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이윤기 옮김/열린책들
누구에게나 연인같은 책 한 권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저자에게 연인이자 친구같은 책이다. 책에 인격권을 부여하고 싶을 만큼 소중한 책. 인생관을 바꾸어 놓은 책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는 이의 심장을 직접 움켜쥔다.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 작품을 통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가, 아니면 생각 속에 갇혀 있는가.”
이 질문은 20세기 초 그리스의 해변에서 시작되지만, 21세기 서울의 회색 빌딩 숲에서도 유효하다.
소설의 화자는 지식인이다. 책을 읽고 사유하며, 세상의 의미를 분석하려 한다. 반면 주인공 조르바는 정반대다. 그는 계산하지 않고, 사랑하면 사랑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춤춘다.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철학보다 삶이 먼저다.
두 사람은 크레타 섬에서 탄광 사업을 함께 시작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무대는 탄광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다. 조르바는 화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왜 그렇게 머리로만 사느냐”고.
오늘 우리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효율과 성과에 둘러싸여 있다. 스마트폰은 하루의 리듬을 지배하고, SNS는 타인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든다. ‘잘 사는 법’에 대한 강연은 넘쳐나지만, 정작 ‘살아 있는 감각’은 무뎌진다. 조르바는 바로 그 지점을 후려친다.
삶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라고.
카잔차키스는 평생 자유를 탐구한 작가였다. 그는 종교와 철학, 정치 이념을 넘나들며 인간 존재의 근원을 질문했다. 그 문제의식은 훗날 최후의 유혹에서도 이어진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의 고통을 그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의 자유는 더 육체적이고 구체적이다. 조르바에게 자유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가난도, 실패도, 심지어 죽음도.
현대 사회는 겉으로는 자유롭다. 여행도, 직업 선택도, 표현도 이전보다 넓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더 많은 불안을 짊어진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실패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말한다. “망하면 또 시작하면 되지.”
이 단순한 문장이야말로 현대인이 가장 잃어버린 문장일지 모른다.
소설 속에서 조르바는 사랑에 빠지고, 또 상실을 겪는다. 그는 처절하게 울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나 포도주를 마신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흘려보낸다.
우리는 슬픔을 관리하려 한다. 상처를 드러내기보다 숨긴다. 강해 보이려 애쓴다. 그러나 조르바는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상처 입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그의 태도는 일종의 ‘존재의 용기’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마지막 춤이다. 사업은 실패로 끝난다. 계획은 무너진다. 모든 계산이 허사가 된다. 그 순간 조르바는 춤을 춘다. 화자도 함께 춤춘다.
이 장면은 훗날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로 제작되며 전 세계에 각인됐다.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해변의 춤은 ‘패배 이후의 환희’를 상징한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너지는 순간이 더 많다. 조르바의 춤은 그 무너짐을 껴안는 방식이다. 실패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고 몸을 흔드는 것. 그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르바처럼 살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능에 충실하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책임과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 소설이 요구하는 것은 극단적 방종이 아니다. 삶의 순간을 체감하라는 것이다. 사랑할 때 계산하지 말고, 실패했을 때 자책에만 머물지 말며, 기쁠 때는 온전히 기뻐하라는 것.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행동하는 인간’의 원형을 제시했다. 사유가 깊을수록 삶이 얕아질 수 있다는 역설을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사유와 삶이 화해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설 말미에서 화자는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다. 그는 조금은 조르바가 된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고, 경제는 예측 불가의 파도를 탄다. 우리는 끊임없이 준비하고 대비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이럴 때 '그리스인 조르바'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 두려움 없이 한 번이라도 살아본 적이 있는가?”
조르바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삶 자체가 철학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너무 오래 생각만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조르바는 우리 안에 잠든 야성을 흔든다. 이성의 빛 아래 감춰둔 본능의 불꽃을 되살린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인생은 짧다. 그러니 춤추라.”
어쩌면 현대적 해석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조르바는 과거의 낭만적 인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대인이라는 사실. 그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마지막 춤은 오늘도 유효하다.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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