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국회에서 약 한 달간 공전하던 대미투자특별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오는 12일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을 처리키로 했다.
한미관세 협상 타결 후 국회에서 법안 마련이 되지 못하자 트럼프 대통은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법 처리 지연을 문제 삼아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상향하겠다고 한 바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하면서 통상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정부는 대미투자특별법 마련을 계기로 미국 측에 대미투자 실행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1호 투자' 사업을 빠르게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4일 전체회의와 소위원회를 잇달아 열고 대미 관세협상 후속 입법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지난달 12일과 24일 전체회의를 열었으나 민주당의 사법개혁 3법 추진 논란으로 파행한 후 약 일주일 만에 특위 가동이 이뤄졌다.
대미특위 4일 법안소위 가동…12일 본회의 처리
천준호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회동한 뒤 대미투자특별법을 이달 12일 본회의를 열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천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유 수석으로부터 대미투자특별법에 대해 오는 9일까지 법안 심사를 마무리하고 처리하겠다고 들었다"며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늦어도 오는 12일 국회 본회의에 법안이 상정돼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내운영수석부대표도 "입법 절차가 지연된다면 미국이 굉장히 강한 무역 보복을 할 수도 있다. 국익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승적으로 처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장 대미투자특위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에서 법안심사소위 구성 안건을 의결하고 특별법 9건을 상정했다. 별도 투자공사 설립 여부와 한미전략투자기금 재원 마련 구조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회의에 참석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미국이 9일까지 (대미투자법 국회 통과가)되는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시한 준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회의 일정에는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투자 방식에 대해선 여야 간 이견이 있어 법안 심사 과정에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을 계획이다.
정부안은 대미투자업무를 전담할 독립 공사를 설립하도록 규정하는데 이에 대해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은 "기존 조직에서 전문가들을 파견하는 옥상옥 자리를 만드는 것이란 우려가 있다"며 "소위원회에서 철저히 따져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진욱 민주당 의원은 "재원을 조달할 때는 시장과 투자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므로 독립적인 투자 전담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소 이견이 있었다.
정부 투자에 대한 국회의 감시 범위에 대해서도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보고와 사전 동의 절차를 특별법 안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최소한의 자료라도 국회에 보고받을 수 있도록 법안에 명시해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에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개별 투자에 대한 국회 심의는 투자 결정의 신속성과 탄력성을 저해할 수 있다. 30억 달러 이상 되는 상당한 규모의 투자에 대해서만 사전에 국회 동의를 받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견이 확인된 사안들이 향후 법안 심사 과정에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을 계획이다.
23일 한미의원연맹 소속 의원 방미…관세 대응 나서
여야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후 미 의회를 찾아 직접 관세 대응에도 나섰다.
한미의원연맹은 이날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게서 관세협상 현황을 보고 받은 후 23일 방미 일정을 계획했다고 전달했다.
연맹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미 의회에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소식과 함께 트럼프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 규제도 조정한다는 방침을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한미 의원연맹이 앞으로 미국 의회와 관련해서 좀 구조적인 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에도 미한 의원 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미에선 쿠팡으로 인해 불거진 미 정부와 경제계의 항의에 대해선 국내 개인정보 유출 실상을 설명해 불공정한 제재가 아님을 설득하고,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독과점 규제를 두고는 미국 측 우려를 반영해 조정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전달할 예정이다.
여한구 "한미통상에 국회 역할 중요, 투자법 적기 통과해야"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4일 한미 관세협상과 맞물린 대미투자특별법과 관련해 "국회에서 적기에 통과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한미의원연맹 주최 '한미 관세 관련 간담회'에 참석해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헌 결정 이후 무역법 122조·301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 다양한 관세 정책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어 국제통상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 행정부, 의회와 협의하면서 한미 통상 관계를 안정시키는 데 있어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며 "미국은 통상 권한을 의회가 가지고 있고, 이를 미국 무역대표부가 위임받아 협상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도 상·하원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들을 설명하고 있다"며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한미의원연맹이 미국에 직접 가서 상·하원 의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논의 중인 다양한 법안에 대해 미국 측에 우리의 정책 의도를 정확히 설명하고, 오해를 방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 대해 여 본부장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와 관련해선 정부가 비상 체제로 대응하고 있다"며 "국회와도 긴밀히 협조해 위기 상황에 잘 대응하도록 해야겠다"고 언급했다.
구윤철 "美투자, 공짜 돈 아냐…원리금 회수·기업엔 기회"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대미투자특별법 논의와 관련해 "이번 대미 투자는 공짜로 주는 돈이 아니라 원리금을 회수하는 투자"라며 "사업에 따라 우리 기업이 참여하고 납품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관세협상을 체결하면서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펀드 중 2000억 달러를 현금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로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
구 부총리는 4일 국회 대미투자특별위원회 대체토론에서 "이 사업을 소극적으로 보면 마치 돈을 뜯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보면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원 마련 방식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외환보유고 운용 수익을 활용할 계획"이라며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기성고에 따라 집행될 것"이라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해외에서 달러채를 발행해 국내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투자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목소리가 작아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투자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게 된다"며 "정부 내부 의사결정과 국회 논의 결과 등을 반영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대규모 투자 사업을 관리하기 위한 별도 전담기구 설립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 투자 사업인 만큼 전담기구를 통해 꼼꼼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 중심의 사업관리위원회와 국가적 판단을 담당하는 운영위원회를 구분해 운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사업별 태스크포스 형태로 운영할 것이며 조직을 방만하게 운영하거나 인력을 과도하게 늘릴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국회 통제 문제에 대해선 "사업별로 국회에 사전 보고하고 충분히 논의하도록 하겠다"며 "집행 과정에서 비효율이나 책임 회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국회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미투자 사업을 통해 우리 기업들에게 산업적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관세 인하 효과는 이미 얻었고 투자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참여하거나 우리 물건을 납품하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며 "사업을 잘 선정하고 추진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