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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 고지서, 밀린 건강보험료, 응급실 내원 기록. 그동안 이 정보들은 각기 다른 행정 시스템 안에서 개별 사안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이 신호들이 겹치고 누적되면, 개인의 생활 불안을 넘어 사회적 고립의 징후가 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이를 정책 개입 대상으로 분류해 선제 발굴 체계를 가동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2월 27일 「고독사위기대응시스템」을 개통했다. 개인의 신청을 기다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 데이터 속 위험 신호를 선별해 지자체가 먼저 접촉하도록 설계한 체계다.
27개 지표로 고립 위험 선별
시스템은 복지사각지대 발굴 정보 18종과 고독사 관련 위험 정보 9종을 결합해 총 27개 위기정보를 연계한다. 단전, 전기·수도요금 체납, 건강보험료 체납, 금융연체, 알코올질환, 자살고위험관리대상자, 자해·자살로 인한 응급실 내원 정보 등 행정·의료·금융 데이터를 종합해 위험 가능성을 선별한다.
연 4회 약 18만 명 규모의 발굴 대상자를 지자체에 배분하고, 현장 조사와 위험도 판단, 서비스 연계로 이어지는 구조다. 정책 대상도 ‘고독사 위험자’에서 ‘고독·고립 위험군’으로 확장됐다. 사망 이후 통계 관리가 아니라, 고립 단계에서 개입하겠다는 취지다. 기존에는 지자체 역량에 따라 발굴 수준에 편차가 존재했다.
발굴 이후 생애주기별 맞춤형 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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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군 발굴은 출발점에 가깝다. 시스템은 발굴된 대상자를 ‘고독·고립 생애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로 연계하도록 설계됐다.
청년에게는 ‘마음회복’과 ‘일상회복’, 중장년에게는 ‘관계개선’, ‘건강관리’, ‘경제자립’, 노인에게는 ‘돌봄연계’, ‘사회참여’, ‘안전확인’ 체계가 적용된다.
시스템은 개통에 앞서 1월 20일부터 2월 26일까지 시범운영을 진행했고, 이 기간 3만0047명의 위험군을 지자체에 배분했다. 다만 이 가운데 실제 고위험자로 판정된 비율과 서비스 연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27개 지표의 예측 정확도와 발굴 효과를 평가하려면 선별 이후의 성과 공개가 뒤따라야 한다.
위험 요인 관리로 이동하는 정책 흐름
자살과 고독사는 동일한 현상은 아니지만 사회적 고립과 정신건강 문제라는 위험 요인을 공유한다. 정부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제19조에 근거해 자살유발정보 대응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5년 11월 11일 개정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한 자살유발정보 유통 금지 및 삭제·차단 협조 의무를 명확히 했다.
고립과 정신건강 위기를 개인 책임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점에서 이번 시스템 가동은 정책 전환의 신호로 읽힌다. 다만 개인정보 결합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예측 모형의 정확도, 지역 단위 사례관리 역량 등은 향후 검증이 필요한 과제로 남는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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