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생중계에 해시태그로 조직화…챗GPT로 법안 허점 찾고, 모바일 뱅킹 크라우드 펀딩도
인터넷 접근 확대로 정보 공유…민주주의 지지하나 자국 체제 불만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공고할 것으로 여겨져 왔던 아프리카 대륙의 권력 문법이 청년들이 중심이 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재편되고 있다.
아프리카 Z세대는 종족주의를 중심으로 나이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기간 견고하게 유지하는 이른바 '제론토크라시'(그리스어로 고령을 뜻하는 단어 '제론'과 체제를 뜻하는 '크라시'의 합성어)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25세 이하 청년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스마트폰을 다각도로 활용해 밀실 정치를 디지털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며 아프리카 민주주의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각종 선전 구호나 체제를 비판하는 문구가 담긴 깃발이나 플래카드만 들지 않는다. 대신 틱톡에 접속해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세금 인상을 추진하는 정부 법안의 허점을 찾아낸다.
◇ 케냐 의회 점령한 Z세대…해시태그로 결집하고 챗GPT로 법안 독소조항 공유
최근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생한 청년들의 저항은 과거 시위 양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야당 지도자가 시민들을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해시태그와 알고리즘을 토대로 한 SNS가 지휘부 역할을 하며 시민들을 결집한다.
이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곳은 2024년 여름, 케냐 수도 나이로비였다. 윌리엄 루토 정부가 국가 부채 해결을 명분으로 식량 등 기초 생필품과 서비스 가격 등을 인상하는 '재정법안'을 밀어붙이자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케냐 Z세대는 틱톡과 엑스(X·옛 트위터)에서 증세안에 반대하는 취지의 해시태그('#RejectFinanceBill2024')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챗GPT로 법안 독소 조항을 현지어로 번역해 공유하고, 증세안 찬성 국회의원들에게는 '문자 폭탄'으로 공격했다.
시위 부상자를 돕기 위한 의료비, 시위 참가자 지원을 위한 법률 지원비 등은 모바일 뱅킹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 활용됐다.
"부정부패를 위한 예산안"이라고 주장하며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로 나선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시위가 국회의사당 점거로 번지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고 법안 철회를 결정했다.
◇ 우간다·나이지리아 청년 중심 온오프라인 시위…마다가스카르 디지털 혁명
40년 장기 집권 중인 우간다도 이런 변화의 흐름을 맞았다. 2024년 7월, 우간다 청년들은 부패한 의회를 규탄하면서 의회로 행진하자는 취지의 해시태그('March2Parliament')를 통해 시위에 나섰다.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TV에 나와 "불장난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군경이 주요 도로를 봉쇄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틱톡 영상으로 정치인들의 부패를 폭로하는 등 온오프라인 시위를 이어갔다.
아프리카 최대 인구 국가 나이지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4년 8월, 나이지리아 청년들은 정부의 연료 보조금 폐지로 인한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엘리트 부패에 항의하며 나쁜 통치를 끝내자는 내용의 해시태그('#EndBadGovernanceInNigeria')로 뭉쳤다.
당시 경찰의 실탄 발포 논란 속에 사망자가 나오는 등 강경 진압이 이어졌다. 그러나 청년들은 엑스의 실시간 음성 채팅방 '스페이스'에서 경찰의 진압 위치를 공유하고, 국가의 폭력성을 인스타그램으로 생중계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러한 흐름은 대륙 본토를 넘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까지 번져 정권 탄핵의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만성적인 전력난과 수도난에 분노한 Z세대는 해시태그('#MadagascarGenZ')를 활용해 수도 안타나나리보로 모였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주인공이 쓰는 밀짚모자와 해적기를 저항의 상징으로 삼아 대통령 퇴진 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틱톡으로 정치인 고발 영상을 공유하고 경찰 진압 경로를 피해 움직이면서 민심을 이끌었고, 시위가 곳곳에서 확산해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했고, 의회에 의해 탄핵당했다. 이는 아프리카 청년과 SNS가 정권을 무너뜨린 디지털 혁명 사례로 기록됐다.
◇ 각국 청년 거리로 나선 이유…기대 수준과 현실 괴리 탓
이처럼 아프리카 청년들이 분노하면서 거리로 나온 이유는 높아진 기대 수준과 현실 사이 뼈아픈 괴리에 있다.
아프리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 이브라힘 재단의 아프리카 거버넌스 지수(IIAG) 데이터가 이를 입증한다.
2024년 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2014∼2023) 동안 가장 눈에 띄는 지표는 '디지털 접근성'이다. 반면 청년들의 삶과 직결된 '경제적 기회' 지수는 후퇴했다.
'디지털 접근성' 지수는 2014년 28.4점(100점 만점)에서 2023년 46.9점으로 18.5점이 오르는 폭발적 상승세를 보였다. '경제적 기회' 지수는 2014년 48.1점에서 2023년 47.3점으로 오히려 하락세를 나타냈다.
스마트폰의 일상화와 인터넷 보급률 증가로 정보 접근성이 확대되면서 아프리카 청년들은 뉴욕과 런던, 도쿄, 서울에 거주하는 또래들의 삶을 실시간으로 접했다.
이에 정치·경제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지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정밀해졌다. 그러나 계속되는 취업난에 부패한 정치체제를 가진 자국 현실을 보면 답답하다.
이 간극이 바로 청년이 분노하는 기폭제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은경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연구소 부교수는 "디지털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된 집단일수록 기존 정치 제도와 정부에 비판적 인식을 갖는 경향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 "민주주의 지지하지만, 당신들 체제는 거부한다"
청년들의 절망은 정치 체제에 대한 생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범아프리카 연구 네트워크 '아프로바로미터'의 데이터는 아프리카 정치인들에게 무거운 경고를 던진다.
아프로바로미터 연도별 조사의 하나인 라운드9에 따르면 39개국 18∼35세 청년 64%가 민주주의를 최고의 통치 체제로 꼽았다. 1인 통치, 일당 통치, 군사정권 등은 거부 반응이 높았다.
하지만 자국 민주주의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40%에 그쳤다.
이들 청년층은 투표와 정당 가입 등 전통적인 방식의 정치 참여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난 반면, 집단 시위 참여도는 세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런 결과는 청년들이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공정성에 관한 정부의 방향에 동의하지 못해 분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출된 지도자가 권력을 남용할 때 군대가 개입해야 한다'는 응답에, 청년층에서 가장 높은 수치(56%)가 나왔다. 이런 점을 보면 최근 니제르와 말리 등 사헬 지대 쿠데타 군부를 향한 청년층의 환호도 기성 정치권의 무능함에 대한 비판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라운드10에서는 청년층의 인터넷 접근성과 정치 체제 선호도와의 연관성도 엿보인다. 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많이 얻는 청년층이 자국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청년층과 장년층(36세 이상) 모두 민주주의를 선호했다. 다만 청년층은 인터넷 이용자(38.5%) 사이에서, 장년층은 인터넷 비이용자(39.2%) 사이에서 선호도가 각각 가장 높게 나타났다.
◇ 세네갈의 '청년 파워'…대선 연기 막고 옥중 후보를 대통령궁으로
케냐 청년들이 거리에서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면 서아프리카의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통하는 세네갈은 합법적인 투표를 통해 체제를 바꾼 'Z세대판 혁명'을 만들어냈다.
2024년 3월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이 대선을 불과 3주 앞두고 일방적으로 일정을 연기하고 장기 집권으로 나아가려 하자 세네갈 청년들은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대선이 치러졌다. 청년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인물은 대선 열흘 전만 해도 정치적 탄압으로 수감된 야권의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 후보였다.
세네갈의 사례는 청년들이 확실한 정치적 대안을 찾았을 때 '쿠데타' 방식 대신 선거로 질서 있게 권력을 교체하는 데 앞장서는 세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아프리카 Z세대는 더 이상 '미래 성장 동력'으로 수식되거나 도움을 줘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하고, 기성세대의 부패를 감시하며, 국경을 넘어 대륙과 전 세계와 디지털 광장에서 소통하는 신흥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아프로바로미터 데이터에서 알 수 있듯 청년을 외면하는 정권은 케냐 사례처럼 거리에서 심판받거나 세네갈 사례처럼 투표로 축출될 수 있다. 영원히 공고할 것만 같았던 아프리카 정치 체제는 스마트폰을 든 청년들의 손에서 변화를 맞고 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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