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오래된 경구는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바닷속에서 가장 못생긴 생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귀는 오랫동안 '물텀벙이'라 불리며 천대받았다.
잡히면 값어치가 없다 여겨져 다시 바다로 던져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늘날 아귀는 겨울과 초봄을 대표하는 보양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못생긴 외형과 달리 그 속에 담긴 영양과 약성은 꽃보다 곱다.
우리 조상은 음식을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밥상에 오르기 전, 늘 먼저 "이 음식은 내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양생(養生)의 시선을 담았다. 아귀는 도교 양생학과 한의학, 그리고 현대 영양학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매우 흥미로운 식재료다. 겉과 속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음식도 드물다.
아귀(餓鬼)라는 이름은 불교에 나오는 '굶주린 귀신'에서 비롯됐다. 입은 크지만 목구멍이 좁아 늘 허기진 존재, 욕망은 크되 채워지지 않는 존재를 가리킨다. 흉측한 얼굴과 유난히 큰 입을 가진 아귀를 보고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에는 조롱을 넘어 삶을 경계하는 뜻도 담겨 있다. 욕심만 앞서면 결국 고통이 따른다는 교훈이다.
◇ 놀라운 아귀의 영양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붙은 이름과 달리 아귀는 사람의 몸을 살리는 귀한 영양을 가득 품고 있다. 이는 양생에서 말하는 "형상은 추해도 기(氣)는 맑을 수 있다"는 가르침과 닮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 그것이 아귀가 밥상 위에서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다.
약선학적으로 아귀의 성미는 약간 쓰고 짭짤하며 차가운 편으로, 위와 신장에 작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 문헌에는 "부기를 가라앉히고 독을 풀며, 염증과 종기를 다스린다"고 적혀 있다. 이는 아귀가 몸속에 뭉친 열을 풀고, 고인 습기와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겨울 동안 움츠러들어 순환이 막히고 노폐물이 쌓이기 쉬운 몸에, 아귀가 제철 음식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아귀는 매우 합리적인 식재료다.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풍부한 저지방·고단백 생선으로, 100g당 열량이 약 80~100kcal에 불과하다. 체중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적고, 노년기나 회복기에도 활용도가 높다.
아귀에는 인체에 중요한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다. 근육과 면역력을 지탱하는 단백질, 뇌 기능을 돕고 기억력 저하를 늦추는 DHA와 EPA, 눈 건강과 면역력을 책임지는 비타민 A, 피로 해소와 혈액 순환을 돕는 타우린,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셀레늄, 피부와 관절을 튼튼하게 하는 콜라겐까지, 하나의 생선 안에 다양한 역할이 담겨 있다.
특히 아귀 간은 DHA와 EPA 함량이 매우 높아 '바다의 푸아그라'라 불린다. 고소하고 깊은 맛 덕에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지만, 기름진 부위인 만큼 소량으로, 반드시 익혀 먹는 것이 양생의 기본이다. 아무리 귀한 음식이라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아귀는 몸으로 보여준다.
아귀는 오랫동안 천대받아 왔다. 못생긴 데다 손질이 어렵고, 냉장·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금세 변질되기 쉬웠다. 잡히면 다시 바다로 던졌다고 해서 '물텀벙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나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일부 어민과 몇몇 집안에서는 아귀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겉모습에 속지 않는 눈을 가진 이들이었다.
아귀찜이 대중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콩나물과 매운 양념이 더해지면서 밍밍하던 흰 살에 생명이 불어넣어졌다. 이는 우리 음식 문화의 중요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재료의 부족함을 양념과 조화로 극복하는 지혜, 그리고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맛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적 감각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아귀 뱃속에서 나온 해산물로 젓을 담그기도 했다. 바다에서 얻은 것을 남김없이 활용하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아귀는 살 자체보다 어떻게 조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몸이 차고 소화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생강·마늘·무를 더한 아귀탕이 좋다.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순환을 돕는다. 몸에 열이 많고 잘 붓는 사람에게는 콩나물과 미나리를 곁들인 아귀찜이 알맞다. 열을 내려 균형을 잡아준다. 병후 회복기나 기력이 떨어진 이에게는 기름을 덜어낸 아귀 수육이 부담이 없다.
무는 단백질 소화를 돕고, 콩나물은 열을 내리며, 미나리는 간을 맑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음식 궁합을 중시하는 동양 양생의 핵심이다. 음식은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서로를 보완하며 몸 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2월, 몸은 지치고 면역력은 떨어지기 쉽다. 이때 필요한 음식은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속을 단단히 채워주는 음식이다. 아귀는 바로 그런 생선이다. 과하지 않게 보하고, 천천히 회복시킨다.
◇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아귀 요리법
손자병법의 마지막 장은 뜻밖에도 '싸움'이 아니라 '사람'을 말한다. 제13장 '용간'(用間)은 간첩을 어떻게 쓰느냐를 다룬다. 손자는 전쟁의 승패가 칼과 창에 있지 않다고 보았다. 보이지 않는 정보와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승부를 가른다고 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를 중히 여기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치를 꿰뚫어 보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뜻이다.
이 장을 음식으로 풀어내자면, 아귀만큼 적절한 재료도 드물다. 아귀는 바다에서 가장 흉측한 생선으로 꼽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담백한 살, 콜라겐이 풍부한 껍질, 깊은 맛을 품은 간. 아귀의 가치는 외형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늘 드러나지 않는다. 용간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쓰임을 봐야 한다.
아귀찜은 숨겨진 힘을 드러내는 조화다. 아귀찜은 혼자서는 맛이 나지 않는다. 콩나물, 미나리, 마늘, 고추장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는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합(合)의 전략'과 같다. 사람도, 정보도, 음식도 혼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때와 장소, 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양생학적으로 아귀찜은 습한 기운을 제거하고 기혈의 막힘을 푸는 음식이다. 매운 양념은 순환을 돕고, 콩나물은 열을 내려 균형을 잡는다. 이는 노자가 말한 "강함은 부드러움 속에 있다"는 사상과도 통한다. 거친 맛 속에 담백함이 숨어 있고, 험한 외형 속에 순한 본성이 있다.
아귀탕은 맑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재료 본연의 맛을 드러낸다. 손자병법에서 용간은 정보를 과장하지도, 흐리게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맑은 정보만이 전쟁을 끝낸다. 아귀탕 역시 요란하지 않지만, 깊고 오래간다.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허약해진 기운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아귀 수육은 날것을 익힘으로 다스린 음식이다. 손자병법에서 간첩은 그대로 쓰지 않는다. 반드시 걸러내고, 확인하고, 길들인다. 날 정보는 위험하고, 익은 정보만이 쓸모가 있다. 수육은 기름을 덜어내고 단백질만 남긴다. 병후 회복기, 기력이 떨어진 이에게 알맞다. 이는 도교 양생에서 말하는 '과하지 않음'(不過)의 미덕이다.
아귀구이는 불을 견뎌낸 전략이다. 겉은 단단해지고 속은 더 단단해진다. 반면 아귀 회는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만 허락된다. 신선함과 정확한 손질이 없으면 위험하다. 손자는 "간첩을 쓰되, 경솔하면 나라를 망친다"고 했다. 회는 지혜 있는 자의 음식이고, 구이는 경험 많은 자의 음식이다. 모두에게 같은 전략은 없다.
"나는 드러나지 않을 때 가장 가치 있다." 손자병법의 마지막 장이 용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의 끝은 힘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지혜다. 음식의 끝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몸을 살린다.
못생긴 아귀가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처럼, 세상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은 늘 조용히 숨어 있다. 용간의 지혜는 오늘도 우리의 밥상에서 살아 숨 쉰다. 겉보다 속을 보고, 빠름보다 정확함을 택하라. 이것이 손자와 노자가 함께 전하는 밥상의 철학이며, 저속노화로 가는 길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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