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월 25일 ‘명품 세금은 유럽이 전 세계에 부과하는 허영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럽 럭셔리 산업의 구조를 날카롭게 조명했다. 침체된 경제와 달리 파리와 밀라노의 고급 상점가는 여전히 화려하지만, 그 물건을 사는 이들은 정작 유럽인이 아니라는 점이 이 산업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LVMH를 비롯해 루이비통, 샤넬, 프라다, 롤렉스 등 유럽 명품 기업들의 주요 고객은 미국의 부동산 재벌, 중동 산유국 왕족, 아시아 신흥 부호들이다. 한때 유럽 귀족과 상류층을 상대로 시작된 산업이 이제는 세계 부유층의 지위 상징을 공급하는 구조로 완전히 전환된 것이다. 전 세계 럭셔리 브랜드의 약 80%가 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은 이 대륙이 여전히 문화적 권위를 수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매체는 명품을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을 인증하는 장치’로 규정했다. 고가의 가방과 시계는 기능적 효용보다 상징적 가치가 핵심이다. 과거 유럽 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해 신도들의 ‘연옥 체류 기간’을 줄여주었다면, 오늘날 명품 기업은 화려한 장신구를 통해 고객이 평범함을 벗어났다는 심리적 확신을 제공한다는 비유도 등장한다. 평등과 복지를 강조하는 유럽이 역설적으로 불평등과 부의 과시에 기반한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도 아이러니로 지적됐다.
그러나 이러한 ‘허영세’ 모델에도 균열 조짐이 보인다. 업계에서는 최근의 매출 둔화를 ‘정상화’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사실상 성장세 둔화를 의미한다. 일부 초고액 자산가는 여전히 맞춤 제작 한정판 등 초프리미엄 소비를 이어가고 있지만, 많은 소비자가 여행과 호텔 등 체험형 소비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미국 브랜드들이 상위 시장으로 진출하며 유럽의 독점적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세계 엘리트들이 언제까지 유럽 기업에 ‘특권 프리미엄’을 지불할 것인가다. 만약 부의 과시가 더 이상 파리나 밀라노의 상징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면, 유럽이 전 세계에 부과해온 ‘허영세’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명품 산업은 여전히 유럽에 고용과 세수를 제공하는 핵심 분야지만, 세계 부의 흐름과 소비 가치관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 문화적 패권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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