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이란 혁명수비대가 2일(이하 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충격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부터 석유화학 업계까지 경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일단 정부는 208일분의 원유 비축량을 활용해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韓 원유 70%·LNG 20% 중동 의존…호르무즈 해협 봉쇄시 직격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이란이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30%가 지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로, 우리나라 에너지 수송에서도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중동 원유 도입이 전체의 70%에 달하고,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일본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90% 안팎에 달하고, 대만도 70~80%에 달할 정도로 아시아 전체가 중동에 에너지를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타격이 막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분석 기관들은 이란이 실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증산을 결정했지만 유가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어서다.
유가 상승은 에너지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다시 커질 수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러·우 전쟁 발발로 글로벌 연료비가 급등한 뒤 7차례에 걸쳐 약 70% 인상됐다.
최근 국제 유가가 60달러 초반대로 안정되면서 전기요금 인하 요구가 커졌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요금 재인상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산업계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 생산원가에서 전기요금 비중이 큰 업종을 중심으로 수익성 악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는 최근 인공지능(AI) 산업 급성장에 따라 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전력 사용량도 증가하고 있어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구조재편에 돌입한 석유화학 업계로선 전기료 추가 부담 시 업황 회복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 위축으로 인해 유가 상승을 제품가에 반영하기 힘든 한계도 여전하다.
정부, 컨티전시 플랜 마련…산업부, 수입다변화 등 검토
정부는 급변하는 중동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상황별 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신속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산업부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전날 호르무즈 해협을 운항 중이던 HMM 컨테이너선 1척이 무사히 이 지역을 빠져나와 안전하게 운항을 이어가는 등 현재까지 우리 측 유조선과 LNG선 운항 과정에서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범정부 긴급대책반 반장을 맡은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현재 석유와 가스 비축량은 충분하다"며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카타르에서 들어오는 중동산 비중이 20% 미만이라 당장 수급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원유와 석유 제품 208일분을 비축해놓은 상태다.
양 실장은 "만약 수급 위기 발생 시에는 자체 상황판단회의를 거쳐 비축유를 국내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라며 "하지만 아직 비축유 방출을 고려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다.
이에 산업통상부는 긴급대책반을 차관급인 대응본부로 격상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본격적으로 봉쇄되는 경우 에너지·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제품의 수입선 다변화 등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산업부는 3일 오후 제3차 실물경제 점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고 자원·에너지 수급, 무역·공급망·금융 및 업종별 영향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최근 중동 상황 전개의 급박성을 감안해 이재명 대통령의 필리핀 국빈 방문을 수행 중인 김정관 장관이 현지에서 화상으로 직접 참여해 주재했다.
회의에서 김 장관은 현재 중동 지역에서 통항 중인 국적 선사 선박의 동향을 점검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본격적으로 봉쇄될 경우 유조선 등 선박의 운항 일정을 조정하는 등 대안을 즉시 시행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출 것을 당부했다.
해상 물류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주요 컨테이너 화물 선사들은 지난 2023년 '홍해 사태' 이후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 루트로 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측정·검사기기, 브롬·헬륨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공급망 차질이 없도록 대응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제조용 검사부품·장비는 미국으로부터 대체 수입이 가능하고, 브롬 등 일부 정밀화학제품도 국내 생산, 재고 활용, 수급 대체 등을 통해 공급망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맞춤형 대응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이용 비중이 54%로 높은 수입 나프타의 경우 업계와 협의해 나프타 수출물량의 국내 전환, 대체 공급망 지원 등 대응하기로 했다.
플랜트의 경우 현재 우리 기업 건설 현장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부는 앞으로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진출 기업과 긴밀히 소통하며 현장 안전과 공급망 애로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해수부, 중동사태 비상대책반으로 격상
해양수산부도 비상대비반을 비상대책반으로 격상했다. 기존에는 국장급이 반장을 담당했는데 이번 격상으로 김성범 차관이 반장을 맡는다.
해수부 등에 따르면 3일 오전 7시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비롯한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해역에 있는 우리나라 선박은 40척이다.
해수부는 해당 선사, 선박과 실시간 소통 체계를 유지하며 인근 사고 정보를 공유하고 실시간 안전 확인, 안전 수칙 당부 등 조치하고 있다.
이날 오전에 열린 상황점검 회의에서는 안전조치 현황과 해운물류 동향과 선원 지원 관련 사항을 중점 점검했다.
현재까지 보고된 우리 선박에 대한 피해는 없다.
김 차관은 "우리 선원과 선박의 안전 확보에 중점을 두고 비상 대응체계를 유지할 것"이라며 "중동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해당 선박과 선원에 대한 안전관리, 지원방안 강구 등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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