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 기업가의 삶이 다시 소환된다. 기업 경영을 넘어 독립운동과 교육, 사회 환원까지 실천했던 인물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조명된다.
3일 방송되는 셀럽병사의 비밀 46회는 유일한 박사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제약기업 창업자이자 독립운동가, 교육가로 살았던 그의 삶과 가치가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재산보다 사회를 택한 기업가의 선택
1971년 4월, 유한양행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이 공개되며 사회가 술렁였다. 대부분의 재산을 학교 재단에 기부하고 자식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겠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다.
‘아들에겐 자립을’, ‘재산은 사회에’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는 당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기업인의 재산을 사회로 돌린 그의 결정은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뒤 약 20년이 흐르며 또 하나의 사실이 드러났다. 일제강점기 말기, 그는 미국 정보기관 OSS가 추진한 비밀 첩보 작전에 참여했던 특수 공작원이었다.
■50세에 참여한 비밀 작전
1945년, 한국광복군과 연계해 한반도 침투를 목표로 진행된 OSS의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목숨을 건 작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연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날 방송에는 배우 이상엽이 게스트로 등장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보유한 그는 유일한의 삶을 재연하며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상엽은 “정말 시대의 어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분”이라며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소감을 밝혔다. 함께 출연한 장도연 역시 “생각의 결이 다른 분 같다”며 감탄을 전했다.
■숙주나물 사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청년
유일한의 인생은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가난한 형편 속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시간대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의외로 ‘숙주나물’이었다. 만두를 즐겨 먹는 이민 사회의 식문화를 간파해 숙주 공급 사업을 시작했고, 이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미국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며 백만장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안정된 삶 대신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1926년,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는 귀국을 결심했다.
■제약회사를 세워 국민 건강을 지키다
당시 조선의 위생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기생충 감염이 흔했고 치료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유일한은 현실을 목격한 뒤 교육자의 길 대신 제약사업을 선택했다. 연희전문학교 교수직 제안까지 거절하며 국민에게 필요한 약을 공급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유한양행이다.
당시 일부 제약업체가 마약성 진통제 판매로 수익을 올리던 시기에도 그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항생제 ‘프론토실’을 들여와 폐렴과 성병 치료에 활용하며 공중 보건 개선에 힘썼다.
■교육과 장학에 평생을 바치다
그의 사회 환원은 기업 경영에만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재산을 들여 유한상업고등학교를 세우고 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후 유한공업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며 학생들을 격려하는 일도 꾸준히 이어갔다. 당시 장학금을 받았던 학자들은 “그 지원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회상한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는 “유일한 박사가 실천한 것은 의료의 민주화였다”며 “약과 치료가 일부 계층만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닿도록 한 선구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장도연은 “우리가 모두 그분에게 빚을 지고 사는 것 같다”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기업가, 독립운동가, 교육가로 이어진 삶. 평생을 나라와 사회를 위해 사용한 그의 선택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를 몸소 실천한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는 3일 방송되는 ‘셀럽병사의 비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