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메일·메신저 30일마다 삭제"…티끌 모아 파헤친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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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메일·메신저 30일마다 삭제"…티끌 모아 파헤친 '갑질'

연합뉴스 2026-03-01 05:55: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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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조사관보다 변호사가 많은 것 같기도"

"위원회 판단 존중" 몸 낮추더니 과징금·시정명령엔 소송 예고

쿠팡 본사 쿠팡 본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종=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약 22억원의 과징금을 의결하며 온라인쇼핑 1위 업체의 횡포가 드러나기까지 이례적으로 많은 노력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지난달 27일 공개한 의결에서 쿠팡이 납품가를 낮추거나 광고비 등을 부담하도록 납품업체를 압박해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쿠팡의 갑질이 확인됐지만 과징금이 사업 규모에 비해서는 적은 편인 점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쿠팡이 기록이 잘 남지 않는 방식으로 지시 사항 등을 전달해 피해액 규모를 산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1일 소식통들에 따르면 쿠팡이 의사 결정 과정을 공문이나 보고서로 거의 남기지 않아서 공정위 조사관들은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쿠팡은 주요 사항은 윗선에 구두로 보고하고, 사내 메일과 메신저 등으로 연락하는데 30일이 지나면 이들 기록이 삭제되도록 시스템을 설정해놨다고 이들은 전했다.

공정위 조사는 2022년 시작됐는데 자료가 거의 확보되지 않아서 한때 무혐의로 결론을 내는 쪽으로 기울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새 담당자가 포렌식(Forensic·디지털 증거 추출) 기법으로 확보한 자료에서 티끌 모으듯 단서를 확보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조각 자료를 쿠팡과 납품업체간 협상 결과, 납품액 변화 등과 비교·대조해 쿠팡이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 납품업체를 압박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공정위는 소회의를 거쳐 심사관의 이런 판단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쿠팡 피해자 행동의 날 쿠팡 피해자 행동의 날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등 관계자들이 2026년 2월 1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피해자 행동의 날' 집회에서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처벌과 사과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코너에 몰린 쿠팡은 최근 당국의 조사에 더 치밀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올해 1월 중순부터 시장감시국, 기업집단감시국, 기업거래결합심사국 등 조사관리관 산하의 3국을 투입해 쿠팡 본사를 조사하자 쿠팡은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전처럼 문서를 거의 남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료 제출 요구에는 법률 검토 등이 필요하다며 일일이 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사를 내세워 자료가 필요한 사유를 설명하라고 하거나, 영업비밀 여부를 따지며 조사 진행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어떤 때는 조사관보다 쿠팡 측 변호사 수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작년 말 국회 쿠팡 청문회에 출석해 공정위 홈페이지를 통해 제보를 많이 해달라고 당부해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제보로 결정적 증거를 입수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익명 제보가 조사의 실마리가 되기는 하지만 공정위가 심의·의결하는 근거로 삼거나 소송이 이어질 경우 증거로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피심인의 방어권을 보장한 가운데 사실관계를 따지려면 세부 내용을 공개해야 하는 데 이를 통해 쿠팡이 제보자를 유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제보자들이 협력을 주저하는 이유에 관해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쿠팡에 찍히면 밥줄이 끊긴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여론을 의식해 상황에 따라 대응 방식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갑질 의혹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올해 1월 7일 공정위 심판정에서 열린 공개 소회의에서 쿠팡 측 변호사는 "위원회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더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몸을 낮추었다.

하지만 이면에서 보인 태도는 사뭇 달랐다.

비공개로 낸 서면에서는 심사관이 제기한 혐의나 조치 의견을 강하게 반박한 것이다.

공정위가 심사관 측 조치 의견을 전면적으로 수용해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하기로 의결하자 쿠팡은 "손실보전을 위해 납품업자에 광고 등을 강요하거나 부당한 발주 중단 등을 한 사실이 없다"며 공정위 판단에 반발했다.

그리고 "향후 법원 절차를 통해 회사의 입장을 성실히 소명해나갈 예정"이라며 소송을 예고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 김범석 쿠팡 의장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에 제재보다는 소비자 대응이 쿠팡의 태도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범석 쿠팡Inc의장은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7%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자 "심려와 불편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26일(미국 현지시간) 컨퍼런스 콜에서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 후 사과 입장문을 냈을 뿐 공개 석상에서 나서지 않던 그가 위기감을 느끼고 직접 나선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쿠팡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소비자 선택"이라며 올해 들어 소비자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쿠팡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관측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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