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던 어린 왕 단종과 그의 비 정순왕후. 1457년, 불과 17세의 나이에 차가운 유배길에 올랐던 단종과 홀로 남겨진 정순왕후의 눈물겨운 사연 속에는 백성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아주 특별한 음식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유배지에서 마주한 아내의 향기, 어수리 나물 강원도 영월의 유배지 청령포에서 단종은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기 어려웠던 어린 임금을 안타깝게 여긴 영월의 백성들은 산에서 귀한 나물을 뜯어 바쳤는데, 그것이 바로 '어수리'였습니다. 미나리과에 속하는 이 나물은 독특하고 은은한 향을 품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단종은 이 나물의 향을 맡을 때마다 "정순왕후의 고운 분내가 난다"며 곁에 두고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나물의 향기로나마 달랬던 것입니다. 이후 이 나물은 '임금에게 드리는 나물'이라는 뜻에서 '어수리'라 불리게 되었으며, 훗날 단종이 복위된 뒤에는 수라상에 오르는 진상 나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어수리는 혈액순환과 소화에 도움을 주는 식재료이기도 하여, 유배 생활로 지친 단종의 몸과 마음을 지켜준 소중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금남의 구역 '여인 시장'으로 지켜낸 왕비의 한 끼 단종이 영월에서 아내를 그리워할 때,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 역시 매일같이 동망봉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통곡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여인들이 끼니때마다 채소를 가져다주려 했으나, 관원들의 삼엄한 감시가 그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이에 여인들은 지혜를 모아 '금남의 구역'을 활용했습니다. 바로 관원들이 발을 들일 수 없었던 '여인 시장'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오직 여인들만이 채소를 사고팔 수 있었기에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 수월했습니다. 여인들은 정순왕후의 거처 주변에 일부러 시장을 열어 주위를 혼잡하게 만든 뒤, 그 틈을 타 몰래 채소와 음식을 전달했습니다. 이는 서슬 퍼런 권력조차 꺾지 못한, 백성들이 어린 왕과 왕비에게 전할 수 있었던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용기였습니다.
비록 단종과 정순왕후 두 사람은 생전에 다시 마주 보지 못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그리운 아내의 향기를 품은 영월의 어수리와 백성들의 용기로 지켜낸 정순왕후의 밥상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어도 백성들이 차려준 따뜻한 밥상 위에서만큼은 두 사람의 마음이 온전하게 마주 앉아 있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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