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청명한 하늘 아래, 모래빛 빌라와 정갈하게 가꿔진 정원 위로 하얀 비행운이 길게 뻗어 있다.
관광객과 외국인 노동자를 실은 보잉이나 에어버스 민항기가 남긴 흔적이 아니다. 걸프만 건너편의 거대한 이웃 국가 이란이 발사한 탄도 미사일이 날아간 자리이다.
지난 1일 오후 현재, UAE 국방부는 지금까지 탄도미사일 165발, 순항미사일 2발, 그리고 이란 드론 541대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중동의 또 다른 국가 바레인에 있는 한 친구는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1일 아침 공항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문자 메시지로 "엄청난 폭발음과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깼다"면서 "폭발음이 20번 정도 들렸다. 적어도 2번은 실제 타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2월 28일 충돌이 시작된 이후, 이란은 바레인의 미 해군 제5함대 사령부 등 군사 목표물에 한정됐던 공격 대상을 이제 공항 및 다른 민간 시설로까지 확대하는 듯하다.
걸프 아랍 국가들의 방공망에 생긴 틈을 노려 현재 고급 호텔과 쇼핑몰, 고층 아파트, 최첨단 공항 출국장 등이 산발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러한 시설은 애초에 드론이나 탄도 미사일의 공격 상황을 상정하고 설계된 공간이 아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페르시아 만(걸프만) 국가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이들 국가에 주둔하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불만이 향할 방향은 이 전쟁의 결정권자들"이라며 자국은 이웃 국가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걸프 지역 국가들이 입은 민간 기반시설 피해 중에는 요격된 미사일 파편의 낙하로 인한 우발적인 결과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 공항을 향한 공격 횟수는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란은 자국이 공격당할 경우, 이에 연루됐다고 판단되는 모든 국가를 보복 대상으로 삼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이에 걸프 국가들은 자신들은 이번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란에 보여주고자 애썼다.
그럼에도 미국의 오랜 군사 파트너라는 이유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슬람 혁명 이전인 국왕(샤)의 통치 시절, 이란은 "걸프만의 경찰"로 불렸다.
그리고 혁명 이후 이란은 자신들이 페르시아만(아랍권에서는 '아라비아만'이라고 부른다)의 "안보를 책임지는" 역할을 다시 맡아야 한다며 이웃 국가들을 끊임없이 설득해왔다.
이란 지도부는 걸프 아랍 국가들에게 역내 미 해군을 쫓아내고 자국에 안보를 맡겨달라고 요구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슬람 공화국의 혁명적 열정을 용납할 수 없는 보수적인 왕조 군주제인 걸프 아랍 국가들의 통치자들에게 이번 사태는 결코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이 무너진 일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이란 지도부가 이번 전쟁을 거쳐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주변 걸프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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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서방 군대가 오랫동안 주둔해 온 두 국가인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다른 걸프 아랍 국가 4개국에 비해 훨씬 더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이란 간 핵 협상을 중재해 온 오만에서는 상업 항구 도시 두쿰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수도 리야드가 지난 28일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이며, 이에 사우디 정부는 분노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해당 성명에서 사우디는 "리야드와 동부 주를 겨냥한 이란의 뻔뻔하고 비겁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며, 이는 성공적으로 요격됐다"면서 "이러한 공격은 어떠한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란의 걸프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한 직접 또는 간접적 공격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이루어진 적도 없었다.
2019년,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민병대는 사우디의 국영 석유·천연가스 회사인 '아람코'의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석유화학 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했고, 이로 인해 해당 시설의 일일 수출량이 잠시 절반으로 줄어든 바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이란이 카타르 소재 알-우다이드 공군기지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이는 앞선 미국의 '미드나잇 해머 작전'으로 이란의 이스파한, 나탄즈, 포르도 핵시설이 파괴된 데에 대한 약속 대련식이었다. 당시 이란은 공격에 앞서 조용히 경고도 했다.
그리고 인구의 다수가 시아파인 바레인은 오래전부터 이란이 자국 내 반군에게 자금과 훈련, 무기를 지원해 왔다고 비난해왔다.
하지만 이 모든 일도 현재 걸프 아랍 국가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비하면 미미해 보인다.
이 사태는 어떻게 끝이 날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이스라엘, 많은 중동 국가들, 대부분의 이란 국민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슬람 공화국 정권이 몰락하고 민주주의 체제로 순조롭게 이행해 이란이 국제 사회에서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를 장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기 전에 그 능력을 파괴하고자 힘쓰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방어망을 뚫을 수 있길 바라며 미 군함과 같은 주요 목표물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지, 혹은 은닉하고 있는 무기들을 상당수 보존한 채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를 때까지 버틸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란 또한 자국의 미사일과 드론이 무한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대편의 방공 미사일 역시 무한하지 않다.
만약 이란이 보유한 미사일, 드론 등을 모두 소진하기 전에 상대의 방공망이 먼저 무너진다면, 걸프 국가들에서의 일상은 훨씬 더 불안해질 수 있다.
현재 힘의 균형은 미국과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다. 양국의 군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기술력도 앞서 있다.
미국은 이란 근처에 전투기 200여 대를 탑재한 항공모함 타격단 2개를 이 지역에 배치한 반면, 수년간 강력한 제재를 받아온 이란은 사실상 공군력이라고 부를 만한 전력이 없는 형편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압도적인 제공권을 누리는 셈이다. 하지만 이란에 유리한 요소도 있다.
현재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잃으며 약화한 것은 사실이나, 현 이란 정권은 존속하기만 한다면 이 분쟁의 장기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
순교자 숭배 문화가 있는 이란은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으며, 분쟁이 길어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과연 미국과 이란은 다시 대화 테이블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만약 이란 정권이 붕괴한다면, 대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란 정권이 존속한다면,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미국이 이란에 제시한 3가지 요구가 다시 핵심 의제로 주목받을 것이다. 의심스러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한편 국제 사찰을 재개하고,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헤즈볼라·하마스·후티 같은 역대 대리 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내용이다.
오만 측은 지난달 제네바 회담에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은 나머지 2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를 거부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가 진행되는 방식이 불만스럽다"고 언급했다.
물밑 접촉을 통해 휴전을 이루고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군사적 행동 또한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결국 이 갈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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