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음식이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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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음식이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에스콰이어 2026-02-28 23:00:00 신고

Jeanne Dielman 영화 ‘잔느 딜망’ 속의 요리하는 장면

Jeanne Dielman 영화 ‘잔느 딜망’ 속의 요리하는 장면



1. 손맛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음식에는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같은 레시피, 같은 재료, 같은 시간을 거쳤는데도 결과가 달라지는 순간. 우리는 그 차이를 이렇게 부른다. “손맛이 다르다.” 한국에서만 유독 자연스럽게 쓰이는 이 단어는 흥미롭다. 영어로 옮기려 하면 곧 어색해진다. Hand Flavor? Tase of touch?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다. 많은 요리 언어가 기술과 온도, 숙련도를 말할 때 한국에서는 종종 ‘손’이 맛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손맛’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음식을 만들 때 손으로 이루는 솜씨에서 나오는 맛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피자나 햄버거를 두고 손맛이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국밥집 김치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게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단어를 꺼낸다. 동일한 계량의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로 만들어진 두쫀쿠 조차 맛이 다 다르다. 정확히 무엇이 다른 걸까. 손맛은 정말 존재하는가?




2. 우리는 사실 손맛을 배우며 자란다. 손으로 세상을 배운다

인간은 태어나마자 손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입에 들어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손으로 만지고, 누르고, 쥐어본다. 질감은 언제나 손을 통해 먼저 학습된다. 뜨거움과 차가움, 부드러움과 단단함, 미끄러짐과 저항. 어쩌면 가장 원초적이고 짜릿한 손맛의 경험은 돌잔치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쥐든 환호와 박수가 따라붙는 순간. 선택보다 접촉 자체가 의미가 되는 시간이다. 젓가락질을 배우는 과정 역시 훈련에 가까웠다.

둘째 이모는 나의 젓가락질 선생님이었다. 이모는 항상 작은 간장 종지 두 개를 식탁에 들고 와서, 한쪽에는 검정 콩 자반 반찬을 채우고, 빈 그릇에 콩을 옮기게 훈련시켰다. 작고 퉁퉁한 손에 길고 얇은 젓가락은 너무나도 큰 짐처럼 느껴졌는데, 그렇게 우리들은 모르는 사이 손의 감각을 정교하게 단련 시켰던 거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부터 손맛을 발달 시키도록 설계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맛은 혀에서 완성되지만, 그 이전 단계는 언제나 손이었다.




3. 손맛은 기술인가, 착각인가, 기억인가

요리를 하는 손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손은 압력을 기억하고, 온도를 감지하며, 재료의 저항을 읽는다. ‘소금 한 꼬집’은 계량 단위가 아니라 감각의 언어다. 반죽을 치대는 힘, 김치를 버무릴 때의 압력 , 불 앞에서 멈추는 타이밍. 이런 미세한 차이는 실제로 음식의 조직과 수분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물리적으로도 맛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손맛은 과학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맛이 아니라 기억을 먹기 때문이다.




4. 할머니의 손맛은 왜 항상 좋은가

이상하게도 ‘손맛’이라는 단어는 거의 항상 할머니와 함께 등장한다. 할머니의 김치, 할머니의 시래기국, 할머니의 쑥개떡. 정말 그 음식이 객관적으로 더 맛있어서 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 음식을 먹던 시간과 장소를 함께 삼켰기 때문일까. 손맛은 종종 기술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된 동작, 실패와 수정의 기억, 계량하지 않아도 몸이 아는 리듬같은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하나. 그 음식은 대개 우리가 보호 받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이다. 손맛은 어쩌면 혀가 아니라 정서가 인식하는 맛, 노스탤지어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쭈글쭈글해진 할머니의 손을 어루어 만질 때마다 할머니가 해주던 겉절이 김치가 선명하게 스쳐간다.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옆에서 아기새처럼 받아먹던 빨간 겉절이의 비밀 레시피는 할머니의 손맛이다.




5. 다한증 요리사와 수족냉증 요리사의 대결

만약 두 사람이 같은 주방에 선다면 어떨가. 같은 레시피. 같은 재료. 같은 시간. 단 하나만 다르다. 한 사람의 손은 항상 젖어 있고, 다른 한 사람의 손은 늘 차갑다. 나와 함께 케이터링 푸드 작업을 하는 내 친동생은 수족냉증이고, 나는 손이 보통 습하고 열이 높은 편이다. 같이 동시에 밀가루로 반죽을할 때 유독 내 손에 반죽이 더 들러붙던 순간이 많았다. 초밥 장인들이 차가운 손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열 전달이 적을수록 구조가 안정되기 때문이다. 다한증 요리사와 수족냉증 요리사가 같은 요리를 만든다면 결국 승자는 없을 것이다. 단지 서로 다른 두 개의 음식이 탄생할 뿐이다.



폴토마슨 앤더슨 감독의 ‘Phantom Thread’ 여주인공 Alma가 Reynold에게 독버섯 가루를 음식에타는 장면

폴토마슨 앤더슨 감독의 ‘Phantom Thread’ 여주인공 Alma가 Reynold에게 독버섯 가루를 음식에타는 장면



6. 수타(手打)라는 이상한 설득력

우리는 이상하게도 ‘손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약하다. 수제만두. 수제쿠키. 수타면. 기계로 뽑은 면보다 반드시 더 맛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명확하지 않다. 밀가루와 물, 글루텐 구조는 결국 동일하다. 오히려 기계가 더 균일하고 안정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수타면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미 설득된다. 하이디라오의 수타면 퍼포먼스 쇼 동영상이 한동안 내 알고리즘을 지배했다. 손으로 쳤다는 사실, 반복된 노동이 개입되었다는 이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개입. 수타 라는 단어는 조리 방식이 아니라 노동의 흔적을 소비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가깝다. 어릴적 자주 가던 오모리찌개 식당에서 파는 수타면이 진짜 맛있긴 했다. 항상 식당에 입장하면 카운터 앞에서 수타면 치는 퍼포먼스를 직관하며, 옛날 짜장면 스타일의 쫄깃한 면발을 삼키듯 먹곤 했는데, 수타의 신뢰에 설득 당했던 걸까?




7. 어떤 손은 유독 잘 안다

손에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 같은 힘으로 눌러도 어떤 사람의 손은 유난히 편안하다. 손가락이 길고, 마사지를 잘하던 친구가 있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잠깐 어깨를 주물러주는 것 만으로 긴장이 풀렸다. 손이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등이 가려울 때도 비슷하다. 혼자 긁으면 시원하지 않다가, 누군가 대신 긁어주면 정확히 그 지점이 풀린다. 압력이나 각도보다 중요한 건 멈추는 순간이다. 좋은 손은 세지 않다. 대상이 버틸 수 있는 지점을 읽고, 과해지기 전에 힘을 뺀다. 사람의 몸이든, 반죽이든, 음식이든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손맛이란 맛 자체보다, 누군가의 손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8. 손맛의 소멸

현대의 음식은 점점 손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배달 음식은 포크 하나로 끝나고, 햄버거조차 종이에 싸여 손의 감각을 최소화한다. 주방에서는 장갑이 위생의 상징이 되었고, 직접 만지는 행위는 점점 줄어든다. 우리는 더 깨끗하게 먹지만, 덜 느끼며 먹는셈이다. 손이 개입하지 않는 음식은 효율적이지만 감각의 층위는 얇아진다. 손맛이 사라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요리를 못해서가 아니라, 손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9. 디지털 시대의 손맛

오늘날 손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무언가를 만지지는 않는다. 데이팅 앱을 끝없이 스와이프하다 보면 손가락 관절이 건초염에 걸린다. (건초염 : 근육이나 관절을 과다하게 사용하여 발생하는 질환)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직접 거리를 헤매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음악 하나를 찾기 위해 밤새 파일 공유 사이트를 뒤지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불법 다운로드 링크를 추적했다. 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을 위해 수십 개의 창을 열어야 했고, 수십 번의 실패를 거쳐야 했다. 손은 탐색의 기관이었다. 지금은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함부로 나의 취향을 예측하고, 이미지 레퍼런스는 검색창에 넘쳐 흐른다. 우리는 더 이상 디깅하지 않는다. 손은 움직이지만 개입하지 않는다.




10. 열 손가락의 기억

결국 손맛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특별한 기술이나 계량의 문제가 아니라, 손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에 가깝다. 수없이 만지고 실패하며 조정해온 감각들. 열 손가락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손으로 세상을 배우고, 손으로 관계를 확인하고, 손으로 음식을 완성해왔다. 그래서 손맛은 어쩌면 맛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음식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음악처럼, 공장에서 균일하게 생산된 맛들은 완벽하지만 익명적이다. 우리는 더 편리하게 먹고, 더 빠르게 선택하지만, 그 음식 뒤에 있던 손의 얼굴을 점점 상상하지 않게 된다. 손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손이 보이지 않게 된 시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 종일 손을 사용한다. 화면을 넘기고, 버튼을 누르고, 취향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 손은 더 이상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감각을 남기지 않는다. 열 손가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경험 대신 입력을 반복한다. 그래서 손맛은 앞으로 더 희귀해질 것이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직접 개입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어쩌면 언젠가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음식은 맛있다기보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좋다고. 손맛이란 결국, 손으로 살아가던 시대가 남긴 마지막 감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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