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한 창작자의 헤리티지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기준이나 기대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완성한 첫 작품,
그 안에는 여전히 확장을 거듭하는 세계의 단단한 기반을 비추는 단서가 남아 있다.
영화, 음악, 문학의 영역에서 각자의 언어로 시대를 통과해온 창작자 21인이 자신의 처음과 연결된 물건과 기억을 건넸다.
한 시절을 온전히 바친 기록, 처음이기에 가능했던 선택이 그 안에 담겼다.
세상에 건넨 첫 선언, 그 선언과 함께 하나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던 순간.
감독
정주리
장편영화 <도희야>
<도희야> 타인과 제대로 교감해본 적 없는 지독히 외로운 두 사람을 그린 <도희야>는 내가 스무 살 무렵부터 품어온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첫 영화를 되돌아볼 때 줄거리보다 고양이와 주인의 짧은 우화가 더욱 강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주인에게 사랑받던 고양이는 새 고양이가 오자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던 주인이 구두 안에서 죽은 쥐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는 앙심을 품은 고양이의 짓이라 여기고 흠씬 두들겨 패지만, 다음 날에는 빨갛게 껍질이 벗겨진 쥐가 놓여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주인처럼 고양이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자신에게 맛있는 먹이인 쥐를 먹기 좋게 껍질까지 벗겨 갖다 놓으며 처절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셈이다. 그 고양이는 ‘도희’(김새론)가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 주인과 달리 끝내 도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염원하며 ‘영남’(배두나)을 만들었다.
첫 작품이 남긴 것 영화에는 도희와 같은 나이이던 김새론 배우의 열네 살 여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캐스팅 당시 여러 차례 고사하던 새론이가 결국 역할을 받아들이며 했던, “왠지 내가 해야만 할 것 같았다”는 말을 기억한다. 어쩌면 나보다 더 먼저, 그리고 더 깊이 도희의 내면에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엔딩에 도희와 영남이 부디 현실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던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건 새론이 덕분이다. 그의 부재는 <도희야>를 다시 생각하게 했고, 지금 만드는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이 남긴 영화들 속에서 여전히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김새론 배우를 오래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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