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사 미술 Ⓘ 75p 수록
작가: 김득신
작품명: 야묘도추(夜猫盜雛)
재료: 종이에 수묵담채
작품크기: 22.4 × 27cm
제작년도: 18세기 (조선 후기)
[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야묘도추(野猫盜雛)’라는 작품명은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친다’라는 뜻으로, 은밀하고 조용한 상황을 암시한다. 제목만 놓고 보면 모두가 잠든 밤, 고양이가 기척 없이 병아리를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달리, 김득신의 그림 속 풍경은 조용함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은 시작부터 관람자의 상상을 단번에 뒤엎으며, 고요 대신 소동으로 가득 찬 순간을 펼쳐 보인다.
이 장면에 가장 어울리는 소리를 고르자면 단연 ‘우당탕’일 것이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마당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순간, 집 안의 정적은 순식간에 깨진다. 거의 넘어질 듯 몸을 앞으로 내민 남자, 놀란 얼굴로 뒤따라 나오는 여인, 소동에 휘말려 허둥대는 닭과 사방으로 흩어지는 병아리들까지 화면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각각의 존재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집 안 전체를 술래잡기 현장으로 만든다.
이러한 긴장감은 화면 구성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사람과 동물은 모두 같은 쪽을 향해 움직이고, 그들의 시선과 몸짓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대각선 흐름으로 이어진다. 화면을 안정시키는 중심축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장면은 금방이라도 균형을 잃을 듯 위태롭게 기울어 있다. 배경은 과감히 생략되어 구체적인 공간감이 드러나지 않지만 그 빈자리는 오히려 사건의 순간과 인물들의 움직임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 작품은 분명 멈춰 있는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지만, 금세 다음 장면으로 이어질 듯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러한 생동감은 표현 기법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야묘도추’는 수묵을 바탕으로 옅은 색을 더한 수묵담채 기법으로 그려졌다. 굵고 빠른 먹선은 인물과 동물의 형태를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움직임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지는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색채는 형태를 강조하기보다는 먹선 위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장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살리고, 화면이 지나치게 복잡해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 준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장식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의 생생함을 전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이 그림은 꾸며진 장면이라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김득신의 화풍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영웅적이거나 이상화된 인물 대신,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법한 평범한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화면 속 인물들은 위엄을 드러내기보다 상황에 몰두해 허둥대거나 다소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등장한다. 모두가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그 모습에는 어딘가 익살스러운 면이 배어 있어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김득신의 시선은 현실을 미화하거나 교훈적으로 꾸미지 않고, 삶의 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데 머문다.
‘야묘도추’ 속 인물들은 몇백 년 전의 사람들이지만, 그 모습은 놀라울 만큼 오늘의 우리와 닮아 있다. 메신저 알림 하나,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에도 우리는 쉽게 하루의 균형을 잃는다. 사소한 일 앞에서 마음은 급박해지고, 생각보다 먼저 나간 몸은 상황을 더 어지럽힌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쫓고, 또 쫓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소동과 마음속의 동요를 함께 만들어 낸다.
예기치 않은 순간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소한 혼란은 조선 후기의 집마당과 오늘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겹쳐 놓는다. 이 그림이 오래도록 살아 있는 이유는, ‘우당탕’ 소리가 멎은 뒤에도 우리의 하루가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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