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 다룬 소설 '세종의 나라' 펴내
한글의 과학성 분석…"온갖 소리 다 담아낸 인류 문화의 백미"
역사적 사실에 로맨스·스릴러 더해…"흡입력 높이는 장치"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세종대왕과 한글. 작가라면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소재죠. 세종은 우리 민족 최고의 성군이고, 한글은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 자산이니까요."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시작으로 1990년대 한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군림한 김진명이 3년 만에 새 작품으로 돌아왔다.
장편 '세종의 나라'(이타북스·전 2권)를 펴낸 김진명 작가를 지난 26일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 반대 무릅쓰고 한글 창제…나라 바로 세운 혁명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주로 역사와 민족 문제를 다룬 선 굵은 서사를 선보여온 그는 이번에 세종을 정면으로 다뤘다.
김진명은 "작가로서 이 주제를 다루고 싶은 로망이 있었고 여러 권유도 있었다"면서도 "다만 위업을 작품으로 옮기는 게 행여나 흉이 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오늘날 온 세계에 퍼지고 있는 한류의 근본이 바로 한글"이라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한글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 한글이 왜 과학적인 문자인지를 한번 밝혀보자는 각오로 용기를 냈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명나라의 거대한 그늘 아래 신음하던 조선 시대.
말과 글은 물론 생각조차도 철저히 명나라에 예속됐던 당시, 사대주의에 젖은 신료들의 반대를 뚫고 어떻게 한글이 탄생했는가. 소설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한글 창제는 하나의 문자 체계를 만드는 것을 넘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었고,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혁명적 시도였다는 게 작가의 답변이다.
김진명은 "당시 글(한자)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이들은 4%의 양반에 불과했고 나머지 96%는 글을 몰랐다"며 '남의 글자(한자)'를 빌려 쓰는 탓에 대다수 백성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사대부들은 오로지 중국에 몰입된 공부에 빠져있었다고 당대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이런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세종은 96%의 백성에게 문자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글 창제의 인류사적 의미도 강조했다.
"문자라는 것은 권력층의 전유물이었죠. 그런 문자를 이제 모든 사람의 권리로 만들었잖아요. 한글 창제는 그야말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인류 문화의 백미이자 진수라고 봐야 하는 것이죠."
그는 또 오늘날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을 언급하며 "한글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지키는 가장 강한 무기"라며 현대적 의미도 강조했다.
◇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에 미스터리 더해…작품 흡입력↑
작품은 한글 창제 과정을 딱딱한 틀에 가두지 않았다.
이야기의 중심축에는 비극적 운명에 맞서는 두 남녀가 있다.
세종의 밀명을 받아 죽은 스승의 흔적을 쫓는 금부도사 한석리, 몰락한 양반가의 당차고 총명한 규수인 권숙현.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서로 닿을 수 없는 곳에 놓이게 된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금서(禁書) 속 숨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한석리의 추적은 읽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김진명은 "그동안 소설을 쓰면서 로맨스는 잘 쓰지 않았다"면서도 한글 창제의 원리를 소설로 풀기에 딱딱한 면이 있어 작품의 흡입력을 높이는 장르적 장치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역사소설을 쓸 때 세운 원칙도 밝혔다.
"사회에 대해 메시지를 내고 싶은 주된 주제는 거의 팩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다만 그 중심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 허구를 쓰는 것이죠."
이번 소설에서는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세종의 한글 창제를 돕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에 대해 김진명은 "장영실이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한글에 과학적 측면이 있고, 세종과 장영실이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다 수학과 과학의 원리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글의 수학성·과학성을 강조했다.
김진명은 "한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글자가 단순한 획 하나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며 "이런 획 하나하나를 통해 다양한 글자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치 가장 단순한 벽돌의 조합으로 다양하고 무한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획 하나하나가 모여 간결하면서도 무한한 소리글자를 만들어낼 수 있단 것이다.
"모든 소리글자가 성공하려면 기호가 단순해야 해요. 한글만큼 단순하면서도 온갖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문자는 없잖아요. 그래서 한글이 훌륭한 문자인 거죠."
◇ 9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대중작가' 꼬리표엔 "되레 뿌듯"
김진명은 1993년 대표작이자 데뷔작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발표하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후 '가즈오의 나라', '하늘이여 땅이여', '고구려', '글자 전쟁' 등 민족과 역사를 다룬 소설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민족주의 작가'라느니 '대중 소설가'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녔다.
과도한 민족주의란 평가에 대해 김진명은 "외부의 어떤 잣대로 한국을 봐서는 안 되고 한국의 시간과 한국의 공간으로 한국을 봐야 한다"며 이른바 '국뽕'식 자아도취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대중작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응수했다.
"저는 제가 대중 소설가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자랑스럽죠, 왜냐하면 늘 사람과 함께 호흡한다는 이야기니까요."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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