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부패에 민주주의 위기…2020년부터 사헬 3국 등 9개국 군부 집권
정부에 실망한 시민, 쿠데타 환영도…프랑스 등 서구 영향력 퇴조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 아프리카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쿠데타가 2020년 이후 전염병처럼 되살아났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 기니에서 말리 등 사헬(사하라 사막 남쪽 주변) 3국을 거쳐, 동쪽 수단까지 5천600㎞에 달하는 '쿠데타 벨트'가 형성됐다.
빈곤과 불평등, 부패, 치안 불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민간 정부들이 하나둘 군부에 넘어가면서 발전 도상에 있던 아프리카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 치안·정치 불안 사헬 국가서 잇단 쿠데타…독재자 축출, '위장 쿠데타' 의심도
2020년 이후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성공한 국가만도 2020년 말리부터 지난해 기니비사우까지 6년간 9개국에 달한다.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17%에 해당하는 수치다.
대륙 중부 가봉과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를 제외한 쿠데타 벨트는 사하라사막과 아프리카 초원지대 사이 반건조지대인 사헬을 포함하거나 인접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헬 지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치안이 불안하고 매우 가난한 지역이다.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은 2010년대 초반부터 사헬 지대를 근거지로 삼고 테러를 일삼고 있다.
2020년대 쿠데타의 신호탄은 말리가 쏘아 올렸다.
말리에서는 IS 등 이슬람 급진세력과 연계된 무장단체와 분리주의 세력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2020년 치안 악화와 총선 결과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군부는 이런 혼란을 이용해 두 차례의 쿠데타로 집권했다.
말리에 이어 2022년 부르키나파소, 2023년 니제르 순으로 사헬 3국에서 쿠데타로 군정이 시행됐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2022년 1월 폴 앙리 산다오고 다미바 중령 등 군부가 로슈 카보레 대통령을 쫓아냈다. 이어 8개월 뒤 제2차 쿠데타로 이브라힘 트라오레 육군 대위를 수반으로 하는 군정이 들어섰다.
2023년 니제르에서는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 이끄는 군부가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고 정권을 잡았다.
서아프리카 국가 연합체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쿠데타가 발생한 니제르에 군대를 동원해 군사 개입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러자 말리, 부르키나파소와 기니 등 쿠데타로 군부 정권이 들어선 국가가 반발하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
2021년에는 말리뿐 아니라 차드, 기니, 수단 4개국에서 쿠데타가 잇달아 발생했다.
차드는 30년간 장기 집권한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이 2021년 4월 반군의 공격에 의한 부상으로 숨졌다. 이후 그의 아들인 마하마트 이드리스 데비 장군이 군사위원회 의장을 맡으며 군정을 이끌다가 2024년 대통령 선거를 거쳐 집권했다.
기니에서는 무리한 개헌으로 3선 연임에 성공한 알파 콩데 대통령이 2021년 9월 쿠데타로 쫓겨나고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인 마마디 둠부야 대령이 이끄는 군정이 들어섰다. 둠부야는 지난해 대선에서 당선됐다.
수단에서는 군부 지도자인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신속지원군 사령관이 2019년 8월 쿠데타를 일으켜 30년간 장기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부르한 장군과 다갈로 사령관은 2021년 10월 군부와 민간이 권력을 공유하던 과도정부를 무너뜨리며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2023년 4월 부르한이 이끄는 정부군과 다갈로가 이끄는 반군 사이에 내전이 발발해 수만 명이 사망하고 1천200만 명이 피란했다.
가봉에서도 2023년 공화국수비대 사령관이던 브리스 올리귀 응게마가 사촌 형인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했다. 그는 과도정부 군정을 이끌다가 지난해 4월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가봉 군부는 봉고 부자 대통령의 '56년 장기독재 종식'을 쿠데타 명분으로 내세웠다. 실제 쿠데타 소식에 일부 가봉 국민들은 "해방됐다"며 환호했다.
지난해 10월 아프리카 대륙 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청년층 반정부 시위로 인한 혼란을 틈타 엘리트 부대 소속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1월 기니비사우에서는 군 장교들이 우마로 시소코 엠발로 대통령을 내쫓고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 투표 결과 엠발로 대통령이 낙선할 것으로 예상되자 권력 유지를 위해 '위장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엠발로는 쿠데타 직후 세네갈을 거쳐 콩고로 이동했으며 모로코에 망명했다는 등의 보도가 있으나 정확한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이밖에 2020년 이후 감비아와 시에라리온, 베냉에서도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실패에 그쳤다.
베냉의 경우, 서아프리카 역내 기구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와 나이지리아가 헌정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군을 파견하기도 했다.
◇ 군부 "정부 실정 바로잡겠다"…서구 영향력 약화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는 2000년 이후 민주화 물결로 잠잠하다가 2020년대 들어 발생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쿠데타가 발생한 국가에서는 장기화한 빈곤과 불평등, 높은 실업률, 만성적 부패, 치안 불안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보건 위기와 식료품값 폭등, 불황 등도 쿠데타 환경을 제공했다.
군부 세력은 정부의 이런 실정을 바로 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민주주의가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쿠데타가 잇따르는 데는 식민지 역사의 부정적인 잔재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식민 종주국인 프랑스 등 서방은 제국주의 시절 민족, 종족, 자연 경계와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직선으로 긋고 자원을 수탈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1950∼1960년대 독립 후에도 이런 식민 지배 유산 때문에 내전 등 혼란을 겪었다. 정치 지도자와 국민 모두 민주주의를 실천할 경험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했다.
프랑스는 옛 식민지 국가의 무능한 정권을 지지했고 이런 태도는 서방에 대한 시민의 반감만 키웠다.
말리, 니제르, 가봉 등 쿠데타가 벌어진 다수 국가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다.
영국 BBC방송 집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아프리카에서 성공한 쿠데타 가운데 4분의 3이 옛 프랑스 식민지에서 발생했다.
쿠데타 세력들은 서방과 군사 협력을 중단하고 러시아, 중국에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리 군부 세력은 러시아의 군수 기업 바그너 용병들을 끌어들이며 독립 후에도 자국에 영향력을 유지했던 프랑스군을 철수시켰다. 부르키나파소 군부 역시 자국 주재 프랑스 대사를 추방했다.
아프리카에 큰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은 서방이 쿠데타 세력을 보이콧할 때도 내정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며 거래를 계속했다.
프랑스 아시아센터의 장 피에르 카베스탕 연구원은 현지 일간지 르몽드에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새로운 헤게모니는 군사력보다는 중국의 차관으로 인프라 개발을 하는 비대칭적인 경제 관계 발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이 때문에 중국은 우발적인 일을 좋아하지 않지만, 중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중국인의 안전과 사업 재개이기 때문에 쿠데타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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