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29 주택공급 정책이 실행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책의 실효성과 파급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급등한 집값을 안정시키고 중장기 주택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정책 목표는 분명하지만 실제 도시 공간에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공급 중심 논리가 도시의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과천이 있다. 특히 과천 경마공원을 주택 공급 대상지로 포함한 정부 구상은 단순한 개발 계획을 넘어 도시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주택정책의 정당성 자체를 다시 묻게 하고 있다.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는 주택 공급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과천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공급의 필요성’이 아니라 ‘왜 하필 경마장이어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가깝다.
■ 땅 위에 집을 얹는 발상, 경마장의 맥락은 고려됐는가
정부 계획에서 과천 경마공원은 대규모 부지를 보유한 ‘공급 가능한 토지’로 분류됐다.
그러나 지역사회가 바라보는 경마공원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이곳은 단순한 유휴지가 아니라 말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의 핵심 거점이자 수도권 남부의 중요한 녹지·여가 공간이다.
경마공원을 운영하는 한국마사회와 과천시민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경마장은 아파트를 얹기 위해 존재하는 땅이 아니라 산업·고용·환경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온 공간”이라며 “이 기능을 제거한 채 주택 공급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도시 정책이 아니라 단순한 면적 계산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경마장은 말 사육·조련·연구·경주·관람 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특수 시설로 대체 부지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 계획은 이전 가능성을 전제로 주택 물량을 산정하고 있어 현실성과 공정성 모두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 이미 한계에 다다른 과천의 도시 인프라
경마장 주택 공급 논란의 또 다른 축은 도시 수용 능력이다.
과천은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도시 규모와 기반시설 여건은 제한적이다. 출퇴근 시간대 상습 정체, 포화 상태에 가까운 대중교통, 부족한 생활사회간접자본(SOC)은 이미 시민이 체감하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1만가구 규모의 주택이 경마장 부지에 추가로 공급될 경우 교통, 환경, 공공서비스 전반에 걸친 부담은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주택은 비교적 단기간에 공급할 수 있지만 도로 확장이나 철도·공공시설 확충은 수년이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이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넘는 공급은 결국 도시 기능 저하로 이어진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 ‘이전 가능성’이 가리는 정책의 본질
최근에는 경마장 이전 가능 지역을 둘러싼 지자체 간 입장 차이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전지가 어디가 되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면서 정작 핵심 질문이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 주택 문제의 해법이 과천 경마장 개발이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부담을 과천이 떠안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전 대안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정책 추진의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주택 공급 정책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 즉 입지 선정의 합리성과 도시별 수용 능력에 대한 고민을 덮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천 경마장 사례는 수도권 전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단기간 공급 물량 확보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장기적으로 도시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외면하기 쉽다. 교통 혼잡과 환경 훼손, 삶의 질 저하는 결국 주민 반발과 정책 불신으로 되돌아온다.
과천처럼 도시 규모가 작고 행정·환경적 여력이 제한된 지역에 대규모 물량을 집중하는 방식은 집값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에도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공급은 늘었지만 도시는 약해지는 역설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과천은 베드타운을 거부한다
과천시는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을 단순히 개별 사업 단위로 보지 않는다. 현재 과천 전역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주택 개발 규모와 도시 수용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추가적인 대규모 공급은 도시 전략 자체를 뒤흔드는 문제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이미 과천에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연속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일대에는 8천여가구가 공급됐고 갈현지구 역시 800가구 규모의 주택 개발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과천 최대 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과천지구 1만여가구, 주암지구에 6천여가구의 택지 개발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들 사업만으로도 과천은 이미 수만명의 추가 인구 유입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통, 교육, 생활SOC, 환경 관리 등 도시 전반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고 있음에도 이에 상응하는 광역교통망 확충이나 기반시설 투자는 충분히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천 경마공원과 방첩사 부지까지 주택 공급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과천을 사실상 ‘수도권 베드타운’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 선언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주거 기능만 누적되고 일자리·산업·자족 기능이 함께 확충되지 않는 도시는 결국 서울 의존도가 높은 ‘잠만 자는 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커진다.
■ 잘못된 주택 공급, 과천은 이미 한번 멈춰 세운 경험이 있다
과천시는 정부의 일방적인 주택 공급 정책에 대해 분명한 선례를 갖고 있다.
과거 정부과천청사 유휴지를 주택개발 대상으로 삼았던 정책이 교통·환경·도시 기능 훼손에 대한 시민의 우려와 과천시의 문제 제기로 결국 백지화됐다. 당시 과천시는 ‘도시가 감당할 수 없는 공급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고 주민과 함께 정책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이번 과천 경마장 주택 공급 정책 역시 본질은 다르지 않다. 주택 물량은 제시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교통 대책과 도시 수용 전략은 여전히 빠져 있다. 시민은 이를 ‘또 하나의 잘못된 공급 중심 정책’으로 규정하고 과거 정부과천청사 유휴지 사례와 마찬가지로 주민과 함께 분명한 반대 입장을 형성해 백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천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개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로 봐야 한다. 잘못된 주택 공급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단기적 압박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교통 혼잡과 생활 환경 악화라는 부담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과천에서 벌어지는 논란은 한 지역의 개발 갈등이 아니라 수도권 주택정책이 ‘얼마나 많이 짓느냐’에서 ‘어디에, 어떻게 짓느냐’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과천의 선택은 그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도, 공급 중심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례로 남을 수 있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