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국민의힘이 법왜곡죄 신설·재판소원 도입·대법관 증원 등 이른바 ‘사법개혁 3법’에 반발해 국회 규탄대회와 청와대 도보행진에 나섰다. 명분은 “사법독립·헌정질서 수호”이고, 목표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촉구다.
하지만 장외투쟁의 첫 장면부터 균열이 노출됐다. 당 안에서는 “처절한 투쟁이 ‘윤 어게인’ 파티로 전락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현장에서는 구호와 상징이 메시지를 잠식했다. 이 장외투쟁은 과연 ‘법안 반대’라는 목적에 맞게 작동하고 있는가. 정치의 문법으로 따져보면, 답은 조건부다. 지금의 방식대로라면 실효성은 낮고, 설계와 문장부터 다시 써야 한다.
장외로 나간 이유
이번 장외투쟁은 ‘거리 정치’로 여론을 흔들어 대통령의 거부권을 끌어내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문제는 이 목표가 구조적으로 녹녹치 않다는 점이다. 사법개혁 3법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이 배출한 이재명 대통령이 친정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리 만무다. 게다가 여론전이 곧바로 제도 결과로 이어지는 통로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장외투쟁은 메시지의 명료함과 상징성이 생명인데, 출발부터 삐거덕거렸다.
게다가 국민의힘이 “사법부를 지킨다”는 언어를 채택한 순간, 프레임은 정교해야 한다. 사법개혁 3법의 세부 쟁점을 ‘대안’으로 말하지 못하면, 수호의 언어는 쉽게 ‘기득권 방어’로 번역된다. 반대의 정치가 실효성을 갖는 조건은 ‘반대 이유’가 아니라 ‘대안 설계’에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의 거리정치에서는 그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다.
“윤 어게인”이 삼켜버린 메시지
정치에서 메시지는 문장으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누가 함께 걷는지, 어떤 구호가 들리는지, 어떤 깃발이 보이는지가 곧 본문이다. 이번 도보행진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연호’와 ‘윤 어게인’ 구호가 섞이자, 일부 의원들이 행진에서 빠졌고, 참여 인원도 80여 명이 참여한 규탄대회에 비해 행진 후 50여 명으로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러한 장면은 장외투쟁의 주제가 ‘사법개혁 3법 반대’가 아니라 ‘윤 어게인’으로 읽힌다. 행사의 취지와 메시지가 당 지도부가 아니라 강성 지지층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순간이다. 대중은 지도부가 아무리 “메시지가 희석돼 아쉽다”고 말해도, ‘내란당’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정치문법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사법개혁 반대”는 정책·제도의 언어이고, “윤 어게인”은 정체성·감정의 언어다. 장외투쟁이 정체성의 언어에 잠식되는 순간, 제도 반대는 설득이 아니라 결집으로 축소된다. 결집은 내부를 뜨겁게 할 수 있지만, 중도 확장에는 취약하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라면 더 치명적이다.
침묵 행진으로 끝나버린 여론전
이번 도보행진이 ‘침묵 행진’이 된 이유로 “집회 신고를 못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래서 차도 행진이나 구호 제창 없이 인도를 따라 걸었고, 일부는 검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헌정질서 수호”를 외치는 투쟁이, 가장 기본적인 절차의 완결성에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급히 결정돼 신고를 못 했다는 해명은 가능하지만, 여론전이 목표인 장외투쟁에서 신고 미비로 인해 침묵시위가 되어버린다면 전달력이 상실된다. 실제 현장 시민들 반응도 “무슨 집회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무심했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정치적 설득은 내용과 형식이 함께 간다. 형식이 어색하면 내용은 전달되지 않는다. 때로는 침묵 행진도 무게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았다. “사법파괴 3법”이라는 강한 단어를 꺼내어 여론전을 펼칠 요량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설명의 문장, 대안의 문장을 대중에게 큰 소리로 어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절차적 완결성 부족으로 인해 이번 여론전은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강성 지지층의 ‘윤 어게인’ 문장과 충돌
당내 개혁파 모임 <대안과미래> 에서 “윤 어게인을 위한 행진이 돼버렸다”는 우려가 나왔다는 보도는, 이 장외투쟁이 단순한 전술 논쟁을 넘어 ‘당 정체성의 문장 경쟁’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안과미래>
강성 지지층은 “지선 승리 방법은 오직 윤 어게인”이라는 구호로 압박하고, 지도부는 “사법개혁 철퇴 메시지가 희석됐다”고 말하며 선을 긋는다. 이 간극은 장외투쟁이 그저 ‘당내 노선투쟁’으로 폄훼될 수 있다. 즉, 거리로 나간 목적이 사법개혁 3법 반대가 아니라, 거리에서 드러난 균열이 기사 제목이 된다.
정청래, “떼쓰기” & 이준석 “논리적 모순”
여권은 즉각 프레임을 걸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 장외투쟁을 “떼쓰기”로 규정하며, “윤어게인 세력과 같이 행진하더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제3지대의 비판은 더 날카롭게 ‘논리’로 겨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 1심 판결과 부정선거 주장 등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문제 삼으며, 그런 상태에서 “사법부를 지킨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취지로 공격했다.
정치에서 장외투쟁의 실효성은 상대의 반격 프레임에 맞서 우리 주장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지금 국민의힘 장외투쟁에는 “윤 어게인 동행”, “신고 미비로 인한 침묵 행진”, “떼쓰기”, “모순” 같은 반격용 수식어들이 따라 붙는다.
‘거리’가 아니라 ‘문장’을 다시 써야
장외투쟁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소수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제한될 때, 거리 정치가 존재감의 장치가 될 수는 있다. 다만 실효성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윤 어게인’과의 시각적 결합을 끊거나, 최소한 분리해야 한다. 메시지의 소유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투쟁은 계속 의도치 않은 구호로 번역된다.
둘째, 사법개혁 3법의 문제점을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에 대해 ‘왜 위험한지’만이 아니라 ‘어떤 개혁이 더 낫는지’의 문장이 필요하다.
셋째, 절차와 준비의 문법을 회복해야 한다. 신고 문제로 침묵 시위가 되는 순간, 여론전의 확성기는 기능을 못한다.
넷째, 선거 국면의 제약도 계산해야 한다. 공직선거법상 정당의 당원집회는 선거일 90일 전부터 31일 전까지 신고·장소 요건 등이 붙고, 선거일 30일 전부터는 개최가 제한된다. 즉 수위를 올릴수록 선택지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장외투쟁은 반대 메시지는 보여줬지만 ‘설득의 구조’는 갖추지 못했다. 사법개혁 반대를 관철하려면, 큰 함성보다 더 정확한 문장이 먼저다. 그 문장이 정리되기 전까지, 국민의힘의 장외투쟁은 실효성보다 역효과의 위험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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