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의 명칭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미국은 베네수엘라 공습 작전을 개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잡아들였다. 이 작전으로 수도 카라카스가 불탔고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80명이 사망했다. 기어이 칼을 휘두른 것이다.
베네수엘라를 덮친 전쟁부의 칼끝은 곧바로 이란을 향했다. 그런데 그 전에 제거해야 할 방해물이 하나 있었다.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 AI 모델 ‘클로드’ 개발사로, 전쟁부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베네수엘라 공습 작전에서도 정보 분석·사이버 작전 등을 보조하는 데 클로드가 활용됐다.
문제는 앤트로픽이 전쟁부에 전적으로 협조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앤트로픽'(Anthropic, 인류의)이라는 사명(社名)에서도 알 수 있듯, 이 회사는 윤리적이고 안전한 AI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회사의 공식 명칭은 ‘앤트로픽 PBC(공익법인)’. 한 마디로 앤트로픽은 윤리적 가치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일이면, 그것이 미국 정부의 요구라고 하더라도 가차없이 거절할 수 있는 회사였다.
반면 전쟁부는 안보 시스템의 상당 부분을 클로드에 의존하고 있었다. 최근 전쟁부 한 관계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을 향해 발사될 경우, 군이 클로드의 AI 시스템을 활용해 요격할 수 있느냐”고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에게 물었는데, 아모데이는 “(그런 상황이 닥칠 경우) 전화 주시면 해결해 드리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앤트로픽은 이에 대해 “명백한 거짓”이라고 부인했지만, 앤트로픽의 기술이 미국의 국방에 얼마나 깊게 관여돼 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결국 전쟁부는 클로드를 ‘합법적인 모든 용도’에 제한 없이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앤트로픽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앤트로픽은 전쟁부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클로드가 대규모 시민 감시와 완전자율무기(사람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작동하는 살상무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아모데이는 “양심상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며 “국방부의 위협에도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자 전쟁부는 격분했다.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은 X(엑스, 옛 트위터)에 “앤트로픽은 오만과 배신의 극치가 무엇인지 보여줬다”며 “앤트로픽을 국가 안보에 대한 ‘공급망 위협’으로 지정할 것을 명령했다. 미국 군대와 거래하는 그 어떤 계약자도 앤트로픽과 상업적 거래를 할 수 없다”고 적었다. 사실상 미국 정부 전체, 나아가 관련 기업들과의 모든 거래를 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헤그세스는 시스템 전환 등을 이유로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뒀다.
공교로운 것은 헤그세스 장관이 ‘분노의 트윗’을 올린 지 불과 하루 만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공습을 감행,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폭살했다는 점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이다. 다만 이번 이란 공습 작전에서도 역시 클로드가 사용됐다고 한다.
앞으로 6개월이면 앤트로픽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전쟁부. 그때 전쟁부의 칼날은 지금보다 더 무뎌져 있을지, 더 날카로워졌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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