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화려함 너머의 싱가포르 ① 골목길 사이 켜켜이 쌓인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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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화려함 너머의 싱가포르 ① 골목길 사이 켜켜이 쌓인 얘기들

연합뉴스 2026-03-05 08:00: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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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싱가포르는 19세기 초 대영제국이 해상 교역을 장악하기 위해 설계한 항구에서 출발한 도시였다. 그 위에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이 더해지며 항구는 상업 도시로 성장했고, 도시는 곧 국가의 틀을 갖췄다. 그렇게 형성된 싱가포르는 오늘날 국제 금융과 외교의 무대가 된 도시국가로 이어졌다. 그러한 배경 덕분에 작은 도시국가지만, 골목길 작은 모퉁이마다 역사와 스토리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카펠라 호텔 앞 해변 [사진/성연재 기자]

카펠라 호텔 앞 해변 [사진/성연재 기자]

◇ 영국이 선택한 포구, 세계의 항구가 되다

싱가포르는 면적이 647㎢에 불과한 도시국가다. 인구는 약 570만 명, 이 가운데 시민권자는 340만 명가량이다. 중국계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말레이계와 인도계가 함께 구성하는 다민족 사회다.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싱가포르 건설의 아이디어를 낸 인물은 19세기 초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활동하던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다. 그는 1819년, 말레이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포구에 주목하며 이곳을 새로운 무역 거점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지역에 살던 인구는 1천 명 남짓에 불과했다. 변변한 도시라 부르기 어려운 어촌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지리적 조건이 먼저 들어왔다.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건축물 [사진/성연재 기자]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건축물 [사진/성연재 기자]

믈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인도로 오가는 동서 해상 교역로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상선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위치라는 판단은, 이곳을 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으로 이어졌다.

센토사섬의 팔라완 키즈시티에서 싱가포르 해협을 내려다보면 당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해협 앞바다에는 국적을 가리지 않은 상선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류(繫留)돼 있다. 해양 관련 세제와 행정 절차가 비교적 간편한 싱가포르는 선사와 해운업계가 선호하는 항구로, 아시아 해운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불교 사찰 불아사 [사진/성연재 기자]

불교 사찰 불아사 [사진/성연재 기자]

◇ 싱가포르를 지탱하는 다문화

지난 2019년 열린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가 된 카펠라 싱가포르에 짐을 풀었다. 호텔에서 쉴 시간도 없이 호텔이 제공하는 '예술적 발걸음 투어'(A Walk on the Art Side)에 합류했다. 싱가포르의 골목과 벽에 얽힌 스토리가 그 주인공이다. 이 투어는 대형 미술관이나 유명 갤러리를 찾지 않는다. 대신 리틀 인디아와 차이나타운 일대의 골목을 걸으며 도시 곳곳에 남은 스트리트 아트와 공공 예술을 따라간다. 금융 중심지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또 다른 얼굴을 접하는 것이다.

투어는 사진 명소만을 찍고 지나가는 일정과 다소 다르다. 어쩌면 벽화와 건축 등을 통해 도시를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싱가포르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된 도시인지, 동시에 그 자양분 속에서 어떤 예술이 싹을 틔우고 결실을 보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싱가포르 시내 한복판, 리틀 인디아에 들어서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금융가의 유리 빌딩과 쇼핑몰이 만들어내는 말끔한 풍경에서 몇 블록만 벗어났을 뿐인데, 공기에는 향신료의 냄새가 감돌고 거리의 색채도 짙어졌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테마 공간이라기보다, 현지인들의 삶이 이어지는 생활의 무대였다.

힌두교 스리 비라마칼리암만 사원 [사진/성연재 기자]

힌두교 스리 비라마칼리암만 사원 [사진/성연재 기자]

특히 인상적인 것은 힌두교 스리 비라마칼리암만 사원이었다. 1835년에 건립된 이 사원은 차분하지만 뭔가 강한 기운이 감돌았다. 제단 앞에 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 손을 모은 채 여러 신들을 향해 농도 짙은 표정으로 염원하는 모습이었다. 그 눈빛에는 소망이 있었고, 동시에 피로도 스며 있었다. 간절함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곳에서 마주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싱가포르 시민이 아니다. 건설 현장과 도로 공사, 청소와 시설 관리 같은 도시의 밑바닥을 떠받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평일이면 작업복을 입고 도시의 가장 거친 공간에 서 있다가, 휴일이 되면 이렇게 사원으로 모여든다. 그들에게 이 사원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처럼 보였다.

향불 올리는 인도계 신자 [사진/성연재 기자]

향불 올리는 인도계 신자 [사진/성연재 기자]

발걸음을 옮겨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초기 도시 개발 과정에서는 청나라에서 유입된 이주 노동력이 핵심 역할을 했으며, 특히 건설 현장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를 뜻하는 '삼수이 여성'은 큰 역할을 했다. 중국계 이주민들은 항만과 상업, 금융의 기반을 닦으며 도시의 중추로 자리 잡았고, 그 삶의 흔적은 오늘날 차이나타운 일대에 층층이 남아 있다. 좁은 골목마다 오래된 상점과 약방, 사당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카페와 기념품 가게, 현대적인 레스토랑이 겹겹이 들어섰다. 과거와 현재가 경쟁하듯 공존하는 풍경이다.

2018년 북미회담이 열린 카펠라 [사진/성연재 기자]

2018년 북미회담이 열린 카펠라 [사진/성연재 기자]

불아사 등 불교 사찰에서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그 안쪽에서는 여전히 향을 피우고 조용히 절을 올리는 노년의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힌두교 사원에서 만난 인도인들의 간절한 염원과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소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노동자로 시작해 상인으로, 다시 도시의 주류로 이동해 온 중국인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불아사를 나서며 다시 거리로 나오자, 밤을 준비하는 차이나타운의 골목에서는 붉은 등불 아래서 또 다른 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취재협조] 싱가포르항공·카펠라 싱가포르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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