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개정안이 2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내 기업의 자본 운용 방식과 지배구조 전략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난해 7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1차 개정에 이어, 이번에는 자사주를 장기간 쌓아두며 경영권 방어와 자본정책에 활용해 온 관행 자체에 제도적 제동이 걸리게 됐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개정이 주주환원 강화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기업의 재무 전략과 경영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한다. 본보는 3차 상법개정안의 핵심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의미와, 이 변화가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며 보험업권을 둘러싼 재무적 함수 또한 한층 복잡해졌다. 시장은 ‘유통주식 감소에 따른 주당가치(EPS) 제고와 저평가 해소’라는 낙관론을 선반영하며 환호했지만, 정작 보험사 내부에서는 자사주 소각이 단순한 ‘밸류업 카드’를 넘어 건전성 관리의 임계치를 시험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깊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래에셋생명(26.3%), 한화생명(13.5%), 삼성화재(13.4%), DB손해보험(12.6%), 현대해상(12.3%), 삼성생명(10.2%) 등 자사주 비중이 두 자릿수를 상회하는 상장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시장의 하방 압력과 기대감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다.
특히 개정안이 신규 취득분은 1년, 기존 보유분은 법 시행 후 1년6개월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규정함에 따라, 그간 재무적 완충지대로 활용되던 자사주의 성격이 ‘거버넌스 리스크 관리’의 핵심 변수로 급변했다는 평가다.
선제적 결단과 전략적 인내…기업별 ‘자본 방정식’ 분화
보험사들은 각자의 자본 체력과 중장기 로드맵에 따라 차별화된 대응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다. 이는 자사주 소각이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 이면에 가용자본의 직접적인 감소와 K-ICS(신지급여력제도) 비율 하락이라는 실무적 실익을 정밀하게 타격하기 때문이다.
DB손해보험은 과감한 행보를 보이며 시장의 신뢰를 선점했다. 지난해에 이어 지난달 총발행주식의 약 5%에 달하는 7981억원 규모의 추가 소각을 단행하며 ‘환원의 진정성’을 증명했다.
반면 현대해상은 속도 조절을 통한 ‘전략적 유연성’에 방점을 찍었다. 전체 자사주 중 일부를 임직원 성과보상용으로 유보하고, 소각 일정을 2027년까지 분산 배치함으로써 자본 하방 압력을 분산시키는 입체적 로드맵을 택했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보유 자사주의 93%를 소각하는 파격적인 결단으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보가 향후 M&A나 자본 확충 시 활용할 수 있는 ‘재무적 기동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결국 보험사들에 자사주 소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과 환원의 균형점을 찾는 고차함수’가 된 셈이다.
K-ICS의 벽과 IFRS17의 역설…자본 정책 ‘구조적 한계’
보험사가 타 금융권보다 자사주 소각에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한 제도적 제약에 기인한다. 소각은 회계상 가용자본(분자)의 감소를 야기하며, 이는 금융당국이 엄격히 관리하는 K-ICS 비율의 즉각적인 하락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다.
특히 2027년 도입 예정인 기본자본 중심의 규제 강화는 보험사에 ‘환원보다 수성’이 우선이라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IFRS17 체제 아래에서의 변동성 또한 거대한 그림자다. 보험부채 시가평가로 인해 금리 및 계리적 가정의 미세한 변화가 재무제표를 흔드는 상황에서, 당장의 가시적 이익만을 근거로 자본을 영구 소멸시키는 소각은 재무적 복원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실질적 배당 재원을 잠식하는 ‘해약환급금 준비금’ 이슈는 자사주 매입 여력을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연쇄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 소각 넘어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의 시대로
전문가들은 이번 국면이 보험업권의 거버넌스 역량을 증명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세종대 경영학과 황용식 교수는 “자사주 소각은 주주환원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보험사는 건전성 규제와 자본 여력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업권”이라며 “단순히 환원 정책 경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자본 정책과 사업 전략을 함께 고려한 균형 잡힌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 역시 “보험사는 장기 부채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산업인 만큼 자본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K-ICS 규제와 IFRS17 체제에서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환원 정책은 중장기적인 자본 관리 전략 속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보험업권의 과제는 ‘얼마나 소각하느냐’라는 양적 경쟁을 넘어, ‘어떤 자본 정책 로드맵으로 시장을 설득하느냐’라는 질적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무리한 자사주 소각이 건전성 훼손이나 신용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주주환원 요구와 자본 안정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보험사들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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