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속 소비·투자 위축 가능성…日, 실질임금 감소 지속될 수도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이 원유 수송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장기화하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3일 보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중동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선다고 발표한 이후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2일(현지시간) 배럴당 77.74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6.7% 상승했다. 한때는 배럴당 82.37달러로 13%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요충지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자료를 인용해 하루 1천430만 배럴의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고 전했다.
이 원유가 도착하는 국가와 수송량은 중국 480만 배럴, 인도 190만 배럴, 한국 170만 배럴, 일본 150만 배럴 순이다.
일본 주요 해운사들은 중동 정세가 급변하면서 자사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중단했다. 페르시아만에는 지난 1일 기준으로 일본과 관계있는 선박 43척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은 2024년 원유 수입의 95.9%를 중동에 의존했지만, 액화천연가스(LNG)는 중동 의존도가 10.6%로 낮은 편이다.
아사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가 조기에 마무리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겠지만, 장기화하면 각국에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가 동시에 벌어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닛케이는 "일반적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하면 수요가 줄어들고 원유를 포함한 상품 가격에는 하락 압력이 걸린다"며 이번과 같은 지정학 요인이 변수가 되면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와 투자 심리도 위축된다고 해설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일컬어지는 장기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서 차츰 벗어나 물가가 상승하고 있으나, 중동 정세 악화가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가스 요금이 올라 가계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도쿄신문이 짚었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로 상승하면 일본 휘발유 가격이 기존 리터당 157.1엔(약 1천460원)에서 171엔(약 1천590원)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원유 가격이 배럴당 97달러가 되면 2인 이상 세대의 가계 부담이 연간 2만5천엔(약 23만3천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물가 상승은 일본 실질임금의 플러스 전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물가 변동을 고려한 일본 실질임금은 작년까지 4년 연속 감소했다.
닛케이는 "실질임금 감소가 지속되면 임금 인상을 실감하기 힘들고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개인 소비도 늘어나기 어렵게 된다"며 정부가 고물가 대책을 추가로 마련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해설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대한 논평을 자제하면서도 이란의 핵 개발을 반대한다고 거듭해서 밝혔다. 또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는 "중국과 대립 중인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 속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미국 방문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의향에 반하는 태도를 취하기 어렵다"며 국제사회에서 미국 공격을 명확하게 비난하는 나라가 적다는 점도 일본의 신중한 자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이스라엘에 체류 중이던 자국민 5명을 전날 육로를 통해 요르단으로 대피시켰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전날 일본 주재 이스라엘, 이란 대사와 각각 만나 지역 정세 악화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일본인 안전 확보를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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