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정책과 중동 전쟁 여파가 동시에 확산되면서 국내 산업계의 불확실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재검토와 이란 전쟁에 따른 환율·유가 급등이 맞물리면서 기업 경영 환경이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이다. 산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지정학적 변수와 통상 정책이 동시에 작용하는 만큼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글로벌 관세 인상 가능성을 재차 언급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 정책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리자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글로벌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10% 수준의 글로벌 관세를 최대 15%까지 높일 수 있다고 밝히며 국가별 차등 관세 도입 가능성도 시사했다. 각국의 무역 구조와 대미 투자 규모 등을 반영해 서로 다른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산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자동차에는 15% 수준의 품목 관세가 적용되고 있으며 철강에는 최대 50%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와 의약품까지 추가 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수출 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가별 차등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추가로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산업계에서는 대미 투자 확대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미투자특별법’의 조속한 처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치권 갈등 속에 법안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단체들도 입법 지연이 통상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6단체는 최근 공동 성명을 통해 대미투자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기업의 통상 리스크 대응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동 정세 역시 산업계에 새로운 부담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군사 충돌이 확대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에너지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중동에서 생산된 원유 상당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이동하는 만큼 해협 봉쇄 우려만으로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0달러 초반까지 올라 전월 대비 20달러 가까이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졌고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과 유가 상승은 산업별로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업종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 대부분의 거래가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매출 증가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강한 상황에서는 일정 부분 원가 상승을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업 역시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조선사는 이미 수년치 수주 물량을 확보한 상태이며 선박 계약이 달러 기준으로 체결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항공과 철강 업종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항공업계는 항공기 리스료와 정비비, 항공유 등 주요 비용 대부분을 달러로 결제한다. 환율 상승과 유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비용 구조가 크게 악화될 수 있다. 특히 3월과 4월은 여행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비수기여서 수익성 압박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철강업계 역시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철광석과 원료탄 등 주요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인 만큼 환율 상승은 곧바로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강 제품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즉각적인 반영이 어려워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유업계는 단기적으로는 긍정적 요인도 있다. 국제유가 상승과 환율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이전에 확보한 원유 재고의 평가이익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유가 상승이 이어질 경우 석유제품 수요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산업계에서는 환율 1400원대가 사실상 새로운 기준선처럼 자리 잡았지만 1500원대 진입은 전혀 다른 국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1400원대 환율에는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1500원을 넘어 안정화되는 상황은 산업 구조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며 “통상 정책과 지정학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과 중동 전쟁이 동시에 이어질 경우 글로벌 공급망과 통상 환경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계에서는 전쟁 장기화 여부와 미국의 추가 통상 조치를 예의주시하며 대응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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