공을 거뒀다. 팬서비스도 확실하게 챙기면서.
공포와 액션의 교차가 만들어낸 완급 조절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그레이스 애쉬크래프트와 레온 케네디의 두 주인공 체제로 진행된다. 그레이스는 공포를, 레온은 액션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게임은 두 사람의 플레이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 방식을 한 작품에 담은 결정은 조잡해 보 위험성이 있지만, ‘레퀴엠’은 이 교차 구조를 공포의 완급 조절 장치로 활용하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냈다. 두 스타일의 완성도 자체도 이전보다 끌어올렸다.
▲ 게임 초반 비 내리는 거리는 그래픽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묘사의 디테일함이 공포로 변화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게임은 그레이스가 사건 조사를 위해 랜우드 호텔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유저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비 내리는 거리는 실제 공간을 옮긴 듯한 그래픽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레이스의 기본 시점은 1인칭이며 걸음 속도 역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제 거리를 걷는 듯한 체감을 준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이 사실성은 공포를 강화하는 근거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 플레이어의 공포를 대리하는 존재인 그레이스.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그레이스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다. 그는 어둠을 두려워하고 낯선 소리에 쉽게 흠칫한다. 우리가 겁을 먹는 순간에, 그 역시 몸을 떨고 있다. 게임은 캐릭터의 성격을 ‘보통의 인간’으로 설정해 플레이어가 그레이스가 처한 상황에 쉽게 이입하도록 설정했다. 일부 리메이크 작품과 7편 이후 시리즈에서 보여준, 자원과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둡고 닫힌 공간을 헤쳐나가야 하는 플레이는 여기서도 이어진다.
▲ 두 번째 주인공의 등장.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 왠지 익숙한 전기톱을 든 적과의 전투. 전기톱은 실제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다행히 공포가 주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시점마다 레온이 구원자처럼 등장한다. 중년이 된 그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좀비를 해체하는 데 이골이 난 인물이다. 그는 초반부터 다수를 상대하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바로 직전의 그레이스 플레이와 대비되면서 체감되는 쾌적함은 배가된다. 신작에서는 전투 도끼와 ‘레퀴엠’ 등 신규 장비가 추가되면서 타격감이 개선됐다. 적의 머리나 다리를 노린 후의 연속 공격 연출도 전작보다 다양하고 경쾌해졌다.
두 주인공이 만들어낸 새로운 조화
▲ 좀비의 종류와 강적이 다양해졌다.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두 주인공 체제는 반복 플레이가 주는 지루함도 해소한다. 일부 전작 역시 초반에는 공포를 강조하고 후반에 성장요소를 더하는 방식으로 플레이 경험을 변화시키던 방식이 존재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이 바뀌지 않아, 구역만 달리한 반복처럼 느껴지는 구간들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레퀴엠’은 플레이 방식 자체를 전환화며 게임 플레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이 구조는 양측 팬덤 모두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동력으로도 작용한다. 레온의 화력을 경험한 후부터는 그레이스를 괴롭혔던 존재들의 무게감은 줄어든다. 그레이스가 좀비 앞에 한낱 인간에 불과하듯, 레온 앞에서 강적도 한낱 좀비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다. 공포에 취약한 플레이어는 레온의 등장을 기다리며 플레이를 이어갈 힘을 얻게 되며, 반대로 공포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레온 파트는 다음 공포 구간을 맞이하기 전 숨을 고르는 구간으로 즐길 수 있다.
▲ 게임 초반 대응 수단의 부재로, 도망치는 것 외에는 탈출 방법이 없다.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각 플레이 방식의 완성도 역시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예를 들어 그레이스의 초반 구간에서 라이터 하나에 의지한 채 거대한 괴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장면은 전작보다 한층 발전한 공포 연출을 보여준다. 빛에 숨어야 하는 플레이 구조를 도입해 플레이어가 빛 속에서 괴물의 모습을 직접 마주하도록 만드는 설계도 인상적이다.
레온 파트에서는 다양한 무기와 여러 보스전이 등장한다. 특히 전투 도끼를 활용한 패링 액션과 좀비가 떨어뜨린 무기를 활용해 전투를 펼치는 시스템이 추가되며 전투 경험 자체가 다채로워졌다. 화려한 액션을 위화감 없는 조작으로 구현하면서 전투 자체의 재미도 강화됐다.
레퀴엠이 과거와 마주한 방식
▲ 추격전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QTE 향수. 라쿤 시티에서 레온은 그야말로 만능이다.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레퀴엠’의 구작 레퍼런스를 보면 이번 작품이 시리즈 전체 팬덤을 다시 하나로 묶기 위한 기획이라는 인상이 강해진다. 플레이 방식부터 공간, 스토리 전개까지 팬들을 위한 요소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해당 설계는 단일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해치는 단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캡콤의 붙인 사족에서는, 약간의 개연성을 포기하더라도 팬심을 붙잡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초반 지역인 로즈힐 요양 병원을 보자. 공간의 대칭성과 퍼즐의 위치 등, 2편의 경찰서가 바로 떠오르는 구조다. ‘레퀴엠’은 단순한 자기 복제를 피하기 위해 공간 구조는 취하되, 내부 요소를 다르게 배치해 신선함을 준다. 대표적인 예가 T-바이러스의 부작용으로 생전의 행동을 반복하는 좀비들이다. 청소부나 요리사, 지배인, 환자 등 다양한 좀비들로 획일화된 전투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 그 장소로 돌아가는 레온.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중후반 이후에는 게임의 배경은 아예 라쿤 시티로 옮겨진다. 스토리 전개만 놓고 보면 이 결정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간 구성 역시 이전 지역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장소가 레온의 서사가 시작된 라쿤시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는 달라진다. 레온에게 보내는 헌사와, 과거와의 화해를 그리기 위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레온은 라쿤시티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건물 위를 질주하며 추격전을 펼치고 추억의 보스들과 재대결을 펼치며 시리즈를 지탱해 온 캐릭터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레온이 경찰서로 돌아가 과거에 지나온 퍼즐과 공간을 지켜볼 때, 그가 라쿤 시티에서 구하지 못한 이들을 떠올릴 때, 유저는 그가 자신의 과거와 어떤 방식으로든 매듭짓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결말에서 레온은 새로운 인연을 구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화해하며 희생자들을 위한 장송곡을 남기며 자신도 구원을 얻는다.
▲시리즈가그리는 다음 작품은. 사진=인게임 캡쳐화면
게임은 작품명처럼 두 주인공이 과거에 보내는 진혼곡을 그린다. 그레이스와 레온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레이스는 FBI 요원으로, 8년 전 가족을 잃은 이후 일종의 PTSD에 시달린다. 레온은 여전히 과거 라쿤 시티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워한다.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는 또 한 명의 인물에게도, 그가 저지른 세계를 치유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게임 내 인물들은 각자의 답을 얻었다. 외적으로 볼 때 ‘레퀴엠’이 시리즈 전체 과거와 대면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레퀴엠’은 단일 작품으로 아쉬운 면은 있지만, 시리즈가 걸어온 길과 캐릭터의 한 단락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닌다. 캡콤은 이번 작품을 통해 공포와 액션 사이에서 흔들리던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향해야 할 다음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여러 팬덤을 동여맨 시리즈가 펼칠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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