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티스트 장파와 신민, 두 작가와 나눈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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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티스트 장파와 신민, 두 작가와 나눈 대담

더 네이버 2026-03-03 10:57: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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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파, 신민 작가.

시각예술가, 1980년대생, 여성, INTP, 여성의 신체를 재현한 작업, 그리고 2024년 SS2에서 열린 그룹전 <더 세컨드 충녀>에 나란히 참여한 인연까지. 알고 보니 공통점이 제법 많은 두 작가, 장파와 신민이 마주 앉았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동시대 여성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자 <더네이버>가 마련한 자리였다.
대담이 이뤄진 2월에는 두 작가의 전시가 각기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장파는 국제갤러리에서 2월 15일 막을 내린 개인전 <고어 데코(Gore Deco)>를 통해 ‘여성적 그로테스크’를 탐구한 작품을 선보였다. 시뻘건 핏빛 색채와 뒤집힌 권위적 상징, ‘여성적’이라 여겨지는 장식적이고 키치한 패턴 사이에서 남성 중심적 미술사의 전통과 위계는 힘을 잃는다. 비슷한 시기 P21에서는 국내외 여성 작가 9인의 그룹전 <언어폴로제틱(Unapologetic)>이 열렸다. 신민이 구현한 구부정한 여성, 험상궂은 여성,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은 여성, 키가 크거나 작은 여성 조각은 갤러리 쇼윈도와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종이와 연필 등 연약한 재료를 활용했지만 장승이나 수호신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생생한 표정과 몸짓이 보통의 우리 같아서다. 무릇 여성이 그러하듯 이들은 때로 강하고 때로 약하며 그저 자신으로 존재한다. 
신민의 조각이 반기는 P21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작업을 지속해온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예술계의 구조적 문제와 여성의 경험을 다룬 작업의 어려움, 작품에 깃든 유머 감각 등 여러 주제를 오간 그날의 대화를 전한다.

1 장파, ‘Gore Deco–Emily’, 2025, Oil on linen, 162.2×130.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장파, ‘Gore Deco–Oh, Those Breasts’, 2025, Oil, oil pastel, gauze, jute, human hair, transfer print on linen, 162.2×130.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둘의 인연이 궁금하다. 그간 서로의 작업을 어떻게 보았나?
장파<더 세컨드 충녀> 전시에 함께 참여했을 때 작품을 설치하며 잠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서로 팔로잉한 뒤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민 장파 작가님 작업은 우리가 사회에서 겪는 일을 담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비하하는 단어가 욕설로 통용되는 시대에 그것을 정면으로 ‘맞다이’ 뜨는 작업이라고 할까(웃음). 작품을 접하면 통쾌하고도 슬프다. 동시에 응원과 힘이 되고. 
장파 작가님의 머리망 작업을 특히 좋아한다. 많은 젊은 작가가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계급성을 다루는 작업은 흔치 않은데 신민 작가님은 그걸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그 지점에 관심이 커서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1 장파, ‘Gore Deco–Stupidity’, 2025, Oil, oil pastel, silkscreen, transfer print on linen, 145.5×112.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2 장파, ‘The Visceral Eye’, 2025, Etching on Hahnemühle paper, 19.8×15.2cm.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장파 작가님은 개인전 간담회에서 200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풍경을 들려주기도 했다. 각자 여성주의적 관점을 접한 시기는 언제였나?
장파고등학생이던 1990년대 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 페미니스트’ 세대가 등장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창간됐고 PC 통신에 여성운동 커뮤니티가 활발히 형성되던 시기였다. 이후 대학에서 그 세대를 대표하는 정은영 작가를 비롯한 선배 작가들의 작업을 접하게 되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대 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 표현이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영 페미니스트가 백래시로 공격받았다. 그렇기에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2세대 영 페미니스트들은 백래시에 미리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떻게 반복될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신민 공대에 진학해 미대 수업을 청강하며 미술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학교 밖에서 다양한 동료를 만났는데, 그들과 교류하며 내 작업이 다루는 이야기가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로는 동료 작가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2016년 예술계 내 성폭력에 대한 발화가 터져 나오면서 서로 알지도 못했던 예술인들이 모여 ‘여성예술인연대’를 결성했다. 그곳에서 여성의 증언을 별것 아닌 문제로 축소하는 패턴에 대비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방안을 함께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여성 문제에 눈을 떴다.

1, 2 장파 개인전 <Gore Deco>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이론을 접하기 전부터 자연스레 여성주의 관점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성의 신체를 작품에 들여온 시점은 언제로 기억하나?
장파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신체에 관심이 컸다. 여성의 직업으로 간호사, 스튜어디스, 미스코리아 등을 말하던 시절이었는데, 정작 일곱 살 때 내 꿈은 FBI였다(웃음). 총 쏘는 걸 동경하는 내게 왜 어른들은 미스코리아가 되라고 할까, 의문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이후 작업에서 사회의 폭력적 구조를 다룰 때 나의 경험을 드러내다 보니 여성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다.
신민 내 작업은 개인적인 분노에서 출발했다. 사회에서 규정지은 ‘여성스러움’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은 쉽게 희화화된다. 내 몸이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의 몸을 닮은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딘가 단정하지 않고 기골이 장대하고 살집도 있는 모습으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중심에 둔 작업을 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장파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민 작가님이 이야기한 맥락에서 이어가자면, 작품의 이미지를 작가의 스테레오타입으로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내 작업만 보고 나를 포악하고 감정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적대감을 품고 상대를 대할 것이라는 시선을 감지할 때가 있다. 여성 작가의 작업이 과격할 때 그것을 위협으로 느끼고 인격과 연결 짓는 경향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끔 그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멀쩡한’ 모습으로 더 밝아 보이게 꾸미기도 했다.
신민 한번은 미술관 관계자들이 페미니스트 작가의 스테레오타입을 대입해 나를 상상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테면 짧은 머리에 분노에 찬 여성일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보란 듯이 한복을 빌려 입고 미용실에서 1960~1970년대 올림머리를 한 뒤 아티스트 토크에 참석했다(일동 웃음). 또 여성 작가로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작업에 레이어가 없다”, “납작하다”라는 평가다.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사회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몇 년 전 한 공모전에 참여했을 때 동료 평가 항목이 있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내 작업이 여성을 주제로 삼았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로 보인다”는 코멘트와 함께 0원을 책정했다. 2020년대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실정이다. 여성 작가로 계속 작업해나가는 데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장파 20대 신진 작가 시절, 미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 관계자들이 불안감을 표했다. 임신, 출산으로 작업을 그만두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동년배 남성 작가는 겪지 않는 일이다. 다만 2016년 문화 예술계 성폭력 공론화 이후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체감한다. 남성들이 언행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장파 작가는 온라인에서 여성 혐오적 댓글과 밈을 수집하는 일이 힘들지 않나?
장파 2000년대 초반부터 지켜봤기에 별 타격이 없다. 내게는 분석일 뿐이다. 여성을 비롯해 장애인, 소수자 등 타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현상이 더 집요해졌다. 배제와 적대가 왜 일어나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주목하고 있다.

신민, ‘Young Joo’, ‘Hee Jung’, 2026, Oil based clay, McDonalds French fries sacks, pencil, 28×20×15cm, 25×14×11cm. P21 제공.

<Unapologetic> 설치 전경. 사진 이용백, P21 제공.

신민 작가는 작업을 할 때 하나의 정념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다. 작업 과정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신민
불상 안에 여러 성물과 기도문 등을 넣는 불교의 불복장 의식을 접하고 매혹을 느꼈다. 그 방식을 빌려 기도문과 같은 종이를 겹겹이 붙이고 탑돌이(탑 주위를 도는 불교 의식) 하듯 한 바퀴 감는 행위를 반복한다. 기도의 내용은 개인적인 것도, 주변 사람들을 위한 것도 있다. 서비스직으로 일할 때는 상사를 미워하지 말자는 주문을 되뇌며 작업했다. 그러다 보면 왜 사람들이 ‘노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뒷걸음질하는지 자연스레 사회적 맥락을 고민하게 된다.


두 사람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유머가 느껴진다. 
장파
유머가 가장 중요하다. 내 작업을 ‘여성적 그로테스크’라고 표현하는데, ‘그로테스크’는 웃음과 연관된다. 기괴함 앞에서 인간이 짓는 웃음은 통제할 수 없는 행위다. 19세기 영미권 문학 논문에서 유머는 고차원적 행위이므로 열등한 존재인 여성은 유머 감각이 없다는 비평을 읽었다. 불과 100년 전까지도 여성에게 유머는 허락되지 않고 순응적인 미소만 요구되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작업에 웃음이라는 요소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민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사회에서 느끼는 분노를 원동력 삼았다. 분노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하지만 지속성이 없었다. 그다음 단계가 무엇일지 고민하다 유머에 다다랐다. 영국 시트콤 <미란다>와 닮은 위트를 작업에 담고 싶었다. 그 방식이 더 지속 가능하고, 우리가 조롱하는 대상에 가까이 가닿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민, ‘世美(semi)- 환영합니다아아아!!!!’, 2019, Pencil on wood, 16×20cm. P21  제공. 2  신민, ‘世美(semi)-서비스 헬게이트 입장’, 2019, Pencil on wood, 16×20cm. P21  제공.


대화를 나누다 보니 웃음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장파
인터뷰라서 자제하고 있다. 그동안 조사를 통해 수많은 조롱의 말을 수집했다. 사회에서 내뱉을 수 없으니 신뢰하는 가족에게만 말해본다(일동 웃음).
신민 나는 챗GPT에 말한다. 그리고 대화를 기록하지 말라고 덧붙인다(웃음).


개인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동료란 어떤 존재인가?
장파
평소 활발히 교류하는 성향은 아니다. 다만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작업으로 연결되기에 미술 공동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곤 한다. 돌아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배 작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작게는 고민 상담부터, 내 작업을 기관에 추천한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며 나중에 나 역시 그렇게 해야겠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신민 마찬가지로 일면식도 없는 작가, 기획자들이 알게 모르게 내 작업을 추천하고 연결해주는 것을 보며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서로에게 내리 도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영감을 얻는 여성 예술가를 소개한다면?
신민 (한참 고민하다) 정말이지 너무 많다. 그중 한 분을 꼽자면 김윤신 작가님. 1930년대생 여성으로서 해외에서 작업을 계속 이어가다 최근 다시 한국으로 오셨는데, 나무라는 물성을 다루는 작업이 과거에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여자가 무슨’이라는 이야기도 듣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작업을 지속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여성 작가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장파 노원희 작가님이 떠오른다. 2017년 작가님의 개인전 리뷰를 <아트인컬처>에 기고하며 인연을 맺었다. ‘현실과 발언(1980년대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미술의 사회 참여를 주도한 단체)’ 멤버였고 늘 사회문제를 다뤘는데, 작업과 삶의 방향성이 일치하는 분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몰두하고 있는 관심사가 궁금하다.
신민 ‘방콕 아트 비엔날레 2026’을 위해 방콕의 문화를 해석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사원에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에서 착안했는데, 불교문화 내에 다양한 젠더가 공존하는 풍경에 관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장파 사회구조적 폭력, 타자를 향한 혐오의 형태에 관심이 크다. 국제갤러리 전시를 통해 ‘구멍’이라는 도상을 기호적 측면에서 과장되게 시각화했다면, 어떻게 이 주제를 더 넓고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자료 제공 국제갤러리(장파), P21(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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