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아파트 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한동안 집주인이 가격을 주도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매수자와 매도자가 팽팽히 맞서는 국면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최근 정부가 고가 주택과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 강화를 연이어 시사하면서 매물이 늘어난 반면, 수요자들은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망에 들어갔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2월 넷째 주 기준 서울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의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기준선인 100에 근접했다. 지수가 100 안팎을 기록했다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104선을 웃돌며 매도자 우위가 뚜렷했지만, 최근 들어 하락세가 이어지며 1년여 만에 균형 구간으로 내려왔다.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 ‘전환 신호’로 해석한다. 매수 문의가 급감한 상황에서 매물은 빠르게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집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사이 서울 아파트 매물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그간 상승 폭이 컸던 송파·서초·강남구 일대에서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일부 단지는 매물이 한 달 새 30~5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에서 시작된 조정, 한강벨트 확산 가능성
가격 조정 사례도 잇따른다. 강남구 개포동의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전용 84㎡는 직전 실거래가 대비 4억 원 이상 낮춘 가격에 급매로 등장했다. 서초구 반포동 주요 단지 역시 수억 원을 낮춘 ‘즉시 입주’ 조건 매물이 나오고 있다. 호가를 과감히 내렸음에도 계약 체결까지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 현장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분위기 변화에는 정부의 강도 높은 메시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경기 성남 소재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징적 파장이 일었다.
여기에 초고가 주택 보유자와 실거주하지 않는 1주택자에 대한 추가 세제 보완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보유 부담을 우려한 집주인들이 매도에 나서는 모습이다. 오는 5월 종료 예정인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역시 심리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매수자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집값 상승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조금 더 기다리면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된 탓이다. 시장에서는 이른바 ‘포보(FOBO·더 나은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결정을 미루는 현상)’ 심리가 강남권에서도 감지된다고 전한다. 급매가 등장해도 추가 하락 가능성을 따져보며 매입을 보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남권이 서울 시장 전반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상급지에서 시작된 가격 조정과 매수 심리 위축이 마포·성동 등 한강 벨트나 경기 남부 주요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다만 단지별·입지별 차별화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나온다.
현장에서는 거래 가능 물건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전세가 끼어 있거나 세입자 계약이 남아 있는 경우 실제 매매가 성사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도자들이 가격을 선제적으로 낮추는 움직임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시장 주도권이 서서히 매수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는다.
결국 3~4월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세제 유예 종료 시점과 맞물려 매도 물량이 더 늘어날지, 아니면 저가 매수를 노린 수요가 유입될지가 서울 집값의 단기 방향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강남 아파트가 ‘버티면 오른다’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는지,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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